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6.6 |
바퀴의 길과 발바닥의 길
관리자(2006-06-10 10:05:38)
욕심껏 산행을 하다보면 해저물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의 마을로 다시 돌아오게 돕니다. 이때쯤 포장된 도로를 만나게 됩니다. 이상하게 이런 도로를 만나면서 두 다리는 조금만 쉬고 가자고 투정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저 혼자만 경험을 한 게 아니라서 몇몇 친구들과 이런 증세를 두고 분석을 해 보았습니다. 적당히 지친데다 이제 목적지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 원인으로 제시되었습니다. 포장된 길은 흙길과 감촉이 달라 그 충격이 고스란히 척추를 통해 감지된다는 제법 그럴듯한 논리에 대하여는 “그럼 산중에 깔린 돌은 푹신하더냐”는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두어 달 전에 한국의 전통마을을 소개하는 한필원 교수의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한 교수가 보여준 전통마을의 고샅길은 참 푸근하였습니다. 그때 보았던 한 장의 그림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장성 금곡마을 입구의 밋밋한 비탈길입니다. 평범하다 못해 볼품없이 보이기도 하는 그 길을 허리 굽은 노인네가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갑니다.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그 유장한 높이의 변화에 길을 오간 마을 사람들의 수없는 발자국이 찍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백제기행 일행과 함께 필암서원 다녀오던 길에 영화마을이라 하여 금곡리에 갔었고, 그 길을 걸었고, 밭 가운데로 되똥되똥 달아나며 꺽꺽대는 거위들도 보았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만든 길에는 시도와 교정과 확인의 절차가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고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만든 길에는 두 지점을 연결하려는 의지만 있을 뿐 길을 오가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도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을 하려하면 앞을 가로막는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화단이며 잔디밭이며 다른 건물이 앞을 가로막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입구들은 서로 외면하고 다른 곳을 봅니다. 이점을 감안하면 점심시간에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가려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가도록 놓인 찻길이 있는데 일부러 속을 거북하게 만들면서 걸어서 식당에 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차 없는 사람이나 걸어가지요. 도로를 내고 집을 세우기 전에 여러 번 걸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걷고 싶은 길이 생길 것입니다. 아니면, 그럴 시간이 없다면, 옛길을 보고 배우면 좋겠습니다. 새로 좋게 만들 여력이 없다면 탈 없게 흉내라도 내야 할 것 아닙니까? 전주 시내에서도 그런 길들이 있습니다. 서문교회 앞에서 매곡교 쪽으로 뻗은 골목길을 걸으면 발길이 편합니다. 물론 눈으로 보이는 것까지 그렇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눈길까지 욕심을 내시면 중노송동 물왕멀에서 서낭당이 사이의 비탈에 얽히고설킨 골목길이나 요즘 부쩍 바쁜 한옥마을의 골목길을 추천해 드립니다. 바퀴가 대접받는 시대입니다만 발바닥을 위하여도 몇 개의 길은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조상 호모 에렉투스, 직립원인을 기억하기 위하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제안하는 바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하루에 시오리를 걸으면 행복해진답니다.   | 정철성 편집주간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