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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포구] 문학속의 포구
관리자(2006-05-10 15:28:15)
포구, 그 문학적 상상 공간 글| 이대규 문학평론가 시로서 무엇을 사랑할 수 있고 시로서 무엇을 슬퍼할 수 있으랴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시로서 무엇을 버릴 수 있으며 혹은 세울 수 있고 허물어뜨릴 수 있으랴 (정현종 「시, 부질없는 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자문하리라. 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칼이며 밥인 동시에 꿈인 문학을. 문학은 언어를 매개로 인생을 탐구한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 시인들, 손가락(언어)이 달(진리)에 닿지 않을지라도 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들을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 포구로 가는 길은 ‘외로움’과 ‘그리움’, 낭만적 동경과 환상으로의 여행이다. 포구 쪽으로 내던져진 들판 위에서 외롭고 비린내 나는 사람들의 삶과 흔들리며 저물어 가는 생의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 공간이 시간과 결합할 때 삶은 그 비밀스러운 의미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다. 떠나는 길과 끝나는 길이 만나는 곳,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시간이 공간과 만나는 곳. 포구는 훌륭한 문학공간이다.        떠남과 기다림, 원심력과 구심력 포구는 육지와 바다, 생과 사의 경계이다. 포구는 바다를 향한 원심력(남성성)과 땅을 향한 구심력(여성성)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포구에는 인간·인생의 이중성이 공존한다. 바람·구름이 되고 싶은 나와 들꽃·잔돌이 되고 싶은 두 자아(신경림의 시 「목계장터」), 곰치와 구포댁(천승세의 희곡 「만선」)의 대립·갈등 또한 포구에서 일어나고 있다. 公無渡河 임이여 저 강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임은 끝내 강을 건너시네 墮河而死 물에 빠져 죽으셨네 當乃公何 임이여 내 어찌할꼬 (「公無渡河歌」) 백수광부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을 건너다 익사한 술주정꾼, 그의 아내는 남편을 따라 강물에 몸을 던진 정절녀에 불과할까? 나는 이 작품에서 두려움을 술로 달래며 미명의 새벽강을 홀로 건너는 흰머리 사내의 열정을 읽어낸다. 죽음과 바꾸고자 했던 꿈을. 雨歇長堤草色多  비 갠 언덕 위 풀빛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  남포에서 임 보내는 구슬픈 노래 大洞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리 別漏年年添綠波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送人」) 한국 최고의 한시로 평가받는 정지상의 작품이다. 화자는 대동강 남포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있다. 이 시의 비극적 상황은 자연사와 인간사의 어긋남에 있다. 봄의 포구는 재생과 부활의 빛으로 가득한데,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는 서러운 풀빛이 짙어온다. 여성 화자는 바다로 이어지는 포구의 강둑에 서서 배따라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배가 멀어질수록, 노래는 구슬프다. 생이 비극적일수록 예술은 아름답다. 그는 비극의 중심에 서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배를 띄우고 임이 다시 돌아올 길을 내고 있다.   포구는 차안과 피안, 육지와 바다의 경계이다. 그래서 포구에는 강 건너편과 바다를 향한 한없는 그리움, 합일될 수 없는 슬픔의 비가(悲歌)가 들린다. 이쪽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갈대는 자신의 숙명을 풍화시켜 그리움의 홀씨를 날린다. 소멸하는 것은 슬프고 아름답다. 아름다움과 슬픔이 뒤엉킨 포구에서, 박재삼 시인은 고독한 영혼이 되어 노래한다. 저것 봐, 저것 봐, / 네보담도 내보담도 /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소리가 사라지고 /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江」 일부) 우리의 삶은 패배와 아픔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소망과 현실은 늘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포구는 내 시원(始源)과 지금의 현재의 모습을 겹쳐 생각하게 한다. 내가 얼마나 성숙해졌고, 얼마나 흐려졌는가를. 인간의 성숙은 구체적·현실적으로 사물을 보는 눈을 획득해 나감을 뜻한다. 그런데 아파하지 않고 존재 완성의 바다에 이를 수는 없다. 그것은 낭만적인 꿈들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좌절의 아픔을 생에 대한 긍정으로 아프게 끌어안을 때, 파편화된 생의 조각들은 아름답게 번득인다. 설레임과 상실과 슬픔을 포용하고 죽음과 소멸로 나아가는, 노을에 물든 가을 포구는 황홀하다.     포구, 폐허와 생성의 공간 상처 입은, 아니 상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포구에 간다. 그들은 그곳에서 생의 허무와 질김을 발견한다. 그러나 포구는 폐허와 소멸의 공간인 동시에 생성과 부활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을에 그 작고 낡은 열차는 어차피 노을녘의 시간대를 달리게 되어 있었다. 서해안의 노을은 어두운 보라빛으로 오래 물들어 있었고, 나문재의 선홍색 빛깔이 황량한 갯가를 뒤덮고 있다. (……) 그것은 이 세상에 없는 황량한 선경(仙境)이었다. 나는 이제껏 세파에 시달려온 지난 날을 생각했다. 지나치게 <군중 속의 고독>에 시달려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삶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윤후명 소설 「협궤열차」는 생의 슬픔과 문학의 환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그의 소설에서 문학은, 아니 우리네 삶은 작고 낡은 열차를 닮아있다. 그것은 흔들리며 달리지만, 소래포구를 향한 길은 환상처럼 펼쳐진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주인공은 아내와 이별하고 16평짜리 아파트에 홀로 남아 있다. 그는 외로움을 황량한 공간에서 반추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서해의 흐린 바다가 다가오는 곳에서 그는 존재의 풍경들을 본다. 눈물겨운 섬들, 통통배가 들어오는 포구의 뱃사람들 주막집, 외로운 사람들이 모여드는 포장마차, 뜨내기 노동자들이 묵고 있는 함바집. 주인공은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 자기 혼자만의 풍경,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간다. 소래포구를 서성이는 주인공은 순천만 포구에서 자아를 발견하는 윤희중(김승옥 소설 「무진기행」의 주인공)을 닮았다. 저녁놀이 보라빛으로 스러지는 포구는 삶의 여로를 되새겨 보게 한다. 그 때 포구는 기쁨과 희열 뒤에 고개 숙이고 있는 적막한 얼굴을 보여준다. 걸어서 항구에 도착했다 / 길게 부는 한지의 바람 / 바다 앞의 집들을 흔들고 / 긴 눈 내릴 듯 / 낮게 낮게 비치는 불빛 / (……) 정박 중의 어두운 용골들이 / 모두 고개를 들고 / 항구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어두운 하늘에는 수삼개의 눈송이 / 하늘의 새들이 따르고 있었다 「기항지1」에서 황동규는 삶·역사·전망이 보이지 않는 포구를 떠돌고 있다. 시인은 무거운 세상에서 가벼움을 꿈꾸는 눈송이, 새이다. 동시에 상처입고 갯벌 깊숙이 처박힌 배인 것이다. 아픈 자아응시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더욱 깊어진다. 참혹한 절망 끝에 운명적인 사랑을 배우게 된다. 황동규와 윤후명의 작품에서 배들은 용골을 꼿꼿이 들고 있다. 다시 바다를 꿈꾸고 있다.   포구는 물이 빠졌을 때는 작은 개울만하다. 물빛도 탁하다. 그러나 그 물길로 올라온 통통배는 때에 따라 돌고래도, 바다표범도 내려놓는다. 그리고 늘 눈을 치뜨고 오락가락하는 괭이갈매기들, 이것만으로도 나는 큰 바다를 본다. (……) 선복 가운데로 알맞게 휘어진 용골이 달빛을 받아 인(燐)을 뿜는 뼈다귀같이 빛나고 있었다. 아무리 작은 배일지라도 용골만큼은 힘차고 당당해 보였다. 포구에서 꿈꾸는 역사 포구에는 역사의 상처가 살아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포구에서 근대의 비극을 확인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채만식과 고은에게 군산항은 허무와 절망의 공간이었다. 소설 『탁류』에서 군산항은 식민지적 근대성의 상징 공간이다. 식민지적 자본주의의 희생자, 정주사는 째보선창에서 자살을 꿈꾼다. 6?25가 남긴 허무와 폐허의 늪을 헤매던 시인 고은 또한 군산항에서 몸을 던진다. 그러나 안도현과 강형철에 이르면 군산항은 더 이상 허무 공간이 아니다.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다 / 그것을 아둥바둥, 지우려고 하지 않는 바다는 / 늘 자기반성하는 것 같다 / 이 엉망진창 속에 닻을 내리고 / 물결에 몸을 뜯어먹히는 게 즐거운 / 낡은 선박 몇 척, / 입술이 부르튼 깃발을 달고 / 오래 시달린 자들이 지니는 견결한 슬픔을 놓지 못하여 / 기어이 놓지 못하여 검은 멍이 드는 서해  (안도현 「군산 앞바다」일부) 바다를 꿈꾼 배는 상처 입고 포구에 닿을 내리고 있지만, ‘입술이 부르튼 깃발’을 여전히 나부끼고 있다. 꿈꾼 흔적은 이렇듯 아름답다. 내릴 수 없는 깃발, 기어이 놓지 못하는 굳고 딱딱해진 슬픔, 시인의 멍든 가슴에 서해의 어스름이 짙어온다. 강형철이 즐겨 찾는 군산 포구는 일찍이 스승 고은이 자살하려던 허무의 바다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새로운 희망, 새로운 사랑을 꿈꾼다. 그는 ‘떠밀려 오는 것이 뻘’뿐이기 때문에 꿈꿀 수 있다는 역설을 발견한다. 강형철은 ‘긴 로프에 매달려 고개를 처박고 있는 배’를 매개로 지배 질서에 대항하다가 상처 입은 존재들을 떠올린다. 그는 배는 다시 떠나야 한다, 다시 꿈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함께 살아갈 만한 세상을 꿈꾸었던 배는 새로운 이념의 ‘뺑기칠’로 단장해서 떠나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사람들은 다시 꿈꾼다. ‘야트막한 산등성이 / 여린 풀잎을 적시며 내리는 이슬비’ 같은 사랑을. ‘가슴이 뛸 만큼 다 뛰어서 / 짱둥어 한마리 등허리도 넘기 힘들어 / 개펄로 에돌아 / 서해 긴 포구를 잦아드는 밀물 / 마침내 한 바다를 이루는’(「야트막한 사랑」) 그런 사랑을…….   인간에게 포구는 자궁이요, 원점이다. 협궤열차는 사라졌지만, 생은 여전히 고단하다. 그래서 오늘도 포구에 간다. 한승원이 보여주듯, 장흥 회진 포구 개펄에서 건강한 생명력을 발견해야 한다. 잃어버린 아우라(aura)·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삼포(森浦)를 찾아가야 한다. 내 마음의 물살은 언제나 흐른다. 제방이 물길을 막아도 바닷물은 밀려오고, 강물은 바다로 흐른다. 언젠가 부둥켜안고 흐를 꿈들로 오늘도 함께 일렁인다. 꿈꾸는 강물은 살아 있다. 풍요와 개발의 시대, 인문학의 비상학(飛翔鶴)은 날아올라야 한다. 포구에서…. 이대규 | 1960년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박사과정, 서울대 국어교육과에서 박사후 과정을 이수했다. 『시문학』(1981. 12)에 ‘모순의 변증법-송욱시의 현상학적 고찰’이 당선되어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한국근대귀향소설 연구』, 『문학교육과 수용론』, 『남도문학기행』등의 단독저서와 『감각하는 인간-Homo Sensus』, 『땅은 바다를 안고-전북문학지도1』 등의 공저를 발간했다. 전북문학 유산을 정리·연구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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