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실컷 살지 못했다
관리자(2006-05-10 16:05:56)
글 | 김용옥
사람들아, 무언가에 빠져 시간을 죽이는 존재들아. 그대들은 무슨 힘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랑하는 힘으로, 일하는 힘으로, 또는 술 마시는 힘으로, 고독의 힘으로 살까?
나는 아직도 실컷 살지 못했다. 이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내 영혼. 비록 내 영혼의 나무 밑둥치가 거칠며 곁가지 잔가지가 뚝 뚝 부러져 옹이지고 둔탁해 보일지라도, 폭풍우에 쓰러지지 않도록 땅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다. 나는 죽지 않았다.
빛나는 20대 중반부터 삶은ㅡ타인은 나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인생이 절망적이었고,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는 고독감에 죽고 싶었다. 생활 속의 도피처인 편식적 관념의 종교, 평범한 교훈이나 속물적 오만에 짓눌리고 절어서 인간과 삶의 본질을 잃는 게 고통스러웠다. 그때마다 “나는 아직 실컷 살지 못했다”를 자각하며 끈질기게 삶을 사랑하려 애썼다. 내가 누구? 내 영혼의 빛깔은? 삶의 무지개를 본 적은? 다 이룬 삶이란? 인생이 뭔지도 모른 채 죽을 순 없었다. 그리고 살아남았고 아직 살고 있다.
1964년에 자필로 쓰여진 수백 편의 詩 모음집. 그것을 펼쳐 본다. 시를 외우며 시적으로 살고 싶어한 인생은 결코 시적이지 않으며 폐허 또는 황무지 같은 것을. 그래도 그 척박한 대지를 일구며 기다리며 영혼의 집 한 칸을 마련하여 바람을 버티어내는 것이 인생인 것을.
겨우 스물 몇 살의 청년이 세계2차대전에 참전하여 저 시를 남기고 전사했다.
나는 장병파월 반대데모에 동참하고 반전사상에 뿌리를 박았다. 늙은 권력자들의 이념과 기득권 전쟁에, 무엇보다도 젊은이와 어린이와 여자들이 고난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걸 아니까. 그러나 지구상에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나는 나의 시와 수필대로 살았고 살고 있다. 야비하느니 배가 좀 고픈 게 낫고 협잡하는 동료가 되느니 외로운 게 낫다. 시인이란 절망의 끝, 고독의 극점, 사색의 마지막까지 탐구하는 존재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실컷 살아’보는 방법이다.
실컷 살아 보려고 책에 영화에 음악에 미술에 종교에 식물에, 만남과 이별에 미쳤고 이젠 인내와 허무에 빠져 있다. 가슴 밑바닥에서 비질비질 눈물이 새어나오고 아직도 나는 실컷 살지를 못했다. 인간과 인생을 서로 완벽하게 이해시키는 것은 바람에게 자물쇠를 채우는 것과 같은 거겠지.
인생의 1/3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길러지는 꽃나무로 살고, 1/3은 괴로운 행복, 비참한 지성, 별 하나 돋지 않는 밤하늘에 별 하나 띄우려는 노력으로 살았다. 눈을 부라리거나 흘기거나 내려까는 사람들 속에서 또 1/3을 탕진하고, 살아남았다.
이제 나는 잘 죽기 위해 산다.
세상살이란 황사바람에 날아온 모래가 맨 종아리나 팔에 박히는 일이다. 팔이 있어서 종아리가 있어서 아픈 일도 생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아직 실컷 살지 못했다.
김용옥 |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시집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이유는』, 『그리운 상처』, 『세상엔 용서해야할 것이 많다』, 수필집 『生놀이』, 『틈』, 『아무것도 아닌 것들』 외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노령봉사상 문화장, 풍남문학상 본상, 전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시인협회 부회장 및 전북펜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