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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5 |
봄이 무르익는 밤의 짧은 편지
관리자(2006-05-10 15:08:51)
어떻게 지내십니까? 바람이 불고 황사가 오더니, 봄이 어느새 떠나간 모양입니다. 배꽃도 복사꽃도 다 시들었습니다. 근년에 이르러 봄이 실종되었다는 소리가 종종 들립니다. 꽃이 피는가 하면 어느새 녹음이 우거져 여름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봄옷을 입을 날이 채 보름도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한반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전문가도 있으니 봄날이 짧아진 것은 사실이겠지요. 그렇다 해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이런 변화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앞산에 망고나무를 심어 원숭이를 키울 수 있을 정도로 급박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덕분에 봄이 사라진 것은 아닐까요? 봄날이 와도 시큰둥하게 본척만척 하다가, 갈 때쯤에야 인사치레를 하느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닐까요? 우선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아요. 오는 봄을 맞는 태도도 그다지 공손하지 못합니다. 신동엽 시인이 오래전에 쓴 「봄의 소식」을 다시 읽어 봅니다.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났다커니 봄은 위독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래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지내 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래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 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봄 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렇듯 불안한 기다림이 없으므로 만나본들 시들한, 그런 형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생활의 변화와 그에 따라 무뎌진 감수성이 봄맛을 버려놓은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라 해도 옷이 두껍고 방이 따뜻하여 추위를 체감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봄기운이 동하여도 창밖으로만 바라보니 아직도 겨울인줄로 압니다. 꽃이 피면 그제야 사진기 들고 설치다가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입에 뭅니다. 뜻도 없이 그냥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읽어 주십시오.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 또한 당신의 자유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총총. | 정철성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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