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포구] 포구의 민속
관리자(2006-05-10 15:30:48)
너나없이 바다 뜯어먹구 살던 사람들
글| 김성식 문화저널 편집위원
포구는 늘 짭쪼롬한건지, 간잔조롬한건지 모를 갯내음이 와락 덮친다. 갯가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적나라한 삶이 스며있다. 포구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너나없이 바다 뜯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바다는 아무리 뜯어먹어도 날만새면 그대로다. 그래서 날마다 또 뜯어먹는다. 마치 깍아도 깍아도 다시 자라는 손톱같다. 그런데 이제 바다는 손톱이 빠질 지경이다. 세계 5대 어쩌고 하는 새만금 갯벌과 갯물은 이미 빠진 손톱이다. 더 뜯어먹을 손톱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포구에 최초로 터잡은 이래 조상 대대로 그래왔던 것처럼, 평생 아니 후손 대대로 뜯어먹을 수 있는 손톱을 뽑아버렸다. 실은 손톱이 아니라 손가락을 뽑아… 소름이 먼저 돋는다.
포구는 기대와 희망이었다. 철따라 고깃배를 타는 사람들의 소망은 만선과 안전이다. 배가 터질듯 고기를 싣고 찬란한 오색기 내걸고 풍장에 맞춰 바다가 떠나갈듯 배치기소리 부르며 귀항하는 모습은 누구나 그리는 희망이다. 그러나 바다가 항상 잔잔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는 수마로 돌변한다. 그렇게 수중고혼이 된 자 어디 한둘이던가. 어떤 마을은 10여 집의 제삿날이 한날이다. 그래서 포구마을 사람들은 수없이 많은 신을 섬긴다. 임경업장군같은 인물신도 있고, 개양할미 등 신화 속 여신도 있고, 용왕 같은 상상적 동물신도 있고, 산신호랑이 같은 도교적 신도 있고, 당산나무 같은 수목자연신도 있다. 그들은 삼라만상 어디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믿는 신에게 갖은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낸다. 신이 노여워할 만한 부정한 짓은 신성불가침의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여 금기로 지킨다. 마을제사를 앞두고는 부부간의 합방도 금하고, 심지어 출산을 앞둔 여자는 동구 밖 산막(産幕)으로 피신한다. 반대로 신이 즐거워할 만한 일은 몇날 몇일을 새워서라도 기꺼이 헌신한다. 그 의례가 당집을 중심으로 행해지던 풍어제이고, 용왕제이고, 당산제이고, 별신굿이다. 그들은 그렇게, 기대와 희망을 단지 꿈만 꾸는데 그치지 않고, 삼가 의식(儀式)으로 행하였던 것이다.
조기심리도 이들이 빠뜨리지 않던 의식이었다. 조기잡이 첫 출어는 경칩사리, 춘분사리, 한식사리 즈음에 나가는데 이를 ‘초사리’(봄철에 나가는 첫 조업)라고 한다. 초사리는 대개 본격적인 조업을 앞두고 고기서식처를 가늠해보는 몸 풀기인데, 이때 잡은 조기 가운데 제일 큰 것을 골라 당집에 바치고 제를 모시던 풍속이다.
포구는 대부분 반농반어이다. 즉 때에 따라 고기잡고 철에 따라 농사짓는다. 고기잡이는 주로 봄사리와 가을사리 때 집중한다. 봄사리는 산란기를 맞은 고기들이 불등(조금 높이 쌓인 갯벌)으로 올라오는 시기이다. 서해안 바다고기들은 뻘맛을 봐야 산란한다고 할 정도다. 가을사리는 수온이 낮아지면서 고기들이 남쪽으로 월동하러 내려가는 회유기를 말한다. 이들은 어족자원의 고갈현상에 대하여 “옛적에는 올라오거나 내려가는 고기를 기다렸다가 잡았지만, 시방은 기계배로 고기가 사는 곳으로 직접 가서 다 잡아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갯마을에서 이처럼 고기를 기다려 잡았던 시절의 어로는 죽방어업이 대표적이다. 이를 ‘어살’이라고도 부른다. 죽방렴(竹防簾)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수심이 깊지 않으며, 조수의 흐름이 빠른 곳에 설치하는 일종의 함정어업이다. 즉 밀물이나 썰물 때 조류가 빠른 갯골에, 조류가 몰려오는 방향을 향하여 V자 모양이 되도록 일정한 간격으로 참나무 말을 박고, 그 사이에 대나무를 길이로 잘게 짜개발처럼 엮어서, 그물을 치듯이 두른다. 그러면 밀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가 어살에 막히면서 중앙의 ‘꼬패’(임통)에 갇히는 재래식 어업을 말한다. 이 당시 어살 안에는 서해안 고기란 고기는 다 잡혔다. 재래어업은 대부분 이와 같은 방식이었는데, 돌을 쌓아 밀물 따라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갇히게 되는 ‘독살’이나, 대나무살 대신에 나이론 그물이 나오면서 시작한 ‘개맥이’, 또는 배꼬리에 그물을 달고 밀물 썰물 때 조류의 방향을 향하여 고기를 기다리던 ‘꽁댕이배’(尾中船) 등이 마찬가지 원리이다.
포구는 또한 고기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집하장이었다. 특히 파시(波市)가 열리던 조기잡이 철에는 객주나 선주인 배 부리는 사람, 배타는 사람, 죽방하는 사람, 어패류 채취하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소금간해서 굴비 엮는 사람, 품 파는 사람, 행상하는 사람, 술과 색을 파는 사람 등등 가지가지였다. 조기잡이 철은 음력 4월 초순부터 25일경으로, ‘곡우사리’와 ‘입하사리’ 기간이다. 이때는 조기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여서 잡는 즉시 ‘장불’(고랑과 고랑사이에 드러난 뻘) 아무데나 퍼놓기 바쁘고, 동네 개도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였고, 돈을 가마니로 쓸어 담던 시절이었다. 현재의 삶이 고단할수록 과거회상은 이렇듯 과장되어 풍성하다.
서해안의 포구란 포구는 하나같이 풍어제를 지냈다. 전북지역의 부안군에서는 진서면 작당, 운호, 석포, 줄포면 용서, 감동, 변산면 모항, 격상, 계화면 돈지, 조포, 하서면 양지 지서면 구진마을, 그리고 위도와 식도 등 섬마을 포구 등이고, 고창면에서는 해리면 상부, 심원면 용기, 수다, 사등, 두어, 구시포, 흥덕면 후포, 상하면 동촌 등이 그곳이다. 물론 이 가운데 풍어제가 단절된 곳이 더 많지만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마을도 적지 않다. 익산지역에서는 금강 하구 포구인 웅포와 나포, 그리고 성포마을이 대단한 파시를 형성했던 포구로서 풍어제 또한 성대하였다.
이 글을 쓰는 이는 10여 년 전부터 해안과 섬마을의 민속신앙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 전승되는 마을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이 이미 단절되었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과거의 모둠살이와 민속신앙을 캐물으면서, 묻는 이나 대답하는 이 사이에 어떤 특정한 지점과 가치에 맞닿아 가는, 묘한 아우라에 쌓인다. 그것이 대체 뭘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