2006.6 |
‘다시’ 할 수 있기에 살아볼 만한 인생
관리자(2006-06-10 10:16:28)
전주시립극단 제 68회 기획공연 <다시라기>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없다면 인생은 여기서 얼마나 더 삭막해질 것인가. 우리들은 새 생명의 탄생은 경축할 일로 받아들이는 반면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피하고 싶은 상황으로 여긴다. 하지만 죽음이 있기에 탄생도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허규의 <다시라기>에는 죽음과 탄생이 공존한다.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의 장(場)인 상가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고, 또 한 생명은 생을 마감한다. 다시래기꾼들이 보여주는 모의적인 놀이는 상주를 위로하며 웃음을 선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선인들의 인생관과 삶의 의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5월 12일 금요일 덕진예술회관에서 공연된 연극 <다시라기>는 1995년에 전주시립극단이 이미 한번 시도를 했던 작품으로 당시 연출을 맡았던 조민철 감독이 다시 한번 그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조감독은 원작 ‘다시라기’의 고루함을 새롭게 개작해 무대에 올렸던 11년 전을 회상하면서 의도와 열정만큼 만족스럽지 못했던 공연이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작의 감동은 그대로 살리되 반복되는 장면은 줄이고 춤과 노래를 극대화시켰다.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기초적이면서 또 근원적인 ‘죽음’과 ‘탄생’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오는 대립, 자신 있게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느낌을 어렵고 경건하게만 전달할 것이 아니라 즐겁게 웃으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 주는 재미를 강조한 것이다.
한 달 동안 곡을 해준 ‘기록’이 있다는 ‘겁나게 많이 운 여자’라고 소문난 넙죽네의 차라리 노래에 가까운 청승맞은 곡성, 그것을 듣다가 어느새 그 가락을 따라하고 있는 상주내외, 조문(弔問)하러 상갓집에 들어와 “누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라며 농을 던지는 가상주(다시래기꾼)가 보여주는 과장된 몸짓, 장난기 섞인 음성 등은 무대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관객들에게는 웃음을 주는 한편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더없는 설명이 되었다. 대사와 시나리오 같은 것들은 원작을 차용해야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으므로 예전의 것만 그대로 보여준다면 큰 관심과 호응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의 단어 선택과 넙죽네와 봉사의 춤사위 그 유연한 허리돌림과 제스처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관객들을 차마 웃지 않고 넘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객석을 무대삼아 익살스러운 연기를 펼치고 막걸리와 파전을 준비해 관객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는, 연극이라기보다 흥겨운 놀이판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 공연이었다.
이번 연극의 출연진은 몇 명 빼고는 95년 ‘다시라기’에 참여했던 단원들이지만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역할이 같으면 조금 더 수월할 수는 있겠지만 배우들의 향상을 바랬다고 조 감독은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인력부족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전주에 있는 극단은 십여 개가 넘지만 전주시립극단을 빼고는 배우의 부재가 심각하다.
“다른 극단이 제작해 올리는 무대에 우리의 단원들이 서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인력난을 해소, 공급해주고 있는 실정인데 그 일이 다른 극단들에게 도움인지 해악인지 늘 고민입니다. 성인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단원 확보도 시급한데 대안이 없어요.”
허탈한 목소리의 조 감독도 젊은 인재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배우 양성을 위한 전문적인 학과들은 연극무대가 아닌 TV로 가는 통로의 역할에 주 목적이 있는 듯 했고 오히려 그 학과들로 인해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던 연극동아리는 쇠퇴했다. 그래서 현재 배우들의 구조는 마름모 모양. 수요는 있지만 공급은 없고 마름모는 언제 역삼각형으로 바뀔지 모른다. 삶을 위한 끝없는 욕심에 꿈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전주시립극단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연극과 전주시립극단, 더 크게는 전주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외에 전주연극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지역고유의 소재와 재능을 한데 엮어 전주시립극단만의 색깔을 찾겠다는 것이다.
조 감독은 “기존에 있는 원작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널리 소재를 공모하던지 특정 작가나 학계를 선정해서 글을 받던지 해서 내년부터는 전주만의 지역소재와 특징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라고 말하며 부단한 움직임으로 연구를 늦추지 않으면서 시립극단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활동을 우선으로 하겠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전주의 관립극단임에도 불구하고 전주시민들이 모르는 아이러니한 모습에서 벗어나겠다는 뜻일 것이다.
타 시도보다 나은 극단으로 올라가는 것이 첫 번째, 시민들이 아껴주는 극단이 되는 것이 그 다음, 마지막 목표로 전주라는 도시를 알리고 있는 단체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전주시립극단의 목소리를 듣는 방법은 귀가 아니고 발이다. 직접 찾아가 보아주는 것만큼 더한 관심은 없다. 전주시민이 아껴주는 극단이고 싶다는 그 마음이 너무 큰 욕심이 아니라면 어느 문구처럼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현되도록, 그들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게 애정으로 보아주자.
2006 전주시립극단의 나머지 공연 <쑥부쟁이>, <엄마! 안녕>, <이화만발(가제)>, <도덕적 도둑>, <위기의 여자>는 문화영토 소극장 ‘판’, 창작소극장, 덕진예술회관에서 6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된다.
| 송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