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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4 |
[정읍시 산외면 내목마을] 행위로 표현되는 소망이여
관리자(2006-04-08 15:15:55)

“왜 돼지한테 돈을 줘?” 일곱 살 먹은 병남이가 물었다. “그냥 주는 것이여.” 동네 할아버지들의 대답이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 내목마을 사람들이 모여 짐대를 세운다. 제사상에 돼지머리를 올리고 돼지 입에다 만 원짜리를 끼워주자 병남이가 궁금해하며 물었다. 아이는 이 마을 김수영 이장님의 손자이다. 옛부터 하늘에 제사를 드리거나 동제(洞祭)를 지낼 때,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돼지꿈을 꾸면 ‘복이 온다’고 하여 요즘에도 로또복권을 사거나 계획한 일이 잘 되리라고 예감하기도 한다. 돼지가 가정살림의 기본적인 재원(財源)으로, 한자 돈(豚)이 돈(金)과 음이 같은데서 연유한 거라 생각된다. 돈(豚)에 돈을 주는 것은 ‘돈이 두 배로 늘어나라’는 소망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보통 마을 입구에 세우는 장대를 솟대라고 부르지만, 내목마을 사람들은 짐대라고 한다. 이 마을 입구 모정 옆에 세 기의 짐대를 세워 화재맥이로 삼는다. 마을 서남쪽 왕자봉 옆에 화산(火山)처럼 생긴 화경산이 있어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할 염려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긴 소나무 장대 위에 물오리 형상을 만들어 화산을 지켜보게 하면 마을에 불이 나지 않을 거라는 주술적 기원을 짐대를 통해서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아침, 내목마을 남자들은 뒷산으로 소나무를 베러간다. 나무 베러가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정갈한 사람만 갈 수 있다. 상중(喪中)이나 아이를 낳을 예정이거나, 개고기를 먹은 사람은 나서지 않는 게 관례이다. 장대로 쓸 소나무를 고를 때도 반듯한 소나무 보다는 용트림하는 것처럼 굽은 소나무를 베어온다. 장대가 용을 상징하여 하늘로 승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마을사람들은 소나무를 베어와 먼저 껍질을 벗기는데 껍질을 벗기면 보기도 좋고 송진이 나와 오래간다고 한다. 즉 송진이 코팅 처리된 역할을 하며 화재맥이를 한다는 것이다. 장대 위에 물오리 모양을 조각하여 세우고 백지에 쌀과 동전 3개를 넣어 매단다. 그렇게 장대를 세우고 나면, 동네 아낙네들이 돼지머리와 떡시루를 이고 와서 제사상을 차린다. 남자들은 풍물굿을 하며 마을회관 앞을 한바퀴 돌고, 짐대 앞에서 소원을 빌며 마을 동제를 지낸다. 그리고 제사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음복을 한다.   짐대는 동네사람들 공통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다. 동네에 불이 나지 않고 농사도 풍년이 들며 자손들 모두 소원성취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다. 짐대의 소재는 마을 뒷산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를 사용했다. 소망을 하늘에 있는 신에게 전하기 위해서 용처럼 구불구불 용트림하는 소나무를 하늘 높이 우뚝 솟게 했다. 하늘 높이 세울수록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을 입구나 마을회관 앞은 동네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모였다 헤어지는 곳으로, 소망의 상징인 짐대를 이곳에 세운 것은 볼 때 마다 기원을 다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다. 짐대 위 물오리 형상은 옛부터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전하고, 또 신의 말씀이나 당부를 우리 인간에게 전해준다고 한다. 쌀과 동전 세개를 백지에 싸서 오리에 매다는 행위는 인간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쌀과 돈을 많이 내려주기를 절실히 원하는 공통의 바람이다. 제사상에 차린 음식과 돼지머리를 동네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뜻을 같이한다는 ‘밥상 공동체’를 뜻한다. 내목마을 사람들이 세우는 짐대나 풍물굿은 바로 현대적 의미의 행위예술이고 설치미술이다. 최근에 관념적이거나 관람하는 대상으로 미술의 개념이 상당부분 굳어졌지만, 내목마을의 짐대나 그 앞에서 지내는 마을굿은 동네사람 모두가 만들어내고 공유하는 일종의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다. 짐대나 장승같은 일종의 마을 공동체 설치 미술은 ‘관람’하거나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작업하고 ‘사용’하는 미술이면서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서양미술에서 얘기하는 행위예술이나 설치미술이 바로 우리에게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욕리 짐대는 ‘명사’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동사’로서의 미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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