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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 |
[디아스포라 기행- 추방당한 자의 시선]서경석 지음, 돌벡게 펴냄, 2006
관리자(2006-04-08 15:45:56)

울면서 황야를 가로지르는 사람들....디아스포라 글 | 박지원 원음방송 PD 어느 날 새벽 4시 41분. 도무지 잠들지 못한채 TV를 켠다. 채널 58....59.....어느 언저리쯤에서 섬뜩한 장면을 본다. 사형집행장면. 모두가 잠든 시간에, 비록 영화지만 누군가가 죽음과 겨우 한 뼘의 공간을 두고 떨며 서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잠드는 동안 누군가가 죽어간다는 사실. 전기의자에 앉은 흑인이 서서히 단계별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사형장 유리벽너머에서 아무 표정없이 지켜보는 사람들..... 죽음과 죽음너머......... 그 날 선 경계사이에서 나는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스런 장면에 진저리를 친다. 그 새벽 4시 41분, 굳이 나를 깨워 TV를 켜게 한 모든 상황에도 진저리를 친다. 전후좌우 시놉시스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눈앞에 똑 떨어진 사형집행장면을 부릅뜨고 봐야하다니..... “여보세요? 원음방송 박지원 PD신가요?” “네....그런데요” “문화저널입니다. 원고청탁건 때문에 전화를 드렸는데요” “.......?” “사실은 팝스갤러리 진행하실 때, 나름대로 애청자였습니다” “아, 예......” “예전에 서경식 선생의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프로그램 중에 읽어주셨지요?” “네, 그랬죠” “팝송프로그램에서 그 책을 읽어준 점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에 서경식 선생 근간 『디아스포라 기행』이 나왔는데, 그 인연으로 서평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네에.............” 얼마 후 책이 도착하고 나는 단숨에 읽어냈다.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제목부터 신산스럽다. 그는 여전히 닫힌 문 밖에서 떠돌고 있었다. 흩어져 헤매는 자로서의 시선은 여전하다. 음악프로그램을 제작 진행하면서도 좋은 책에 대한 애정의 시선을 거두고 싶지 않았던 팝스갤러리, 매주 화요일 '책 읽어주는 DJ'라는 이름 하에 참으로 많은 예술서적을 섭렵했고, 그 가운데 끼어있던 책이 『나의 서양미술순례』 초판이었다. 팝갤용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저자의 젖은 시선을 따라가며 간간히 그의 글에 우리식의 음악을 오버랩하곤 했다. 아마도 꽤 많은 이들이 선생의 글과 책에 실린 그림에 공감했던 시간이었다고 우린 기억하고 있다. 굳이 어둡고 슬프고 고통스런 텃취의 그림들을 따라가면서 속내를 머뭇머뭇 내보이던 저자..... 그의 책을 읽던 팝갤은 다소 무거운 의무감을 지니고 그 책을 완독해냈다. 당시 팝스갤러리는 비주류였으며, 방송국 안에서조차 이해받지 못한 채 ‘섬’으로 떠돌던 프로그램이었기에.... ‘공중에 매달린’ 디아스포라적 프로그램이었기에........ 7년 만에 프로그램은 막을 내렸고 지금은 ‘바깥’에서 떠돌게 된 동지를 위해 투쟁중이다. 책의 첫 단락 -1장 죽음을 생각하는 날-로 가는 길은 멀었다. 20여 페이지에 이르는 프롤로그에서 그는 자신이 왜 디아스포라인가를 설명했고, “그래도 여기밖에는 살 곳이 없는 것이다”라고 힘없이 읊조리고 있다. 그는 왜 디아스포라인가? 왜 이산(離散)자인가 ? 책에 적힌대로 재일조선인이라는 복잡한 이력때문에? 글쎄..... 내게는 그의 두 형들에 관한 기억이 워낙 강해 그가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 올려놓은 고통스런 그림들을 보면 으례껏 그의 두 형들의 삶이 환기되곤 하는 것이다. 그를 디아스포라로 몰아가는 것은 ‘재일조선인’이라는 복잡한 이산의 집단뿐이 아니다. 그는, 1970년대 재일 한국인 유학생 간첩사건에 연루돼 19년, 17년의 옥고를 치렀던 서승, 서준식 형제의 동생인 것이다. 서승 선생의 근황은 모르겠다. 그러나 인권운동사랑방을 이끌며 이 징그러운 땅에 발을 딛고 살던 서준식 선생은 이미 2년여 전 모든 사회생활을 접고 칩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아픔이 많았고, 힘든 인생이다, 뭐라 할말이 없다. 조용히 살고 싶다’라고 했다던가? 형제가 차가운 감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셨고 형들을 옥바라지 하며 조용히 조용히 안으로 안으로 침잠하던 서경식..... 그의 시선은 여전하다. 내성적인 문체도 여전하다. 세상의 모든 디아스포라들을 순례하는 그의 머뭇머뭇한 발길도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자꾸만 불안해지는 것일까?  『나의 서양미술순례』에서 나는 적어도 이런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디아스포라 기행』을 넘겨가며 그가 왜 이산자로서의 삶마저도 접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일까? 어디서 어떻게 죽을까, 언제나 그게 마음에 걸린다. 외국의 숙소에서 눈을 떠, 잠들지 못한 채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삶의 실감이 급격히 흐려질 때가 있다. 죽고 싶은 것은 아니다. 슬프다거나, 우울해진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과는 좀 다르다.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하이드파크 위로 희미한 달이 걸려 있다. 지금 이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그런 생각이 깜빡거리며 점멸한다. ‘누군가가 뒷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는 말이 있지만, 내 뒷머리를 이승으로 잡아끄는 힘은 너무 약하다. 이대로 죽는다고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계속 살아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왜 지금이면 안되는가.····나를 이 세상에 잡아매두는 끈들은 그 어떤 것도 인공적이고 불투명한 것이다. 내가 ‘죽음’을 향해 몸을 내밀었을 때 그 끈들이 나를 꽉 잡아줄 것인가.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쪽에서 손에 쥐고 있는 끈을 살짝 놓으면 그걸로 그만일 것이다. ····그런 감정의 모습을 나는 디아스포라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디아스포라들은 삶의 최후의 형태로 자살을 선택한다. 서경식 역시 디아스포라인 한나 아렌트가 ‘우리 망명자들’에서 적은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은 이제 어깨의 짐을 전부 내려놓았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해보곤 한다’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서경식의 책을 읽어가며 나는 그만 더럭 겁이 난다. ‘그 순간인가?’하고 생각한다. 외국인등록증에 지문 찍을 손이 없었던, 그래서 ‘혀’로만 존재해야 했던 김하일 이야기를..... “공중에 매달린 삶”을 견딜 수 없어서 북조선 국적 취득을 선택한 화가 조양규의 삶을..... 윤이상을, 다카야마 노보루를, 민영순을, 데이비드 강을.... 돌아보던 그가, 프리모 레비, 파울 첼란, 펠릭스 누스바움, 슈테판 츠바이크를 둘러보던 그가..... 이 수많은 디아스포라들을 슬픈 눈으로 응시하던 그가 어느 날 문득 ‘11층의 창’에서 뛰어내릴 것만 같아 순간 아득해진다. 형들처럼 그도 이제는 안식하고 싶은 것일까? 결코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쾌활하게 버리고 싶은 것일까? 서경식 쪽에서 붙들고 있던 끈을 살짝 놓아버리고 싶은 것일까? 기차게 잘 만들어진 영국뮤지션의 음악을 읊조리며 우리는 세계인이야를 외치던 팝스갤러리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한번도 ‘안’에 속해보지 못한 이들이 이렇게 11층 창틀에 간신히 서 있는 한, 단 한번도 자신의 땅에 발을 디뎌보지 못한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이토록 애잔하게 ‘안’의 우리 주위에 머무는 한, 누구도 세계인이 될 수 없다. 몬스터볼의 사형집행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전기의자에 앉은 이를 자꾸만 ‘바깥’에 놓인 동지의 모습으로 착각한다. 바깥으로 내몰린 나의 동지는 생의 절벽에서 몹시도 흔들리고 있고, 투쟁중인 우리 역시 현재 이 집단에서 디아스포라임을 절감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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