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5 |
차와 함께 즐기는 꽃전놀이
관리자(2006-05-10 15:17:26)
마음으로 마시고 눈으로 맛보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준비하고 있었는지 봄만 되면 지천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진달래는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꽃집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꽃, 그러나 자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는 곳곳에서마주치는 진달래는 국화(國花)인 무궁화보다 더 친숙한 느낌을 준다. 낮은 곳, 추한 곳을 따지지 않고 피어 오랜 시간동안 우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일까.
조선시대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로 대변되었던 여성들의 삶에 있어 몇 번 안 되는 공식적 나들이였던 화전놀이는 꽃이 만발하는 3~4월, 쌀가루반죽 위에 진달래꽃을 얹어 참기름에 발라먹으며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자리로, 집안에서 조용히 생활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큰 위로와 활력을 주었다. 마음대로 쉽게 정할 수 있는 놀이도 아니어서 날을 잡고, 시부모님들께 승낙을 받아야 비로소 밖에 나가 놀 수 있었다.
이 오랜 역사의 화전놀이를 계승하고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 전주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한국차문화협회와 전주전통문화중심도시추진단, 천년전주사랑모임, 설예원이 4월 8일 경기전에서 차와 함께 하는 화전놀이 행사를 크게 열었다. 한국전통차문화를 연구, 보급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한국차문화협회 회원 100여명이 전국에서 모여 이 날 행사를 도왔다.
행사는 오후 12시부터 5시까지 여유롭게 이루어졌는데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차문화협회 회원들은 지역명을 간판삼아 경기전 넓은 마당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을 맞았다. 녹차잎을 주원료로 만든 녹차, 말차, 잎차, 가루차, 연차, 홍차, 황차를 비롯하여 매화차, 딸기차 등의 다양한 차들을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올바른 다도법을 알려주는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고급스러운 다기에 담긴 녹차와 콩가루에 꿀을 넣어 반죽한 다식, 찹쌀과 녹차, 백년초 가루를 섞어 반죽해 그 위에 두견화(진달래), 매화, 국화, 수수꽃다리, 제비꽃(흰제비, 보라제비)로 장식한 화전을 맛보려 찾은 시민들로 경기전은 축제일처럼 북적였다.
“찻잔을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으로 밑을 받치세요. 가슴높이로 들어서 색을 감상하고 그 다음에 향을 맡고 마시면서 맛을 음미하세요. 차를 끝까지 마시고자 할 때는 물을 마실 때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지 말고 찻잔을 들고 있는 손의 각도를 조절해서 넘겨야 합니다.”
천천히 차를 만들어 앞에 앉은 시민들에게 차를 권하던 차문화협회 회원들은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예절이고, 다도를 베푸는 것이 선이라고 말하며 한사람 한사람에게 올바른 다례를 가르쳐주었다.
완주 만덕산에서 찻집을 운영하며 녹차를 가꾸고 있다는 정우(법명) 씨는 인천지부 천막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정좌로 앉아있던 그가 녹차향처럼 은은하게 말을 건넸다.
“차는 곧 마음이지요. 차를 키우는 사람, 내리는 사람, 마시는 사람이 혼연일체가 되면 차가 마음속에서 향기를 피워냅니다. 그것을 다심이라고 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예전 한국차학회장님이셨던 천병식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명(佳茗)이 가인(佳人)이다…. 좋은 차는 곧 좋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지요.”
건강상으로 차는 머리와 눈과 귀를 밝게 해주고 소화를 촉진해주는 한편 피로를 풀어준다. 정신적인 면으로는 사색을 가능하게 해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 해준다. 이렇게 보았을 때 좋은 차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딱 들어맞는다.
화전은 따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찹쌀과 꽃잎으로만 만들기 때문에 평소 익숙한 단맛, 고소한 맛 등은 덜하다. 기호에 따라 설탕이나 꿀을 발라먹으면 될 것이다. 화전을 만들어 먹을 때 신경 써야 할 것은 최소한의 기름만 사용해야 한다는 것. 단지 꽃을 먹는 것이 화전놀이의 의미는 아닐 것이므로 예쁘게 피어있는 꽃을 괜히 땄다는 후회가 들지 않도록 자연의 맛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
“삼십년 전에 나 국민학교 다닐 때 입 속이 파래질 때까지 진달래꽃을 따먹었는데, 배가 고파서 그 시큼한 것을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지금도 진달래꽃을 보면 따먹어보는데 내가 늙어서 입맛이 변했는지 옛날 그 맛이 안 나더라구요.”
자녀들과 함께 나들이 삼아 들러보았다는 호성동에 사는 주부 정선아 씨가 그리움을 가득 담아 내뱉은 말이다. 그것이 어찌 나이 탓일까. 세월이라는 물결에 몸을 맡기고 두둥실 흘러가다보면 몸은 둔해져도 기억은 또렷해지는 법, 그 기억이 그리움에 사무쳐 보이는 그림이라면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시대가 변해서 먹을 게 너무 많아졌고, 자연이 오염 되서 꽃잎이 변한 탓으로 봐야 옳지 않을까.
우리 선조들의 삶의 양식을 담고 있는 세시풍속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전통생활문화의 원형을 계승,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시행된 이번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봄날이 가기 전에, 심신을 지치게 하는 여름이 오기 전에 가족들과 둥그렇게 앉아 화전을 빚어 차와 함께 음미해보자. 마음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 것이다.
| 송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