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아름다운 고집”
관리자(2006-05-10 16:32:54)
글 | 송경미 기자
요즘에는 음식점의 맛보다 그 곳의 조명, 음악, 전체적인 인테리어(세련되고 은근한 분위기)를 보고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전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스펠바운드는 시내의 다른 카페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징적인 것이 있다. 소장하고 있는 3000여개의 재즈판과 CD로 선곡을 한다는 점이다. 16년 전 재즈카페라는 이름으로 오픈했을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그동안 스펠바운드 같은 재즈카페들도 많았지만 시대에 따라, 주인에 따라, 목적에 따라, 카페의 성격을 바꾸어 가며 사라졌다.
“진정한 재즈카페란 음악, 술, 커피의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윤을 남기려고 예쁜 종업원들을 많이 두면서 장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희는 처음 이 곳이 생겼을 때 그 분위기를 고집하고 있어요. 재즈를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아요. 그게 없었다면 이 곳도 다른 가게들처럼 달라졌겠지요. 저희가 가게를 인수하고 나서 처음으로 인테리어를 바꿨어요. 예전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게 낡은 것들 만요.”
스펠바운드의 4번째 주인 박현정 씨의 말이다. 남편 김기범 씨가 사장이지만 요즘 다른 일로 바빠서 박 씨가 운영권을 도맡고 있다. 처음부터 스펠바운드를 운영하지는 않았지만 10년 전 손님으로 즐겨 찾았었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였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화려한 바의 모습을 보고 이 곳의 메뉴와 성격을 단정 짓는 것은 금물이다. 메뉴는 커피와 음료, 와인, 위스키, 칵테일로 다양하다. 그 개별적인 종류만 따져도 열 가지씩이 넘는다. 위스키와 와인은 병단위로 팔기에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칵테일은 전부 7천원, 커피와 음료는 4천 원대로 부담 없이 마시기 좋다.
“와인은 사장님이 직접 서울에 가서 좋은 걸로 골라 가져와요. 커피도 이태리 원두 라바짜로 직접 내리구요. 좋은 재료를 써야 맛도 좋거든요.”
전주에서 몇 안 되는 에스프레소 커피 맛을 자랑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카페라는 이름을 가진 곳에 들어가서도 커피 한잔만 시키기에 민망해서 “여기 커피 되요?”라고 묻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은 요즘 그런 염려를 하지 않고 가도 될만한 곳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봐왔는지, 아니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미리 “편안하게 들어와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음악 듣고 책 읽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박현정 씨다.
스펠바운드는 재즈음악의 마니아 수준의 단골이 많다. 초기 오픈했을 당시 재즈 음악에 끌려 찾던 손님들이 지금까지도 발길을 끊지 않고 꾸준히 찾아오고 있는데 스펠과 함께 나이 들어 지금은 40대가 다 되어 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가족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당연할 터.
“따로 고객카드 같은 것은 만들지 않았지만 스펠패밀리라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모임에 속해 있는 손님들이 계세요. 유난히 친근한 분들이라 서로 편하게 안부도 묻고 생일도 챙겨주고 그래요.”
6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면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가진 손님들을 접하면서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는데 그것을 총괄하는 느낌은 인생이었다고….
스펠바운드는 오후 4시부터 새벽 2시까지 손님들을 맞는다. 하루 열 시간 꼬박 가게를 지켜야 하는 박 씨는 손님이 없는 날에도 음악이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3000여개가 넘는 판을 알파벳 순서대로 목록을 만들어 정리할 수 있었던 끈기의 출발지는 바로 좋아하는 것에 대한 그치지 않는 관심이었다.
관심은 열정을 만들어내고, 그 열정은 고집이 된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발맞추려 자기의 정체성을 잊고, 잃고 흔들리는 사람들, 그 마음들이 안타깝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에서 재즈음악처럼 물결 흐르듯이 흘러온 스펠바운드에서 나에게 오래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내가 잃어버린 고집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잊고 살았던 그 부분적인 것들이 모여 ‘나’라는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갈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