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무주군 설천면 배방마을
관리자(2006-05-10 16:09:00)
소나무가 지켜주는 전통공예마을
“나는 당신을 위해 이렇게 서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났던 모든 재난 속에서도 오직 당신을 위해 의연히 서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아끼고 사랑해 준다면 당신과 당신의 후손들 곁에서 억겁을 살으렵니다.”
배방마을 입구 오른편 언덕에, 320년 동안이나 이 마을을 지켜온 소나무가 말하는 이야기이다. 열세그루의 후배 소나무들에 빙 둘러싸인 이 소나무는 밑둥 둘레가 3.8m나 되고 키가 20m나 되는 낙락장송의 마을 지킴이다. 가지가 높고 빼어나서 낙락(落落)이라 하고, 아름드리 줄기가 까마득하게 자라서 장송(長松)이라고도 한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은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소나무와 함께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21일)동안 잡인의 출입을 금하려고 푸른 생솔가지를 끼워 금줄을 쳤다. 솔가지로 불을 땐 소나무로 집에서 자라고, 소나무로 만든 생활도구나 농기구를 쓰면서, 송편이나 솔잎주 등 소나무와 관련된 음식을 먹으며 살다가, 이승을 하직할 때 소나무 관에 들어 뒷산 솔밭에 묻힌다. 소나무에서 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소나무 밭에 죽는 우리네 생활을 소나무와 꼭 닮은 소나무 문화라 할 수 있다. 배방마을 사람들은 소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무주 리조트 입구 무주군 설천면 배방마을 노인정 회원은 60여명이다. 남자가 25명, 여자가 35명으로 70살 안쪽이 딱 한명인데 올해 68세이다. 올해 90세인 채일남 할아버지는 아직도 건장한 체격에 짚신을 삼고 있다. 짚으로 멍석이나 짚신, 버드나무 채반, 싸리나무로 만든 바작 등을 만들지만, 그 중 인동초 넝쿨로 만든 소쿠리는 이 마을 대표 브랜드이다. 거기에선 댕댕이 넝쿨을 중간에 띠처럼 대어 통일성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전통공예의 조형미를 볼 수 있다. 공예가 이 마을에서는 고상하고 우아한 예술이 아니라, 생활이다. 짚풀 공예를 통해 노인들은 치매까지 예방한단다. 게다가 이 공예품을 팔아 연간 300만원정도 돈으로 봄·가을에 두 번 마을 전체 회원이 놀러 간다. 올해 배방 경로당 봄놀이는 4월 26, 27일 1박 2일로 간다. 다른 마을은 대개 경비 등의 문제로 당일치기가 예사이지만 항상 1박을 한다. 이 덕분에 마을에서 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충분히 자립해서 생활한다.
겨울에는 마을사람 전체가 매일 마을 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다. 소주도 하루에 1.8ℓ대병 3개를 마신단다. “술 끊어야 좋을 게 없다. 먹는 대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80세의 김수환 할아버지의 지론이다. 고스톱이나 화투도 못치고, 마을전체에 담배 피우는 사람도 3명밖에 없어 술 한 잔 하는 게 유일한 취미다. 회관에 모여 왕골, 싸리, 볏짚, 조릿대, 닥나무를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공예품이나 지게, 복조리 등을 작고 예쁜 모양으로 만드는 예술가들이다.
인동초만으로 소쿠리를 만들다가 밋밋해서 댕댕이 넝쿨을 한 줄 넣어 봤다. 아니 이번에는 반대로 댕댕이 넝쿨소쿠리에 인동초를 넣어 보았다. 두 바구니가 서로 쌍을 이룬다. 이런 무늬야말로 자연 그대로 천연 그대로의 색감과 디자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공예품이고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예술가들이다. 배방마을의 짚풀 공예는 개인 공방에서 비법을 전승하는 공예가 아니라, 마을회관에서 오순도순 함께 모여 정을 나누고, 정을 엮어내는 공동작업이다. 제품 판매 수익금은 마을 공동기금으로 관리해 마을에 축하할 일이나 불행한 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의 뜻을 모아 사용한다. 배방마을이 다른 부락에 비해 재정상 부유한 것은 짚풀 공예 수익금을 공동으로 관리해 기금을 조성하고 사용하는데 있다.
무주리조트 입구에 위치한 탓이기도 하지만, 마을에 있는 몇몇 집은 아주 멋진 최신식 집이다. 다른 시골 마을이 쇄락하여, 텅 빈 듯 고요한 마을임에 비해, 이 마을은 활기가 넘치고 세련미를 더 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