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저작권
관리자(2006-05-10 16:11:08)
일찍이 백남준은 20세기 문명의 총아인 텔레비전을 이용하여 조형물을 설치한 비디오아트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을 개척하였다. 고정 설치물인 조형예술에 영상이라는 변화를 가미한 것으로서 기존 설치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서울랩소디’의 모니터에 본래 작품의 내용물인 DVD를 빼고 대신 청계천 홍보 영상물을 넣어 상영함으로써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시가 제작해 반복 상영된 이 영상물에는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복원공사 기공식에서 연설하는 장면, 복원 완공식에서 청계천 물에 손을 담그고 웃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는등 이시장의 홍보물 같은 영상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다.
본래 ‘서울랩소디’라는 작품은 가로 10미터, 세로 6미터 크기에 중앙 150개, 좌우 64개씩 총 278개의 TV 모니터가 벽면을 메우고 있으며, 중앙의 모니터에서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등 일곱 가지 DVD가, 좌우 각 63개의 모니터에서는 ‘체이스 5’, 나머지 각 한 개의 모니터에서는 ‘누드’라는 제목의 DVD가 상영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DVD 내용물은 백남준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DVD 내용물을 임의로 바꿔치기 한 것에 대하여 작가 측에서 항의하자, 시립미술관 관장은 ‘미술관은 시 홍보 전시를 할 수 있으며, 백남준이 홍보 전시를 원치 않았다면 우리 미술관에 작품을 팔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그는 ‘나도 작가다. 소장가가 자기 집에 내 작품을 어떻게 걸든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고도 한다.
백남준이 ‘서울랩소디’를 서울시립미술관에 판 것은 사실이므로, 이 작품의 소유권은 미술관측에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소유권자가 자신의 소유물을 변형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건에서 시립미술관장의 말처럼 미술관이 매입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에서 모니터의 상영물을 임의로 바꾸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백남준이 ‘서울랩소디’를 미술관에 팔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그 조형물을 판 것일 뿐, 이 작품의 저작자는 여전히 백남준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소유권자와 저작권자가 달라진 것이다. 저작권자에게는 저작물은 원형 그대로 존재하여야 하고, 제3자에 의하여 무단히 변경, 삭제, 개변 등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도록 이의를 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저작물이란 저작자의 사상, 감정을 표현한 것이므로 저작물의 수정, 변개는 저작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저작인격권의 일부로서 법이 보호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동일성유지권이라고 한다.
물론, 오탈자의 정정과 같은 사소한 변경은 저작자의 동의 없이도 소유자가 할 수 있는 것이나, 이를 넘어 원저작물에 개변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된다. 비디오아트가 바보상자인 TV 모니터를 단순히 입체적으로 배열한 것에 그 전적인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고정설치물에 시시로 변화하는 영상물을 집어넣어 그 영상물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도 그 예술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에 대해서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모니터에서 상영되는 내용물을 바꾼 것이 뭐 그렇게 대수냐는 투의 반응은 마치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 비디오아트의 전원을 빼놓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전원이 꺼져 있는 모니터를 폐품처럼 쌓아놓은 것이 백남준 예술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 hd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