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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 |
어느 미국 연속극 속의 한국어
관리자(2006-04-08 16:46:16)

몇 년 전 옆자리의 동료가 비디오 테잎을 하나 건네주면서 한국동란이 시대적 배경이라고 귀띔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매쉬라는 영화였습니다. 엠 에이 에스 에이치, 매쉬는 육군이동외과병원의 약칭입니다. 동명의 소설을 1970년에 영화화한 것으로 영화가 나온 후 텔레비전 연속물로 만들어져 십년씩이나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전쟁과 이동병원을 배경으로 삼았는데, 웃자고 만든 영화라 엉뚱한 일들이 쉼 없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저는 웃으며 볼 수가 없었습니다. 매쉬를 제작한 미국에서의 일입니다. 어느 백인 학생이 인디언 출신 급우와 함께 서부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벌거벗은 인디언들이 열차를 습격하고 어느 틈에 용감한 기병대가 나타나 그들을 격퇴합니다. 그러자 영화를 보던 인디언 친구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백인 친구가 물었습니다. 이봐, 자네 조상일지도 모르는데, 심하지 않아? 그러자 인디언의 후예가 대답합니다. 걱정 말라고, 저건 인디언이 아니야. 영화 속의 인디언은 인디언이 아니라 백인 중심주의와 헐리웃의 상술이 합작으로 구성한 인디언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뜻이겠지요. 인디언을 요즘은 원주민이라고 부릅니다. 인디언이라는 말에 워낙 좋지 않은 때가 많이 묻어 그렇다고 합니다. 매쉬를 보는 동안 세트라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이따금 등장하는 이동병원 주변의 풍경이 너무도 참혹하여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국과 전쟁을 병치시키는 습관이 이런 연속물 덕에 더욱 완고하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치자 분노가 스멀스멀 손금에 잡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서부영화를 보던 원주민의 후예처럼 거리를 둘 핑계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호준을 비롯하여 매쉬에 등장하는 한국인들이 전혀 한국어를 한국어처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쉬는 한국동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시대적 배경을 장식처럼 사용하였을 뿐이라고, 진지함의 결여를 두고 매쉬를 탓하는 것은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뒤늦게 텔레비전 연속물 로스트를 디브이디라는 신종 매체로 보고 있습니다. 로스트를 보다가 매쉬가 생각난 것은 바로 로스트에 등장하는 한국인 권 씨 부부 때문이었습니다. 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김윤진은 쉬리에서는 여전사였지요. 그런데 권진 씨의 역할을 맡은 대니얼 킴의 한국어가 상당히 어색합니다. 여러 사람이 이 점을 거론했는지 대니얼 킴은 자신이 두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집안에서만 한국어를 사용한데다 부모의 사투리 영향을 받아 그렇게 들리지만 역할을 잘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터뷰 내용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저는 대니얼 킴의 연기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감독이나 제작자의 귀에 그의 한국어가 거슬리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하고 싶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비교해 봅시다. 요즘 한국에서 제작되는 연속극에서도 주인공이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온 국민 영어학습의 결과인지 아니면 해외파 연기자의 역이민 덕분인지 모르지만 아직도 어색한 영어가 속출하는 한편으로 이전에 비하여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연출자 또는 연기자들의 외국어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매끄럽지 못할 양이면 한국어로 계속하는 편이 낫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일본 장수들이 일본어로 말하지 않는다고 시비를 거는 시청자가 있다는 소리를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외국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같은 동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일 것입니다. 연속극을 보다가 직업의식이 발동하여 한 마디 거들어 봅니다.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도시에 살면서 그런 관심도 없다면 좀 창피한 일일 테니까요. | 정철성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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