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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연극<가족>
관리자(2006-05-10 16:01:27)
떠남의 연극성, 그리움의 서정성 글| 김길수 교수.연극평론가 잠시 후 운명하시는 아버지, 안타까움을 주체 못하는 자들, 급하게 문을 여닫고 들어가는 움직임, 눈물 범벅이 되어 나오는 상황이 공연 초반의 주종 그림이다. 창호지 방문 안에서 들려오는 배우들의 오열, 숨 넘어가는 듯한 반응, 관객은 임종의 급박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마당에 있는 자, 방에서 이별의 순간을 감내하기 위한 몸부림, 급박하게 숨 넘어가는 소리, 소리와 보고, 그리고 탄력적인 반응 연기가 일순간 앙상블 이룬다. 아버지의 죽어감,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 별리로 인한 가슴앓이 과정이 자연스레 우러나온다. 문화영토 판의 소극장 연극 시리즈 <가족>(민복기 작, 고조영 연출, 소극장 판) 공연에선 오열의 소리, 그 급박함의 정서, 이에 대한 보고와 반응 연기가 유기적인 호흡을 빚어가면서 몰입의 연극 에너지가 우러나온다. 세 시간이면 돌아가신다는 아버지, 운명의 시간이 3개월로 길어진다는 발상, 이로 인해 발생하는 예측 불능의 에피소드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별리를 준비하려던 자식들의 정서,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다. 당장 회사 문제가 크게 다가온다. 아버지가 남긴 땅, 소유자 이전 등기가 새로운 이슈로 다가온다. 얼굴을 내밀지 않는 올케들, 손자들, 이들을 방치한 장남과 차남, 이들에 대한 서운함, 원망을 막내딸은 몸서리치듯 드러낸다. 막내딸(주서영 분)에게 공박, 면박을 당하는 자들, 장남(안대원 분), 차남(이병옥 분)이 속내를 드러낼 때마다 딸과의 격렬한 다툼이 벌어진다. 부딪침은 강렬한 긴장 에너지로 이어진다.  운명 시간이 길어지면서 별리의 아픔에 대한 감정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주말마다 내려오는 아들, 딸의 상황, 어머니는 미안함을 주체 못한다. 남편이 어서 빨리 죽지 않는다고 푸념하기까지 하는 어머니, 이게 말이 될 법인가... 기묘한 가족 풍경이 펼쳐진다. 이 연극의 매력은 인물들의 변신 과정, 정서적 변화와 전이 과정이 다양하다는 점에 있다. 각 인물들 간의 반응 정서 및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예측 불허의 방향으로 확산된다. 다시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다. 급박하게 움직이는 자식들, 통제 불능의 정서와 스피디한 음성 기호, 그러다 또 다시 아버지의 죽음 시간은 길어져 간다. 아, 또 이렇게 속아야 한단 말인가. 탈진한 모습, 귀찮아하는 정서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한다. 눈물이 말라간다. 진지함의 이미지 역시 사라지기 시작한다. 직장 스트레스, 매주 오고 가야하는 상황, 육체 및 정신적 피로, 이를 주체 못한 나머지 자식들, 지순한 효자의 정서가 서서히 무너지는가. 천박한 욕망이 잉태된다. 치졸한 만남, 유치한 싸움이 새롭게 시작될 줄이야. 파열음이 연출된다. 어이없는 자식들의 싸움, 이 광경을 접한 어머니(이도현 분), 그것도 운명하시는 아버지 앞에서 말이다. 울분, 터트림, 모두, 다 가버려 ! 이제 장남, 차남, 딸 모두 떠나고 없다. 그런데 하필 그 시점에서 아버지의 운명이 이루어질 줄이야. 동네 이웃인 장의사 지씨(백민기 분), 그리고 어머니만이 마지막 임종을 맞이해야 할 줄 그 누구도 생각 못했으리라. 아버지의 운명 소식, 그리고 작별을 향한 마지막 만남, 그 숱한 시도가 무위로 끝나고 만다. 대단한 삶의 아이러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안겨 죽고자 하는 소망,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고자 하는 자녀들의 지순한 소망, 그러나 죽음이란 자의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탓일까. 예기치 않는 순간에 찾아오는 아버지의 운명, 인생의 역설, 삶의 파라독스를 성찰케 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인간의 어리석음, 나약함, 뒤틀린 인간사에 대한 성찰과 패러디 성 극 효과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분신을 마주하려던 정서, 시골 고향집에서 만나는 수많은 집안 가재 도구들, 사물들, 이런 풍경들이 가족을 향한 사모의 내면 정서를 상기시킨다. 길어진 죽음, 실망, 탈진, 그리고 시골 고향 풍경에 대한 새로운 눈뜸이 시작된다. 시골 풍경의 소담함, 유년기적 추억을 상기시키는 장독대 풍경, 햇볕에 말리기 위한 놓여진 고추 바구니, 장독 사이에 놓인 흰 고무신, 감나무와 텃밭, 그리고 마당 위의 평상, 토방과 마루, 그 아래에 놓여진 장작더미와 소형 바퀴 풍로, 이런 무대 오브제 설정, 그것들을 향한 바라보기, 사물과의 내적인 만남을 통해 무대 인물들은 자연스런 추억 여행을 하기 시작한다. 풍경은 우리의 내면에 대한 비유다. 카뮈의 이 말은 바로 이런 풍경 오브제와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레 실현된다. 으르렁거리던 분위기는 이런 떠올림을 통해 평온, 화해, 너그러움의 공간으로 바뀐다. 실제 시골 마당 풍경을 상기시키는 섬세한 오브제 설정, 보이지 않는 자연 사물을 향한 정서적 보고 언어, 이웃 배우들의 탄력적인 반응 기호, 그 연쇄적인 집단 신체기호가 서정적 품격 고양에 기여한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의 이동하는 시점, 자연 사물들의 소리, 그 정취에 대한 보고와 반응, 겨울 의상으로 갈아입은 배우들, 찬 서리 내린 달밤 풍경, 이를 향한 집단 신체 반응 언어, 장독에서 실제로 퍼온 동치미 오브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실제 콩나물, 가족, 형제, 자매간의 소주잔 기울이기, 사실과 리얼리티 그림이 혼재한 이 장면, 배우들은 고향 정취의 아름다움을 자연스레 일깨워낸다. 장의사 지씨 영감 역할의 백민기, 어둡고 무거운 전체 분위기에 밝은 활력소 역할, 희극적 릴리프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읍내 졸부를 ‘싸가지’ 하면서 욕설을 퍼붓는 그림, 어머니를 위로 해드리기 위한 방편으로 자주 써먹는 육이오 무용담 에피소드, 그 무용담의 주인공이 남편임에도 이 뻔한 이야기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임을 알아차리고 능청스럽게 받아들이는 어머니, 평상 오브제를 중심으로 무대 공간 방위선을 다양하게 빚어 가는 연출 전략, 실소의 묘미 효과를 겨냥한 백민기의 너스레 기호, 이도현의 반응 호흡이 공연의 무게와 활력을 일깨워주는 데에 기여한다. 아버지가 정작 돌아가시자 어머니 홀로 시골집에 남겨져야 한다. 자식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몸부림, 어머니는 이런 외로움을 감춘 채 자식 헌사하기에 바쁘다. 장남, 차남에게 시골 고구마 보따리를 챙겨주려는 지순한 모성애, 비록 임종을 놓친 자식들이지만 그래도 내 새끼들인데 하면서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홀로 남겨질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작별이다. 어머니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노처녀 딸 영, 끌어안는 그림, 한 동안의 침묵, 긴장, 숨죽임, 더 강렬한 포옹, 진한 가족 사랑의 에너지가 감상층을 사로잡을 대목이다. 만남과 떠남, 수많은 내면 정서 언어, 의도적인 빈 사이, 이를 향한 환타지 공간 탐색이 숙제로 남는다. 모두가 떠나간 빈 공간, 빈 마당, 장독대 이곳 저곳에 흐트러진 죽은 남편의 흰 고무신, 장남이 가슴에 품었던 그 신발, 장독대에 몸을 놓아버리는 어머니, 그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흰 고무신, 떠난 남편의 분신은 아닐까... 신발을 가슴에 품고 홀로 눈물지으며 무너지는 어머니 초상, 이를 발견하여 땀방울을 흘리는 공연 설계진의 탐구 작업 역시 문화영토 판의 소극장 연극 운동에 밝은 빛을 더해 준다. 김길수 | 국립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으면서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순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을 역임했고, 연극평론집 『우리시대 삶과 연극의 조망-해체극, 상황극, 희비극』, 『남도의 희곡미학』 등으로 제 2회 Performing Art and Film Review(연극부분) 비평상, 제 3회 여석기연극평론가상, 예술평론상 등을 수상했다. <동승>, <맥베드>, <땅이여 사랑일레라> 등을 극본, 연출, 예술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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