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방언의 백미는 역시 판소리와 완판 고소설이다. 오늘은, 춘향이가 그네 타는 모습과 그 모습을 본 이 도령이 춘향의 자태에 넋이 빠져 바야흐로 사랑의 문턱을 넘어서는 장면을 완판 고소설과 판소리 한 대목으로 떠올려 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봄’ 하면 떠오르는 ‘꽃, 나비, 생명, 기운, 나들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느낌들을 배경으로, 먼발치로 쳐다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청춘남녀의 첫 만남을 19세기 전라도 남원 땅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언어들을 통해 다시 느껴 보는 것도 즐거운 문화적 체험이리라. (완판 고소설, 작교풍류(鵲橋風流) 중에서 발췌) 오월 단오, 바야흐로 봄기운이 무르익어 온갖 생물이 발랄하게 움직이는 시절, 이팔 청춘 춘향도 오늘만큼은 향단이 대동하고 오작교 추천( 韆)18)놀이를 나섰던 것이었다. 규방에 갇혔던 답답함을 그네 타기로 풀어내 힘닿는 대로 그네를 타던 춘향, 그렇게 어울어울 그네를 타다보니 어지럼증이 생겼겠다, 향단이 불러 그네 붙들게 하였건만 그만 머리에 꽂은 비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비녀를 꽂았을 리 만무하겠지만 말하자면 그렇게 머리 풀어질 만큼 신이 났다는 뜻일 테고, 그네에서 내리려는 순간 옥비녀 떨어지는 장면도 생각하면 아기자기하고 귀여울 따름이니 그리 허물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저러나 춘향은 그렇다 치고, 춘향 그네 타던 모습을 먼발치서 바라보던 이 도령은 급기야, 하며 주절주절 잠꼬대 같은 혼잣말을 하였던 것이었다. 이 도령은 가히 글 꽤나 읽었음직한 투로 중국의 온갖 고사를 인용하여 내로라는 미녀들을 줄줄 꿰어 섬겨내고 있다. 지금 같으면, 잘 알려진 미국 여배우 비비안 리, 오드리 햅번, 올리비아 핫세에서부터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 등을 그들이 출연한 장면을 떠올리며 주절대고 있을 법한 풍경이다. 그러더니, 이 도령 방자더러 그네 뛰는 춘향의 모습을 보며, 누구냐고 묻는다. 그러나 우리의 귀염둥이 방자, 쉽게 고할 턱이 없다. 아니, 뭣을 보란 말씀이요. 소인 눈에는 암것도 안 보이는디라우? 병든 솔갱이27)깃 따듬느라고 두 날감지 쩍 벌리고 움쑥움쑥허는 것 보고 허는 말씀요? 고삐를 길게 매 놓은 숫나구, 암나구 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허는 것인개빈디요? 조선시대 식자층들이 한문의 절대적인 영향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완판 고소설은 우선 한문 지식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제 맛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쓰지 않는 방언형들마저 복병처럼 숨어 있어서 완판 고소설을 제대로 읽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판 고소설과 판소리를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자부하려 한다면, 우리 자신이 그것을 이해하고 향유하지 않고서는 그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생명력을 존속시키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 언어문화연구소장 1) 세기 전라도 말에서 ‘ㅎ’ 소리와 ‘ㅣ’ 음이 만나면, ‘ㅎ’ 소리는 ‘ㅅ’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국어학계에서는 보통 ‘h 구개음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 ‘상단아’라는 말은 ‘향단’의 ‘향’이 구개음화를 일으킨 전라도 방언형이다. 전라도에서 흔히 나타나는 ‘h'구개음화의 예로는 ‘형님>성님, 힘>심, 혓바닥> 바닥 혹은 섯바닥’ 등이 있다. 2) 티끌 3) 홍상(紅裳), 붉은 치마 4) 구만장천(九萬長天), 먼 하늘 5) 백운(白雲), 흰 구름 6) 이 구절은 첨지재전홀언후(瞻之在前忽焉後)를 소리나는 대로 쓴 것이다. 김현룡 편저(1996), 「개정판, 판본 및 교주 열여춘향슈절가」에 따르면 ‘첨지재전홀언후’란, 論語 子罕編에 “顔淵 然嘆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라고 공자의 학문과 인격이 훌륭함을 찬양한 말인데, 여기서는 그네의 오락가락하는 것에 이용했다고 한다. 7) 가벼운 8) 도화(桃花), 복사 꽃 9) 광풍(狂風), 일시에 거세게 부는 바람 10) 호접(胡蝶), 나비 11) 양대(陽臺)의 무산(巫山) 선녀(仙女) : 중국 초나라 양왕(襄王)과 무산 선녀와의 고사. 초 야왕이 고당(高唐)이라는 곳에 놀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처녀로 죽은 무산의 선녀와 정을 주고 받았다. 선녀가 헤어지면서 말하기를, ‘양대의 아래에서 아침에는 구름, 저녁에는 비가 되어 나타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남녀간의 정교(情交)를 의미하는 말로 쓰임.(김봉호 편(1989), 「판소리 창본집」, 백문사, 34쪽 참조) 12) 그네의 방언형, 현재 남원 지역을 비롯한 전라북도 전역에서는 근네, 건네 형을 비롯하여 ‘근듸’에서 비롯된 방언형, ‘근디, 군디, 군지, 훈지’ 등이 나타난다. 13) 시냇가를 표기한 것으로 판단되는 표기법이다. 그런데, 완판 고소설에서 한자어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까닭에, 시냇가 또한 세내 즉 물줄기가 작은 내를 나타내기 위해 순 우리말을 한자어화 한 것으로 보인다. 14) 반석(盤石), 넓은 바위 15) 옥비녀 16) 산호(珊瑚) 17) 옥반(玉盤), 옥으로 만든 예반, 예반은 나무나 쇠붙이로 만들어 칠을 한 둥글고 납작한 그릇을 의미하는데, 옥반은 나무나 쇠붙이 대신에 옥으로 만든 쟁반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옥쟁반에 구슬 구르듯한다는 속담을 여기서는 한자어로 표현한 셈이다. 18) 추천( 韆), 두 한자 모두 그네를 뜻한다. 19) 섬어( 語), 헛소리 혹은 잠꼬대 20) 오호(五湖), 편주(扁舟), 범소백(范少伯), 서시(西施), 서시는 吳나라 왕에게 항복을 당한 越왕이 吳왕의 마음을 이완시키려고 바친 미녀이다. 뒤에 오나라를 정벌한 후 범소백은 서시를 데리고 五湖를 건너 濟나라로 가서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21) 해성월야(垓城月夜), 옥장비가(玉帳悲歌), 우미인(虞美人), 우미인은 초나라 패왕 항우의 부인이다. 항우의 군사는 해성에서 군사도 적고 음식도 떨어져 한나라 군사들에게 포위를 당하고 그날 밤 항우와 부인은 눈물어린 이별을 하게 된다. 22) 단봉궐(丹鳳闕), 백용퇴(白龍堆), 독유청총(獨留靑塚), 왕소군(王昭君), 왕소군은 漢 元帝 때의 궁녀이다. 흉노족이 번성하여 한나라에 청혼할 것을 요구하자, 문제는 왕소군을 보냈다고 한다. 23) 장신궁(長信宮), 백두음(白頭吟), 반첩여(班 ), 반첩여는 한 성제의 후궁이었는데 성제의 사랑을 잃고 장신궁에 거쳐하며 自悼賦, 素賦, 怨歌行 세 편의 시가를 읊었다고 한다. 여기서 백두음은 司馬相如의 처 卓文君이 다른 여자를 맞아 이혼하려는 남편에 대한 슬픔을 노래한 것이므로, 잘못 인용한 것이라고 한다. 24) 소양궁(昭陽宮), 시측(侍側), 조비연(趙飛燕), 조비연은 漢 成帝의 황후이다. 25)) 낙포선녀(洛浦仙女), 落水에 빠져 신이 되었다는 미인, 密犧氏의 딸이라고 한다. 26) 완판 춘향전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는 ‘김현룡 편저(1996), 「개정판, 판본 및 교주, 열여춘향슈절가」, 아세아문화사.’를 추천할 만하다. 본 글의 해제도 위 책을 참조하였음을 밝혀둔다. 27) 솔갱이는 소리개, 날감지는 날개의 방언형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