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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나 어떡해 최저생계비, 잘 부탁드립니다
관리자(2006-05-10 15:13:51)
글 |  윤찬영  전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월간 열린전북 발행인 대학에서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세대간의 관계에 대해 비교적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에는 나보다 젊은 세대와 함께 한다는 것을 마냥 축복으로만 알았다. 내가 늙는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낯선 느낌, 심지어 곤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자주 생기곤 했다. 한마디로 세대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하긴 요즘 학생들이 내 나이의 절반이 채 안되니 말이다. 수업 중에 분위기를 도모하기 위해서 농담 한마디 해봤자 반응이 별로 없다. 예전엔 학생들이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제는 민망할 뿐이다. 웃더라도 피식 웃는 정도였다. 가끔은 무생물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다. 한때는 학생들과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하며 벽을 허물기도 했는데, 언젠가부터 오히려 어색해고 힘들어졌다. 그 이후 몇 차례 더 시도해봤으나 더욱 힘들어져서 학생들과 노래방에 가는 것을 아예 피했다. 내가 아무리 열창을 해도 학생들 반응은 의례적일 뿐이었고, 나 또한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소음으로만 들렸다. 내가 학생일 때 교수님들과 술자리에서 함께 노래하며 인간적인 정감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세대간에 합창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다가 작년 우연한 기회에 나는 소위 싸이질을 시작하게 됐다. 싸이월드에 홈피가 생기게 됐고, 비로소 이에 놀라는 학생들과 일촌을 맺으며 도토리를 주고 받게 되었다. 영화 ‘투사부일체’를 보다가 조폭 교생이 불량 학생들에게 도토리를 건네주며 “이제 우리 일촌 됐다”라며 씩 웃고 돌아설 때 학생들이 휘둥그레 하는 장면에서 나는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싸이를 통해 나를 보여주기도 하고 학생들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해서 가까워진 일촌 중에 그룹사운드 경력이 있는 학생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사회복지학 전공을 살려서 “최저생계비”라는 그룹사운드를 결성했다. 그룹사운드 이름 치고는 참 뭣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전공을 드러내는 그 가상함이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가을에 학과 축제 때 개막 공연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제안이 들어왔다. 최저생계비 공연에 깜짝 이벤트로 출연하여 한 곡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프로포즈가 반갑기도 했지만 이내 멈칫거리게 되었다. 과연 우리가 노래로 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학생들이 먼저 선곡을 하여 제안을 해 왔다. “나 어떡해”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난 눈이 번쩍 뜨였다. 이런 노래를 요즘 학생들이 안다는 것은 내게 하나의 사건이었다. 학생들도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했다. 1977년 말, MBC 주최로 제1회 대학가요제가 열렸다. 유신 말기 암울했던 시절에 대학가요제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었다. 학생들의 저항의식을 무디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서울대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Sand Pebbles)가 대상을 받았다. 이것도 뭔가 각본이 작용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때 수상곡이 바로 ‘나 어떡해’였다. 그러나 이 노래는 이듬해 엄청난 반응을 불러왔다. 내 기억으로는 소풍, 수학여행, 체육대회, 장기자랑 등에서 학생들은 거의 ‘나 어떡해’만 불렀던 것 같다. 몇 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동기생 모임을 서울에서 가졌다. 제 각각 늙은 모습으로 만나 모처럼 해맑은 시간을 가졌는데, 마지막으로 간 곳은 역시 노래방이었다. 끝까지 남은 약 30명 정도가 노래방을 점령하다시피 하여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한 친구가 선곡을 했다. 전주곡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잠시 멍하니 서로 쳐다보다가 이내 하나가 된 듯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불러댔다. 그게 ‘나 어떡해’였다. 그러니까 우리 최저생계비 학생들이 나의 잠재된 코드를 울린 것이었다. 나는 못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며칠 동안 저녁 시간에 그들의 동아리 연습실에서 함께 연습을 했다. 나는 70년대 분위기로 돌아가 21세기 대학생들과 ‘나 어떡해’를 외쳐댔다. 그러나 그건 노래가 아니었다. 거의 악쓰고 절규하는 몸짓이었다. 젊었을 때에도 고음처리가 어려웠던 노래인데 이제 와서 다시하려니 목이 터질 것만 같았다. 기침은 필수적으로 동반됐다. 그래서 깜짝 이벤트를 취소하자고 했더니 학생들이 펄쩍 뛰었다. “교수님, 요즘은 망가지는 것이 짱입니다요!” 나더러 망가지라는 주문이었다. 옛날엔 내가 노래를 잘 했었다고 변명을 했으나 학생들은 막무가내였다. 노래를 잘 하는 교수보다 망가지는 교수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공연 전날 여러 모임이 있어서 무리하게 되었다. 나는 최악의 컨디션으로 무대에 올랐다. 역시 목소리는 제대로 올라가지 않았다. 온몸을 비틀며 악을 써야 했다. 이내 땀도 펑펑 쏟아졌다. 객석의 반응은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내가 봐도 난 노래를 엄청나게 못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하게 열창을 하였다. 옷이 거의 젖을 정도였다. 쏟아지는 앵콜은 최저생계비를 당황하게 했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최저생계비다웠다. 할 수 없이 드럼만 연주를 하기로 하고 70년대 그룹사운드 노래를 한 곡 더 했다. 객석의 학생들은 즉흥적으로 율동을 맞춰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통하기 시작했다. 지난 해 말, 아직도 대학가요제는 열리고 있었다. 취직 걱정이 과거 민주화 투쟁만큼 심각한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 ‘잘 부탁드립니다’가 대상을 받았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에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들을수록 무엇인지 모를 마력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인 것 같다. 소음처럼 들리던 요즘 노래에 관심을 갖다보니 운전을 하면서도 옛날 노래보다는 요즘 노래를 많이 듣는다. 피아노를 필수로 배우며 자란 세대의 노래는 우리 세대의 노래보다 훨씬 세련됐다. 그래도 가사의 정서는 옛날 노래가 더 좋은 것 같다. 이제 나는 최신 노래부터 옛날노래까지 별 막힘없이 즐기고 있다. 요즘 학생들 중에서 70~80년대 노래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나를 통해 과거 음악을 들어 본 학생들은 옛날에도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요즘 많이 알려진 노래들 중에서 옛날 노래를 리메이크한 것들이 많다. 학생들은 원조 곡을 모르고 리메이크곡만 아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젊은 세대와 나는 이렇게 소통하고 있다. 음악에서조차 단절됐던 관계가 음악을 통해 소통되고 있다. 언론 매체나 음악 유통 매체가 너무 새로운 것만 강조하다보니 대중들은 자기 시대의 음악에만 빠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장벽을 뚫고 소통하는 맛이 아주 괜찮다. 요즘 문화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함께 하는 문화는 우리 사투리처럼 정겹고 일체감을 느끼게 되지만 격리된 문화는 외국어처럼 낯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윤찬영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전북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 전국교수노조 전북지부장, 한국사회복지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월간 열린전북 발행인, 한국사회복지교육협의회와 전주시 사회복지협의회 이사, 전북여연 감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사회복지법제론』,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한 실천』, 『사회문제와 사회복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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