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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 / 독일현대미술의 단면전
관리자(2006-05-10 16:02:38)
지역미술관이 일으킨 전국적인 파장 글 | 조은영 원광대 미술대학 교수 국내에 서양화가 유입된 이래 한 백년이 흘렀다. 지난 세월동안 전북도내에서 열린 수없이 많은 서양화장르 전시들, 특히 ‘예향’ 전주지역에서 개최된 수많은 현대미술전 중에 전국적인 파장을 일으킨 전시는 몇 개나 꼽을 수 있을까? 지난 2004년 가을에 개관하여 겨우 한돌 반 된 전북도립미술관이 개관이래 첫 서구권 현대미술전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전국적인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동북아 문화·미술교류의 맥락에서 개최한 국제전, <중국미술의 오늘>과 <그림으로 읽는 지구촌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도 좋은 전시이리라는 기대감 정도였다. 3월 24일 독일현대미술전 개막식에서, 도내의 많은 문화미술계 관계자들과 아울러서 서울 주한독일문화원(Goethe-Institute)의 유르겐 카일(Jurgen Keil) 원장부부, 독일 쾰른의 클라우디아 델랑(Claudia Delank) 박사를 비롯하여 독일거주 한국작가들, 서울·경기 지역에서 온 이십여 명의 미술계 인사들이 북적이는 것을 보고 이 전시가 지역에서 열렸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또 하나의 전시로 끝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후 서울을 오가면서 그쪽 미술관계자들이 먼저 “전북에서 국내 최대규모의 아주 좋은 독일현대미술전이 열렸다면서요, 전북도립미술관이 어디에 있습니까?”와 같은 인사를 건네올 때마다 반갑기도 하고 한편 의외이기도 했다. 미술관의 홍보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언론에 별반 보도되지 않았고, 도내미술계에서는 큰 반향이 있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경기지역 미술관계자들이 이 전시를 보고자 전주를 오가더니, 급기야는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양화과 교수들과 학생들까지 단체로 모악산 자락에 위치한 미술관에 다녀갔다. 전후 독일미술의 두 거장(Big Two 'B's-Baselitz와 Beuys)의 작품들을 대거 포함하여 총 357점으로 구성된 이번 도립미술관 전시가 국내에서 어느새 입소문을 타고 ‘꼭 보아야할 전시’로 자리 잡은 셈이다. 영화사에서 영화 하나 만들고 개봉 전에 많은 돈과 방법을 동원한 홍보를 해도 관객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면 금세 입소문이 나서 흥행에 실패하듯이, 전시도 마찬가지이다. 홍보예산이 미미해도 소문이 바람을 타더니 대형버스를 몇 대씩 동원하여 왕복 6시간씩을 소요하면서 지역미술관을 다녀가니 말이다. 이번 독일 현대미술전은 최효준 관장의 말에 의하면, “도내 여러분들에게 서구미술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독일 현대미술의 주도적인 한 양상을 보여줌으로써 세계화의 시대에 미술관의 ‘밖을 향하는 창’으로서의 기능”을 행하는 것으로, 두 개의 기획전을 함께 마련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 판화전>은 주한독일문화원과 독일국제교류처(ifa)의 지원으로, 국내 최초로 이루어진 전시로 현재 세계적인 작가 중 하나이자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의 기수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판화 82점을 소개한다. 1963년부터 작가는 회화와 병행하여 지속적으로 판화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전시는 초기 판화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30여 년 동안의 작품을 고루 포함하고 있어 그의 판화세계를 조명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동독출신으로서 서독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하는 ‘경계인’으로 행동했던 작가가 기존관습과 현실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제작한 인체와 동물들의 단편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소위 ‘단절된 그림’들로부터, 세상을 전복시켜 거꾸로 보는 시각으로 1969년부터 그린 소위 ‘거꾸로 그림’들까지 그의 작품에는 반항, 폭력, 파괴, 왜곡, 불완전의 개념이 가득하다. 필자의 인상에 각인된 바젤리츠는 1990년대 중반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Institution)에 재직하던 당시 스미소니언 소속 현대미술관인 허숀미술관(Hirshhon Museum)에서 개최된 바젤리츠의 회고전에 포함된 대규모의 ‘거꾸로 그림’들과 조각작품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수십 개의 대형 캔버스가 주던 압도적인 인상과 달리, 이번에 소형 동판화들을 세심히 들여다보면서 그의 흡인력과 호소력 있는 이미지가 주는 색다른 인상에 그가 회화와 판화를 병행한 이유를 알 듯 하였다. 이와 동시에 개최된 <독일 현대미술의 단면전>은 바젤리츠, 요셉 보이스(Joseph Beuys), 요르그 임멘도르프(J. Immendorff), 게르하르트 리히터(G. Richter), A.R. 펭크(Penck), 지그마 폴케(S. Polke), 토마스 리크(T. Rieck), 마르쿠스 뤼페르츠(M. Lupertz), 아리베르트 폰 오스트로브스키(A. von Ostrowski) 등 국제적인 명성의 독일작가들과 노은님, 김장희, 김도균, 류호열, 김진란, 이정아, 이상훈, 강현덕과 같이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작가들로 구성되었다. “모든 이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독일에서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Fluxus) 운동에도 참여했던 보이스의 작품은 대거 110여 점이 포함되어, 권력지향적인 사회·종교·문화·사상·미술체제에 저항하며 인간정신의 회복을 위해 갈등한 작가의 고뇌에 찬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아울러서 1970년대에 제기된 ‘회화의 종말(죽음)’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고 1980년대에 세계화단에 충격적으로 등장한 신표현주의의 대가들인 바젤리츠, 임멘도르프, 폴케, 펭크 등의 그림은 각기 다른 개성을 발휘한다. 가령 임멘도르프의 6.6m 크기의 캔버스, <독일을 바로잡는 일>(1983)은 그 사이즈만으로도 관람자의 시선을 끈다. 동독과 서독분단의 사회적 상황을 ‘정치 카페’에 빗댄, 독일적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이 그림을 카일 문화원장 부부와 함께 해석하면서 한국인인 내가 보지 못하는 측면들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 작가들 외에도 도내에서 거의 대해본 적이 없는 현지 한국작가들, 전주출신 노은님과 김장희 같은 중견작가들 및 재능과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청년작가들을 독일현대미술의 ‘한 단면’으로 아우른 것도 이 전시의 장점으로 생각되며, 도내와 국내 청년작가들에게도 도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건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안젤름 키퍼(A. Kiefer) 같은 작가가 빠진 점이라든가, 일부 작가의 경우 그 개성을 대변하는 작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꼭 권하고 싶은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게르하르트 리히터/A. R. 펭크>전(4월말까지)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사진을 회화로 재해석하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개척한,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주목되는 리히터는 생존 작가 중 세계에서 작품가격이 최고의 반열에 속하기 때문에 국내전이 거의 부재했다. 이번 도립미술관 전시에도 6점이 포함되었지만, 이 화가의 대표작들을 고루 보고자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 달려가서 1점에 100억을 호가하는 <숲속의 연인>등을 감상해 볼 일이다. <독일현대미술의 단면전>의 상당부분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내 미술관·갤러리들과 개인소장으로 흩어져있는 작품들을 모은 것이고, 보이스 전시실에 별도로 전시된 작품을 비롯한 일부는 독일에서 공수해왔다. 천문학적인 가격의 작품들을 대여하기 위해 소장가와 관계자들을 설득한 도립미술관측의 노력과 능력 없이는, 부족한 전시예산으로 이러한 전국적인 규모/수준의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내 대형미술관들이 이만한 전시에 들이는 비용의 10분의 1정도로 이번 전시를 가능하게 한, 그러면서도 전북의 전시수준을 한층 향상시킨 도립미술관 관장과 학예연구사들, 그리고 이번 전시에 도움을 제공한 국내외 미술관계자들께 도민의 한 사람으로써 고마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조은영 | 이화여대 미술사학과에서 미술사 석사, 미국 델라웨어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정부의 Fellowship으로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박물관(국립미국미술관과 국립동양박물관) 및 원터투어박물관에서 일했으며, 미국미술사학자협회(AHAA) 부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회와 우진문화재단 이사, 국내·외 여러 학회 임원 및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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