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6.4 |
[건축저작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UTZON
관리자(2006-04-08 15:20:14)

지난 겨울 몇 년 동안 모은 마일리지를 이용하여 구입한 항공권으로 가족과 함께 호주여행을 하였다. 여행사를 끼지 않은 탓에 하루하루 그날의 행선지를 정하여 다니게 되었는데, 주로 시드니 주변의 거대한 산악지형인 블루마운틴과, 캥거루, 코알라 등 호주를 특징짓는  동물원과 아름다운 시드니만을 에워싸고 있는 호주시내를 구경하였다. 귀국 하루 전, 배를 타고 한참을 바다로 나가야 볼 수 있는 돌고래투어를 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차례 그 주변을 지나다니면서 겉만 보았던 그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을 볼 것인가로 논의한 끝에, 큰 맘 먹고 공연을 보기로 하였다. ‘tarry Night’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페라 하우스 견학과 식사, 그리고 공연, 이 세 가지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문화상품이다. 먼저, 우리 가족을 위해 한 명의 가이드가 따라붙어 1시간에 걸쳐 오페라 하우스내 구석구석을 보여주면서 오페라 하우스가 어떻게 건축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이때 알게 된 것인데, 오페라 하우스는 1956년 덴마크 건축가인 Jørn Utzon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한다. Utzon의 일화는 그 자체로도 오페라처럼 극적이다. 제안서가 국제공모 마감일 하루 지나 도착하여 휴지통에 버려질 뻔 했던 일, 마야 사원의 연단에서 착안하였고, 조개껍질 모양의 여러 개의 지붕은 하나의 오렌지 모양의 구(球)에서 조각조각으로 잘려질 수 있다는 데에서 구조계산이 가능하였다는 것, 오페라 하우스가 세워진 베네롱 포인트는 영국인 죄수들이 최초로 도착한 곳으로서, 영국인들과 원주민 사이에서 통역을 맡았던 원주민의 이름을 딴 지명이라는 사실, 당초 7백만 불의 예산으로 시작하였다가 1억 2백만 불까지 예산이 확대되었다는 것, 이와 같은 예산확대로 인하여 Utzon은 주정부와 사이가 나빠져 결국 덴마크로 돌아가고 호주 건축팀에 의해 완공된 사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도록 Utzon은 자신이 만든 걸작을 방문하지 않고 있다가 1999년에야 비로소 주정부와 화해하고 오페라 하우스를 방문했던 일, 주정부는 Utzon을 기리기 위해 오페라 하우스 내 Utzon room이라는 방을 만들었으며, Utzon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방을 중심으로 자신의 아들인 건축가 Jan과 함께 오페라 하우스의 미래를 제시하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 등등… 1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배가 고프다. 가이드는 세계 4대 미항 중 하나인 시드니항이 창밖으로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 내 레스토랑으로 우리를 안내하였고, 우리는 꽤 고급스러운 식사를 하였다. 식사가 끝나니 자연스레 공연시간이 되었다. 이 날 공연은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이었다.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라는 아리아로 널리 알려진 이태리 오페라를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에서 기분 좋게 감상하였다. 중간 쉬는 시간에는 잠시 복도에 나와 차를 마셨는데, 창 아래로 보이는 아름다운 시드니항의 야경은 오페라 못지않은 감동을 주었다. 오페라 하우스 견학, 식사, 오페라 관람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진 문화상품이 1인당 300호주달라, 우리 돈으로 약 21만원 정도였다. 국내에서도 외국 유명 오페라단의 경우 2-3십만 원을 호가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구경다니면서 식사까지 제공받는 블루마운틴 투어의 경우 우리 가족 4명을 합쳐도 호주달라 300불이었는데, 이 ‘Starry Night’이라는 문화상품은 불과 4시간 정도에 1,200불이라니… 여기에서 이 두 개의 상품을 잘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자연을 관광상품으로 하여 파는 것임에 반해, 후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을 파는 것인데, 이것은 온통 저작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공연인 오페라는 음악, 미술, 연기 등과 같은 저작물의 총화이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유인한 오페라 하우스는 건축저작물이다. 최근 서울시는 한강대교의 중간에 있는 섬인 중지도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천억 원 이상의 예산이 든다는 내용이 보도되자 시민단체 등 여론으로부터 지금이 오페라 하우스를 건립할 때냐는 뭇매를 맞았다. 6.25.때 폭격되어 난간에 많은 피난민들이 매달렸던 사진으로 유명한 인도교가 오늘날 한강대교의 전신이다. 그곳에 우리나라를 상징할 만한 조형물로서 오페라 하우스를 건축한다고 상상해 보자. 세계적인 성악가인 조수미가 나오고 정명훈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오페라를 감상한 후, 계단을 따라 선착장에 내려오면 아름다운 유람선이 기다리고 있다. 건너편 북쪽으로는 남산 타워가 보이고, 멀리 동쪽으로는 무역센터 등 고층빌딩의 스카이라인이 현대적이고 세련된 도시의 모습을 한껏 자랑한다. 한강 양안의 올림픽대로와 강변도로에 빼곡히 찬 차량이 발산하는 전조등조차도 마치 조명인 양 다소 몽환적인 광선을 뿜어내고 있다. 한강을 따라 유람선이 서쪽을 향하면, 붉게 물든 노을은 63빌딩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게 하여 눈이 부시다. 유람선에서는 편안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우리 고유의 한식이 정성스럽게 제공된다. 6백년의 수도인 서울이 어디 죄수들이 세운 나라의 수도와 견줄 만한 일인가? 살아있는 전설 Utzon과 인도교에 얽힌 세계사적 비극에 이은 ‘한강의 기적’이 그 감동의 크기에 있어서 어디 비교라도 될 만한가? 이 상품 이름을 ‘한강의 밤’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 가칭 ‘천년의 문’이라는 거대한 조형물을 세우려 했던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의 아이디어는 중지도 오페라 하우스 건립에 반대하는 목소리와 같은 여론에 의해 무산되었다. 닐 파킨이 쓴 『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이라는 책에는 이웃 나라 일본도 3개나 들어있는데, 우리의 건축물은 하나도 없다. 물론 우리에게도 불국사, 수원 화성과 같은 건축물이 있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좁은 식견에도 건축물이라 함은 실용성을 겸비한 예술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우리를 상징할 만한 건축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호주의 블루마운틴,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같은 거대한 자연이 없다. 대신 우리에게는 조수미와 정명훈이 있고, 판소리와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는 김치와 비빔밥이 있다. 자연환경이 열악한 나라에서 관광객을 끌어 들이는 데는 거대한 조형물이나 건축물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그 건축물 안에 담아 넣을 음악, 미술, 음식 등 문화가 풍성한 나라라면 더 말할 것이 없다. 영국의 죄수들이 세운 나라인 호주의 이미지를 탈바꿈시킨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 중의 하나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임에 틀림없다. 오페라 하우스를 설계한 Utzon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각형 형태를 만드는 대신, 저는 하나의 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태양, 광선, 구름 등과 더불어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가 됩니다.” 하나의 저작물(건축저작물)이 한 나라를 변모케 하고, 자자손손 삶의 터전이 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창작물과 창작행위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의식이 아니었나 싶다. (연세대 법대 교수 hdn@yonsei.ac.kr)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