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아름다운 꽃이 되길 바라며
관리자(2006-05-10 16:11:42)
글 | 여은미 김제 황강초등학교 교사
우리 선생님
류보민
선생님을 정하는 날
우리 선생님은
어떤 분이 될까?
난 여은미 선생님이 좋은데..
와~ 여은미 선생님이다.
사과처럼 예쁜 우리 선생님.
따뜻한 마음으로
공부 가르쳐 주시고
잘못을 해도 때리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마음이 푸른
우리 선생님
목소리도 아름답게 하시는
착한 우리 선생님
3월 첫 주, 반 아이들과 동시 쓰는 시간 보민이가 지은 동시다. 이 동시를 읽으며 아이들에게 좋은 가르침을 전해주는 교사가 되기를 더욱 다짐했었다. 올 한 해를 기대하는 아이의 마음이 나의 다짐을 도울 지원병인 것 마냥 느낌이 좋았다. 아마 올해는 8명의 아이들과 함께 사랑과 꿈을 키우는 멋진 학급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생겼다.
어느덧 그때로부터 두 달이 지나 4월말이 되었다. 두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학교에 오면 아침부터 아이들 하교 시간까지 시간이 숨 가쁘게 흐른다. 아이들과 공부하고, 환경정리, 연초 업무 계획 세우기, 업무추진 등을 하고 나면 첫 주에 가졌던 그 신선하고 부푼 풍선처럼 차올랐던 기대감은 어디론가 사리지고 매일을 당연한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크게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3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플라스틱 병에 콩나물을 가지런히 담아 창가의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하루가 지나니 노란 콩머리가 녹색으로 변해있고, 며칠 더 지나니 쌍떡잎이 나오고, 쌍떡잎이 나오자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무럭무럭 자라는 콩나물을 보고, 나도 아이들도 생명의 신비와 가꾸는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언제가 우리들의 콩나물 가꾸기를 방해하는 무언가 등장했다. 낡고 오래된 교사(校舍)의 연통을 밤마다 오가는 쥐란 녀석이 우리들의 콩나물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순한 잎을 그대로 두지 못하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갉아 먹었던 것이다. 소담하게 잎을 내던 콩나물들의 잎을 여기 저기 갉아 먹은 흔적이란 볼 성 사나운 것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콩나물이 당한 것(?)을 보는 아이들의 마음도 좋지 않아서 서운함이 잔뜩 배어 있었다.
아이들을 보노라니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이를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존재를 느끼게 되고 꽃이 되었던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가꾼 콩나물은 여느 콩나물이 아닌 소중하고 귀한 아이들의 것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했으니 작은 생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소중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을 보자니 콩나물과 아이들, 나와 아이들의 관계와 유사한 것 같다. 본교에 와서 벌써 세 해를 맞이했다. 전교생이 50명 정도인 조그마한 학교는 선생님들이 전교생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알게 된다. 외려 모르는 게 이상하다. 늘 대하는 아이들이다 보니 심지어는 아이들의 가정사도 알고 개인적인 상황도 알게 된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이 모두 나의 꽃이 되지는 않는다.
올해 맡은 아이들은 아이들이 3학년 때부터 3년째 보는 것이지만, 단지 옆 반 아이들로서밖에 존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담임과 제자로 한 학급으로 엮어지다 보니 그 아이들은 어느새 나의 꽃이 되어버렸다. 전에는 단지 예쁜 아이들이었지만 이제는 소중한 아이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들이 자신과의 관계가 형성된 콩나물을 아끼듯, 한 학급으로 만난 8명의 아이들이 나에게 꽃이 되어 나의 마음을 환하고 예쁘게 가꾸어 주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을 듣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귀 기울이며 듣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마음이 소담한 콩나물을 대했을 때의 아이들의 마음과 유사해졌다.
요즘 이상하게도 환절기라 그런지 아픈 아이들이 유난히 많다. 8명의 아이들이 요 몇 주 사이에 감기와 편도선염으로 돌아가며 앓았으니 말이다. 이틀 전에는 두 명의 아이들이 결석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고열로 인한 두통과 아픔을 호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으로서 도와줄 수 없음에 안타깝고 미안하고, 마음이 상했다.
아이들을 나의 꽃으로 대하며, 나는 시나브로 아이들의 엄마가 된 것이다. 예쁘고 바르게 자라라고 마음 가득 소원하게 되고, 틈틈이 기도하게 되고…. 물론 배 아파 낳은 어미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그 마음을 따라 갈 수는 없지만 아이들을 매일 대하노라니 아이들의 엄마가 된 듯했다. 아이들의 학교 엄마..^^
아이들이 내 인생에 깊이 들어와 내 마음을 살찌우고, 내 인생을 더없이 즐겁게 해주었다. 가르치는 기쁨, 도와주며 아이들을 이끌어주는 도우미로서의 보람, 그것이 바로 교사로서 느끼는 행복감이다. 아이들이 나를 자신의 꽃이 되게 하고, 나도 아이들을 나의 꽃이 되게 함으로 인해 느끼는 뿌듯함이란 가슴을 꽉 차게 하는 좋은 기분이다.
물론 행복과 사랑이 풍성하며 늘 좋은 일만 있는 그런 교실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호락호락하고 쉬운 것도 아니다. 5년째 교사로 서다보니 교육의 현장에서 인생의 진한 교훈을 많이 얻었다. 그 중 가장 다가왔던 것은 인내. 사실 아이들이 교사의 의도대로, 교사의 가르침대로 100% 따라준다면 인내가 필요치 않을 텐데, 실제로 그럴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깊은 교훈을 얻게 되었다.
목에 핏줄을 세우며 열심히 가르쳤건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교실. 시험을 보고 시험 점수를 주다보면 교사의 생각과 아이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또 많이 느낀다. 분명 가르쳤건만 배우지 않은 것을 대하듯 답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느라 애쓴 아이들의 흔적. 답만 피해가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
그뿐이랴? 전 시간에 배운 것을 물어볼 때면 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수학 원리를 알려준다고 열과 성을 다했건만 몇 아이들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볼 때. 사소한 일로 친구들과 말다툼하고 토라지거나 울고 있을 때, 학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할 때도 선생님의 재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아이들, 한 번 했던 말을 자주 반복할 때 등등….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마음속에 조급함이 들 때는 조급함을 쫓아내느라 나와의 싸움으로 마음이 전쟁터가 될 때도 있다. 먼저 태어나서 먼저 배운 선생(先生)으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개인 경기가 아니라 공동체로서 함께 나야가야 한다면 함께 하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보조를 맞추어야 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앞선 이들의 기다림은 얼마나 중요한가? 교직 첫 발을 내딛고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며 그간 숱한 나와의 싸움을 한 뒤에야 비로소 조급한 마음을 뒤로 하고 느긋하게 인내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무척 소중한 우리 아이들 하나, 하나, 하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꽉 채우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인내로 꿈을 키워주는 좋은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런 교사로 서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아이들과 나, 모두의 인생에서 서로가 더욱 소중한 꽃으로 불려지기 위해서….
여은미 |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다. 전주교대를 졸업했으며 올해로 교직 6년째, 현재 김제 황강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