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1.4 | [문화와사람]
"애들아, 어깨 춤 절로 나는 우리 것이 있단다" 정읍 농악 전통찾는 이명로 교사
황경신 문화저널 기자(2003-04-08 09:44:10)
"야, 이놈들아, 우리 인생사 쉬운 게 하나도 없다." 수업시간도 아닌데 선생님의 불같은 호령이 떨어진다. 정읍 호남중학교의 '특별한 수업'에서 종종 벌어지는 광경이다. 점심시간, 운동장 한켠에서 진행되는 '호남중학교 농악단'의 연습시간이면 가락이 우와좌왕인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그 어려운 '인생사'를 운운하며 호령을 놓기 일쑤다. 호남중학교 농악단은 이곳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명로 선생님(57세)과 30명 남짓의 아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1984년 창설된 청소년단체 '청소년 연맹' 지도교사를 맡으며 기존의 청소년단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그가 택한 것은 바로 '농악'. 지금은 15년을 넘긴 세월만큼이나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정읍을 비롯한 다른 지역무대 경험도 풍부한 '경력자'들이 되었다. 정읍 토박이인 이명로 선생님. 그는 정읍 우도 농악을 어릴적부터 보고 들으며 커왔다. 당시만해도 동네에서는 자주 굿판이 벌어졌고, 농악단을 쫓아다니면 저도 모르게 흥이 나던 시절이었다. "조그만 시골 동네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우리 소리나 생활양식이 저절로 몸에 벤거예요. 그 시대에는 다들 그랬죠. 아버지 한복 빌려입고 동네 굿판 쫓아다니면서 말이죠. 교단에 서면서 우리 아이들은 그 좋은 걸 배우고 볼 기회가 없다는 게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클럽활동 시간에 딴 걸 할 게 아니라 우리 것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자고 맘먹었지요."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보고 들은 풍월이면 족할줄 알았던 것이 만만치 않았다. 가르치는 일은 무엇이든 어려운 법이다. 그는 정식으로 배워보자고 나섰다. 농악의 대들보들이 속속 숨어있는 정읍 구석구석을 찾아나섰다. 때마침 '어른'들이 모여 농악을 되살리자는 모임이 꾸려지고 있었다. 정읍 우도농악을 복원해보자는 모임이었다. 퇴근하고선 부리나케 전주까지 나가 도립국악원에서 장구를 익히고 수업이 끝나면 모임에 참여해 밤 12시를 훌쩍 넘기고 귀가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정읍 우도 농악을 복원하자던 모임은 89년 정읍사농악단을 창립했고, 열성적이던 그에게 쇠를 한번 잡아보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제대로 된 농악 교육을 해보자던 그의 관심은 그를 상쇠로 만들어 무대에 까지 올려놓았다. 여러 대회에 나가 수상의 기쁨까지 안았던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94년 열린 '호남우도정읍농악발표회'. 드디어 판굿이 전체가 아니었던 문굿을 포함한 당산굿을 위주로 복원해 낸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함께했던 마을 어른들은 해가 갈수록 노쇠해갔고, 나이 오십이 가까운 그가 농악을 아는 '젊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가 하나 더 발을 들여놓은 일이 정읍농악을 정리해내는 작업이다. "직접 장구를 치고 쇠를 잡았지만 판에 나서는 일보다도 정읍농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내는 작업이 더욱 시급함을 느꼈습니다. 농악책은 많아도 책 대부분이 이론 따로 실기 따로이기 때문에 교재로 사용할 수도 없고, 소리나는 대로 정리된 악보 하나가 없으니까요." 5년을 넘어서고 있는 그의 작업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어려워진다. 서울의 국회도서관, 중앙도서관에서 찾은 자료와 서적들은 이론만 앞서 있었고, 구석구석 농악의 대들보들을 찾아가면 지난날을 숨기기 바빴던 가족들은 소중한 자료들을 이미 다 불에 태워버렸다고, 한발 늦었다고 전해왔다. "이론과 기능을 포함해 악보, 부포와 벙거지 등의 굿물 제작까지도 정리를 해볼까 하는 욕심을 가지고는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알고 계신 어르신네들이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하자는 생각뿐이에요. 제대로 정리된 책 한권으로도 정읍농악의 기본적인 이론과 기능은 익힐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새학기를 맞아 그는 더욱 바쁜 한때를 보내고 있지만, 요즘같아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가 여간 어렵다. 신입생들 중 올해는 농악반에 어떤 녀석들이 들어오게 될지 내심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마다 자신의 불호령에 우리 것의 맛과 멋을 익혀가는 아이들 손에 자신이 정리한 책 한권을 내미는 그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