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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생태동요 작곡가 한혁준
관리자(2006-05-10 16:05:16)
아이들과 노래할 때 행복해요 글 | 김선경 문화저널 편집위원 정읍에는 제법 소문난 총각이 한 사람 있다. 한씨 성을 가진 이 총각은 2000년도에 정읍에 내려와 살기 시작했는데, 번듯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요, 번듯한 직장에 취직할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남들처럼 차를 사거나 집을 살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요, 총각이면서 아이들하고 노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니 어느 처녀가 이 총각한테 시집오려 하겠는가. 그래서 이 총각, 나이 서른 다섯인데 아직도 총각신세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름은 혁준이요, 굳이 직업을 말하라면 정읍 한살림 사무국장이요, 제일 좋아하는 일을 말하라면 생태동요를 만드는 일이다. 한살림을 뭐 하는 곳이고 생태동요라는 것은 또 무엇이냐? 이제 이 총각과 천천히 이야기를 나눠보자. 총각, 정읍에는 어떻게 내려왔소? “98년 12월부터 서울에서 생명민회 활동을 시작했어요. ‘푸른틈’이라는 강좌를 주요섭(현 정읍통문 발행인)씨와 같이 기획하고 일을 거들었는데, 생명민회 본부 사무실이 정읍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정읍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때 한 열흘간 정읍에 머물렀던 것이 정읍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죠.” 그리고 이 총각은 서울로 올라가 굴지의 대기업인 L생활건강 대리점에 취직을 해서 1년간 직장생활을 했다. 회사 이름은 생활건강인데 회사에서 취급하는 물품은 생활건강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일회용 치약, 샴푸, 비누들을 매일같이 만지고 팔아야 하는 일이었다. 마음 속 갈등이 깊었지만 이 심성 착한 이 총각은 “바로 그만 두기가 미안해서” 1년간은 꾹 참고 회사에 다녔다. 그리고 일회용품 팔았던 것을 회개하기 위해 성당에 몇 년간 다녔다. 건성으로 흘러가는 사회, 껍데기만 치장하는 사람들… 그런 것들과는 천성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이 총각은 어딘가 정착할 동네를 찾다가 다시 정읍으로 내려왔다. 함께 생명민회 활동을 했던 주요섭씨에 대한 신뢰가 크기도 했고, 동학혁명의 고장이라는 정읍이 마음에 들었다. 총각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양. 일곱살 때까지 그곳에 살다가 이후 쭉 서울에만 살았으니 ‘서울 빼꼼이’가 됐을 법도 한데 그는 도무지 서울생활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칠보에 내려와서 농사를 배웠어요. 싸리재 마을이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한 스무 가구 사는 동네였어요. 마을의 주민으로 산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요섭이형이 자활후견기관 사업을 하면서 그쪽에서 우리콩 두부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때 우리콩 두부를 먹었던 사람들이 지금 한살림 회원들이죠.” 한살림은 아시다시피 “나눔과 협동을 통한 살림”을 기치로 삼고 있는 생활협동조합 운동체. 서울에서는 1989년에 첫 공동체가 꾸려졌고 정읍 한살림은 2003년도에 창립되었다. 자활후견기관과 한살림, 정읍 새교육공동체, 생명민회 등이 한혁준씨가 몸담았거나 몸담고 있는 조직들. 지금은 새교육공동체와 생명민회가 <생명문화교육연대>라는 이름으로 통합됐다. 그러나 한혁준씨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따로 있다. 그는 온라인 학교인 <달팽이 자연학교>(cafe.daum.net/dalpang2school)의 운영자다. 이곳에서 어린이를 위한 느린 걸음 농사학교, 느린 걸음 생태학교, 숲해설 학교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진행하고 있다. 정읍에 내려와서 지금까지 아이들 생태체험학교를 꼬박꼬박 운영해왔던 노하우가 달팽이 자연학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달팽이 자연학교의 총각선생님인 한혁준씨가 제일 좋아하는 수업은 음악시간. 직접 작곡한 생태동요를 틈틈이 게시판에 올려놓고 있는데 그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다. 그런데 총각, 어떻게 동요를 다 작곡하게 됐소? “저는 화학과 중퇴한 사람이에요. 음악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노래를 부르면 다들 잘한다고는 해요.(머쓱) 저도 노래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요. 좋은 시나 노랫말을 보면 저절로 머리 속에 곡이 떠올라요. 악보에 그리지 않아도 바로 입으로 노래가 나와요. 그래서 그런 노래들을 아이들과 불러봤는데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른들도 좋다고 그래요.” 피아노도 칠 줄 모르는 실력이지만 동요작곡 만큼은 자신 있다는 이 총각. 작년 4월에 정읍에서 자신이 작곡한 생태동요들로 공연을 올렸는데 그 반응이 아주 괜찮았던 모양이다. 작곡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뚝딱 뚝딱 동요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은 전래동요들인데요. 전래동요는 꼭 작곡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모두가 흥얼거릴 수 있는 게 전래동요잖아요. 음의 높낮이와 장단을 조절하는 감성만 있으면 누구나 동요를 작곡할 수 있어요. 요즘에 보면 노래 잘하는 사람들은 참 많은데요. 좋은 노래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최근에 이원수님의 <새 눈>이라는 동시에 즉흥적으로 곡을 붙였다며 노래를 들려준다. “나뭇가지에 새 눈 텄어요. 맨몸뚱이로 겨울 난 나무. 쬐꼬만 쬐꼬만 연두 꽃눈이 초롱초롱 올라오지요.”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 저절로 따라 불러질 만큼 단순하고 깨끗한 동요가 총각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도 아니요, 시를 썼던 문학도도 아니요, 음악을 전공했던 음악도도 아닌데, 그는 어찌하여 아이들을 위한 생태동요를 만드는 것일까? 그에게는 동요를 들려줄 자식도 조카도 없는데 말이다. “저는 아이들이 참 좋아요. 2003년도인가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했는데 그때 마침 생명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이라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4살짜리 아이가 와서 나를 안아주는데 너무나 포근한 거예요. 그 아이의 거대한 에너지가 저한테 고스란히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체질적으로 아이들에게서 힘을 얻는 체질인가봐요.” 그러면서 앞으로는 공동육아 프로그램도 운영해보고 싶단다. 이 총각 이래가지고 장가나 갈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이 그쪽으로 가는 것을. 한살림 사무국장(말이 사무국장이지 매일같이 전주와 정읍을 오가며 물품을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일과 달팽이 자연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 버겁기는 하지만 그는 일 자체가 워낙 즐겁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른다고 한다. 돈은 안 들게, 진행하는 사람은 즐겁게… 이것이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그의 지침이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에요. 돈 없이도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사는 사람 저는 정말 싫어요. 기술과 요령만 있는 사람들도 정말 싫어요. 저는 말과 행동이 같이 가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계속 해보는 겁니다. 계속 즐거울 때까지…” 정읍 상동에 살면서 감자 농사 두 마지기를 짓고 있는 총각 한혁준씨. 정읍생활 5년째. 집에 들어가지 않은 지는 10년째. 이제는 더 이상 결혼하라고 닦달하지도 않는 부모님이 올해 폭탄선언을 하셨다. 정읍으로 아예 이사를 오시기로 한 것이다. “못난 장남인데도 장남이랑 함께 살고 싶다고 하세요. 허허…” 어딜 가든 무엇을 보든 동요가락이 떠올라 행복하다는 이 총각은 이제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도 해보고 싶고 아이들과 함께 작은 공연도 올리고 싶고, 더 욕심 낸다면 어린이 문화센터도 열고 싶단다. 몸은 어른이지만 심성은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맑디맑은 이 총각. ‘어린이 생태문화운동’이라는 젊고 새로운 물결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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