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고군산군도로 떠나는 방언 여행
관리자(2006-05-10 16:09:29)
군산에서 뱃길로 한 시간 반쯤 가면 동화 같은 땅, 고군산군도를 만나게 된다. 파도에 밀려 떠다니지나 않을까 싶은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어 그 자체가 신비인 고군산군도. 그러나 머지않아 자동차를 타고 올 수 있게 되었으니, 수천 년 동안 내려오던 섬의 정취가 사뭇 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새만금 간척으로 말미암아 그 동안 간직해 온 신비감을 잃게 될 땅, 고군산군도의 삶을 전래 지명과 방언 어휘들을 통해 만나 볼 생각이다.
바다와 섬, 그 거칠고 외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온 섬사람들의 생활은 뭍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했던 듯하다. 지금처럼 좋은 배들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섬을 떠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그 섬에서 나서 그 섬에 묻혔어야 할 운명적 탄생 자체가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온 종일 바다와 하늘만 바라보며 멈춰버린 듯한 시간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고군산군도의 섬들에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뜻도 모를 이름들이 고샅마다 붙어 있다.
깔따끄미, 무시끄미, 찡끄미, 쌩끼미, 만석끄미1) 검은여, 신여, 마당여, 문여, 주벅여, 만잔여, 작은여, 큰여, 숨은여, 멍등여, 따끈여2), 구물장불, 진장불, 띠반네기장불, 살막끄미장불, 은골장불, 대끄밋장불3), 올꺼티, 서꺼티, 재공밑이, 단소끝, 낭끝이, 떨꼬테, 살끝이, 지시락, 컨산내리지기, 깨진받모팅이4), 진또, 청돌, 안또, 잘푸도5), 쑥섬, 쥐똥섬, 비부락섬, 서당섬, 시루섬, 밭너무, 통계너무, 당너무, 가장너무, 큰재너무, 구렁너무, 도너무, 새미너무, 쇠코바우, 구녕바우, 딴노지바우, 중바우, 엎진바우 ……
전통적으로 남녀의 주업이 구분되어 있던 시절, 이곳 또한 바깥일과 안일이 엄연하게 구분되어 왔다. 남정네들은 배를 타고 나가 고기 잡는 일에 전념하고, 아낙네들은 ‘갯것6)’, 밭일, 약초 캐기과 더불어 안살림까지 도맡아 했다. 남정네들이나 아낙네들이나 자신들이 생활하는 터전과 행위 하나 하나에 이름을 붙여 서로 공유해 온 결과가 전래지명이고 방언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뭍사람들에게 마치 암호처럼 느껴진다.
“너그매 으디 가 냐?”
“아부지랑 써내기7) 타고 컨산내리지기로 갯것 간다고 허시든디요?”
“아이고 무사 죽겄네, 겁도 없네잉, 거그서 먼 갯것을 헌다고.”
물이 ‘쓰고’8) 나면 아낙네들은 ‘소쿠리’나 ‘꿀자루’9) 에 ‘호맹이’나 ‘조세’10)를 들고 ‘검은여, 조금널구석, 떨꼬테’ 등으로 ‘다지금’ ‘갯것’을 나간다. 정말로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는 더 좋고 신선한 조개와 미역 그리고 굴을 따기 위해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내려가 ‘갯것‘을 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야미도에는 ‘애기 밴 여자 낑겨 죽은 바오‘라는 지명이 있을까.
아낙네들이 섬의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약초며 해산물이며를 캐고 다닐 때, 남정네들 또한 그 거친 바다와 실랑이를 벌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뗏마11) 타고 나갔다가 풍랑 만나 일주일을 표류하다 살아난 이야기, 초가 이엉 만들 ‘지푸라기’ 사러 부안 계화도 나갔다가 ‘두대배기’12) 전복되는 바람에 대여섯 집 제삿날이 같은 날이라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평도서 완도까지 서해 전체를 누비며 다니다가 안개 자욱한 날 쏜살같이 지나가는 ‘헛배’13)를 보고 만선기 꽂아 돌아왔다는 이야기 등은 여전히 투박하고 억센 섬 사나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깃든 무용담들이다.
그 고단한 삶을 살아오면서 혹은 늘 같은 풍경 속에서 붙박이로 지내오면서, 사람들은 또한 자신들의 처지를 돌아보거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온갖 이야기 문화를 발전시켜 오기도 하였다. 귀양 온 벼슬아치가 이곳에 올라 날마다 임금께 절을 올렸다던 망주봉14), 최치원 선생의 탄생 설화가 남아 있는 금도치굴,15)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올라 글을 읽자 그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렸다는 월영대, 과거보러 간 남편이 작은 부인을 데려오는 것을 보고 아이 업은 채로 돌이 되었다는 장자 할미 바우. 그 중에서도 퍽 기이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이곳에 범 씨 천년의 왕국이 건설된다는 정감록 이야기이다. 선유도 ‘진말‘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에 문이 있는데, 동문은 ‘꼬지’의 ‘쇠코바우’, 서문은 선유도 ‘나매기‘의 ‘금도치굴’, 남문은 야미도의 ‘구녕바우’, 북문은 방축도의 ‘구녕바우’ 그곳에 각각 동서남북의 문이 생기고 바다가 육지로 변하게 되면 천년 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방언 조사 나온 필자를 깨워 안개 자욱한 새벽 바다에 빈 낚시 드려 잡아 올린 고기를 썰어 주시던 고 송봉옥 할아버지, 객선 끊겼다고 파도 일렁이는 바다를 갈러 ‘나매기‘로 데려다 주시던 ‘배미16)’ 이영철 아저씨, 고단한 사람 깰까 싶어 볼륨 작게 하고 바짝 다가앉아 테레비 보시던 ‘배미‘ 이춘생 할아버지, 조사 제대로 하라며 기름 가득 채워 섬 전체를 돌아보게 하시던 ‘꼬찌17)’ 곽판수 할아버지. 그 투박한 손들을 부여잡고 아쉬운 이별을 할 때 옹이하나 없는 필자의 손을 부끄럽게 하시던 그 분들을 생각하며, 새만금 사업이 환경문제를 제대로 극복하여,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려 했던 그들의 신화가 실현되기를 기원해 본다.
| 언어문화연구소장
1)지명은 통상 사연 혹은 의미가 있는 어근부와 지형적 특성이나 기능을 담당하는 지명소로 나뉜다. 그러니까 ‘만석끄미‘는 ‘만석‘과 ‘끄미‘가 합해진 것인데, ‘만석‘은 ‘아주 넓은‘의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부이며, ‘끄미‘는 ‘움푹 패인 지형으로 이루어진 동네‘정도를 나타내는 지명소이다.
2)‘-여‘는 보통 암초 정도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물이 들면 바다에 잠기고 물이 쓰면 모습을 드러내는 바위를 말한다.
3)‘-장불‘은 넓은 해안가를 의미한다. 대개 모래로 되어 있는 곳이 많으나 자갈로 이루어진 곳도 통상 그렇게 부른다. 그러니까 ‘-장불‘은 ‘긴 長‘과 벌판의 ‘벌‘이 합해진 말이라고 할 수 있다.
4)이러한 방식의 지명들은 특정한 지점을 가리킬 때 주로 쓰이는데, ‘올커티, 서커티‘ 등은 ‘재공밑이‘ ‘단소끝‘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밑, 끝+-에‘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5)‘-도‘가 붙은 지명은 둘로 나뉜다. 큰 섬을 가리키는 말이거나 배가 닿는 나루를 의미한다. 여기 제시된 지명들은 ‘건널 渡‘의 의미를 지니는 나루의 이름들이다.
6)‘갯것‘은 갯벌에 나가 조개를 캐거나 굴을 따는 일을 가리킨다.
7)‘써내기‘는 ‘船外機‘ 즉, 큰 배 이외에 가용으로 타고 다니는 배를 말한다. 이곳 사람들은 ‘써내기‘를 보통 뭍의 자가용에 비유한다.
8)물이 들면 들물, 쓰면 썰물이다. 그러니까 뭍에서 ‘썰물‘은 그 자체가 하나의 화석형이지만 여기서는 ‘쓰-‘라는 동사가 살아 있는 셈이다.
9)이곳에서는 굴을 보통 꿀이라고 부른다. 찬바람이 불면 갯것의 주 대상이 굴이었으니 정말 꿀 같은 존재인 듯도 하다.
10)굴을 딸 때 쓰는 도구
11)‘뗏마’는 통나무를 엮어 만든 ‘땟목’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가까운 거리는 뗏마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12)돛을 달고 다니던 배는 돛의 수에 따라 ‘두대배기, 세대배기’ 식으로 불렀다고 한다.
13)‘헛배’는 우리가 유령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종종 ‘헛배’를 보았는데, 그것을 보고 나면 만선을 한다는 속설이 있었다고 한다.
14)선유도 해수욕장의 관광 사진 속에 언제나 등장하는 망주봉은 ‘望主’라고 하기도 하고 ‘望舟’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큰 봉우리를 ‘큰돛‘, 작은 봉우리를 ‘작은돛’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는 아기장수 설화가 남아있기도 하다.
15)‘금도치굴‘은 ‘돝‘ 즉 금돼지굴이다. 밤마다 누군가가 방에 들기에 하루는 그의 옷에 실을 꿰어 두었다가 아침에 그 실을 따라 가 보니 그곳이 금도치굴이었다고 한다. 그 후 산기가 있어 태어난 아기가 최치원 선생이라고 한다.
16)‘배미‘는 야미도의 전래 지명이다.
17)‘꼬찌‘는 관리도의 전래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