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6 |
한지의 한브랜드화 지원전략
관리자(2006-06-10 10:14:24)
글 | 강진하 전북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종이를 제조하는 기술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처음 전래되었을 당시에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마섬유를 자르고, 맷돌에 갈아서 종이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종이의 원료로서 마섬유, 볏짚 등 다양한 식물섬유를 사용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닥나무 인피섬유(이하에서는 닥섬유라 지칭하겠음)를 사용하게 되어 닥섬유를 주원료로 한 우수한 한지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한지는 품질이 우수하여 중국에까지 그 우수성이 알려져 중국으로 보내는 공물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서사용지, 서화지 뿐만 아니라 창호지, 장판지, 벽지와 같은 주거용과 전지공예품, 지승공예품, 지호공예품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 까지 그 용도는 우리생활 거의 모든 곳에 이르렀으므로 한지와 함께 생활하다가 한지와 함께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들어와 기계초지기가 도입되면서 목재펄프를 주원료로 한 양지가 보급되기에 이르렀으며, 점진적으로 서사용지 영역을 양지가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주거 양식이 변화되면서 창호지와 장판지 수요가 크게 감소되었으며,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한지공예품의 사용 영역도 대체품의 출현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서화용지 영역만이 남게 되었는데, 중국과 수교이후 중국에서 저렴한 화선지가 대량 수입되면서 서화지 시장도 상당히 잠식됨으로서 한지 산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와 같이 한지 산업이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원가를 절감하기 위하여 주재료인 닥섬유를 국산 닥이 아닌 태국 등지로부터 수입한 저급 닥섬유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부재료인 목재펄프도 품질이 열악한 고지를 이용함으로써 한지의 품질이 저급화되었다. 결과적으로 한지는 가격 면에서 중국 화선지에 밀리고 품질 면에서는 일본 화지에 뒤떨어지는 위치로 전락하여 한지는 그 영역이 더욱 축소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문화가 경쟁력이라는 사고의 변화에 따라 전통문화상품 중의 하나인 한지를 발전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지원시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한지의 본 고장인 전주에서도 전주한지를 살리기 위하여 각종 지원과 더불어 토론회 등을 통하여 여러 가지 방안이 논의되어 오던 중 2005년도에 정부에서 한브랜드 사업을 발표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전주시에서는 한브랜드 품목 중 한식, 한지, 한옥을 선택하여 육성하기로 하였는데, 이 글에서는 한지를 브랜드화, 세계화 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사료되는 지원전략 사업들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전주한지산업발전기획위원회’를 설치하여야 한다. 그 동안 전주한지산업에 관한 논의는 주로 이슈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국한되어 왔는데, 앞으로는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여 한지관련업체를 선도하고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료되므로 전주시에 한지 관련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주한지산업발전기획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와 같은 위원회가 설치되면 이를 통하여 장기발전계획의 수립은 물론 관련 업체에 대한 지원도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주시에서는 한지관련 산업분야와 문화분야가 각기 다른 부서에서 다루어지고 있는데 효율적인 업무추진을 위하여 통합된 TFT의 설치도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둘째, ‘전주한지의 역사 및 현황조사’가 필요하다. 역사기록에 보면 전주는 한지 주요 생산단지 중의 하나였고, 전주한지는 품질이 우수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전주한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조사, 정리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주한지의 지원 및 발전계획 수립시 기초가 되는 전주한지의 현황을 심층적으로 조사, 분석하는 것이 긴요하다. 또한 전주한지의 역사, 제조과정, 제품들을 소개하는 책자(한글, 영문 등)의 발간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셋째, ‘닥섬유 수매제도’를 추진하여야 한다. 고품질의 전통한지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국산 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지산업의 침체, 농촌 인건비 상승 등으로 닥섬유 생산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전주시에서는 닥무지 사업을 시행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닥나무 재배자들로부터 닥섬유를 생산원가 이상으로 수매하고 이를 한지생산업체에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도 좋은 지원 방법 중의 하나이다.
넷째, ‘한지관련 장인 및 무형문화재를 지정’하여야 한다. 한지의 전통과 맥을 잇고 한지산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하여 전주시에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한지관련 종사자에게 “장인”으로서의 명칭과 적절한 처우를 부여한다. 또한 “무형문화재”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한지 분야 장인들이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도 한지산업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한지초지공 양성을 지원’하여야 한다. 일본 미농시에는 「미농화지회관」이 있는데 여기에는 시에서 지원하는 화지초지공 양성과정이 있다. 교육기간 동안에 교육비 뿐만 아니라 교육 수료 후 화지공방에 종사하면 일정기간 수당도 지급하는 제도이다. 우리도 한지산업이 활성화되면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도입해 볼 만한 제도이다.
여섯째, ‘한지관련 신제품 개발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닥섬유와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한지관련 새로운 가공제품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현재는 각종 한지공예품들과 한지벽지가 상용화 되어 있는데, 닥섬유와 한지는 고가이므로 고부가가치의 신제품을 개발하여야 하는데 이를 위한 개발비 지원이 있어야 하겠다.
일곱째, ‘한지관련 제품의 마케팅을 지원’하여야 한다. 고품질의 한지와 한지공예품과 같은 한지관련제품들을 생산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이들을 제값 받고 다량 판매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지관련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하고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므로 이들에게 마케팅 교육을 실시함과 더불어 시에서 국내·외 홍보와 마케팅전략을 수립하여 한지업체들의 제품 판매 분야를 도와주어야 한다.
여덟째, ‘해외에서 전주한지문화제를 개최’하여야 한다. 전주에서는 전국 최초로 종이문화축제가 1997년에 시작되어 금년에는 제 10회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열렸다. 본 축제는 한지 홍보에 크게 기여하여 왔는데, 특히 금년의 경우 신설된 한지특허상품 초청전과 한지상품 기획 초청전 등을 통하여 한지의 미래와 산업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발전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지의 국내시장은 한계가 있으므로 해외시장을 개척하여야 한다. 예를 든다면 중국은 서예인구가 1,000만명 정도이므로 한지를 중국에 홍보하여 서화지 시장을, 한지문화상품은 서양에 홍보하여 공예시장을 개척한다면 한지산업이 크게 발전될 것이다. 이와 같은 한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위하여 중국, 미국 등에 가서 전주한지문화제를 개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또한 외국에서 열리는 문화관련 국제행사에 참가하여 한지를 홍보하는 방안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아홉째, ‘한지박물관의 건립’도 필요하다. 일본의 화지 주요산지(고찌, 이마다데 등)에는 그 지역에 있어 화지의 역사, 제조과정, 제품 등을 모두 볼 수 있는 화지 전시관이 있다. 이와 같이 전주에도 “한지박물관”을 건립하여 전주한지의 역사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한지관련 기록과 유물들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본 박물관에 부대시설로서 한지제조과정 전시관, 한지제조 체험관, 한지관련 제품 판매장 등도 설치하면 한지에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
열 째, ‘전주한지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여야 한다. 전주에는 한지 관련 제품 생산업체, 유통업체, 교육기관 등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조직화하여 클러스터를 구성하고 상호 협력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얻어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든다면 전주시가 주축이 되어 기반을 조성하고, 한지생산업체와 한지공예업체는 한지와 한지공예품을 생산하고, 한지유통업체는 제품의 마케팅을 지원하고, 대학은 인력양성을 담당하고, 전북 중소기업청은 각종 지원사업을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펼친다면 전주한지산업은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강진하 | 전주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현재 전북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과학부 교수로 재임 중이며 천년전주한지포럼 대표, 전주한지문화축제 조직위원, 한국 펄프·종이공학회 이사, 한국 목재공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