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예술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2005년 8월 출범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문화예술계의 한 해 성과를 정리하는 의미로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각 장르별 우수 창작물을 선정·시상해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올해의 예술상>이다. 2004년 9월부터 2005년 9월 사이 국내에서 발표된 문학, 미술, 연극, 무용, 음악, 전통예술, 다원예술 등 7개 분야 총 2,000여 예술작품 중 예심과 본심을 거쳐 모두 32개의 문화예술작품들이 2005 올해의 예술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올해의 예술축제란 공연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선택하여 관람할 시각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시민들에게 검증된 우수한 공연들로 폭넓은 문화향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축제의 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뽑힌 작품들은 2월부터 4월까지 서울, 제주, 울산, 춘천, 대전, 광주, 전주, 대구, 울산, 부산 10개 도시로 분산되어 무료로 공연된다.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극단 백수광부의 ‘그린벤치’와 무용과 음악, 문학부문에서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한 서울발레시어터의 ‘봄, 시냇물’, 피아니스트 최희연의 피아노 독주, 공선옥의 「유랑가족」 ‘문학 토크쇼'가 전주를 찾아왔다. 문학부문 4개의 예술상중 하나로 뽑힌 공선옥의 「유랑가족」을 위한 자리로 17일 소극장 판에서 한창훈 소설가의 사회로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축하 메시지 영상을 시작으로 작가와 관객의 대화, 판소리 및 축하공연 순으로 진행되었는데 공선옥의 소설내용에 바탕을 둔 박양희 바울의 노래와 역시 소설의 내용을 사설화하여 열창한 소리꾼 최용석의 축하무대는 소설의 감동을 배가시키기에 충분했다. 물음에 대한 공선옥 작가의 간단명료, 솔직담백한 답변으로 행사는 화기애애하게 끝이 났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18일 있었던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은 화려한 선홍색 부채와 남녀 무용수들의 빠르고 역동적인 춤사위로 젊은이들의 사랑과 삶에 대한 정열을 표현한 ‘도시의 불빛’, 최소한의 의상만 걸친 채 고난도의 테크닉으로 봄의 생명력을 피워낸 ‘생명의 선’,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하여 본 사랑, 갈등, 배신, 좌절, 슬픔 등을 승화시켜 끝내 자유로 마감하는 ‘봄, 시냇물’ 총 3부로 구성되었다. ‘또옥 또옥’ 청량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메아리를 남기며 오래도록 울렸다. 바로 옆에 존재하는 봄의 기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충고라도 하듯 깊고 또 깊게……. 표면적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내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어떤 연고로도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극단 백수광부의 ‘그린벤치’도 18일과 19일 소리전당 명인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아내가 옆에 있는데도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어린 딸의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남편, 그와 이혼하고 딸과 불과 4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젊은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있는 엄마,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누나의 벌어진 옷 틈 사이로 가슴을 훔쳐보는 소극적인 남동생, 엄마 또래의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누나. 모든 생명의 본향인 자연(Green)과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안식의 장소(Bench)라는 작품명으로 낙원(본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그리움과 괴로움을 표현하고 그들이 다시 낙원을 찾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연출 의도라고… 시종 조용한 가운데 등장인물의 대사와 심리의 흐름을 따라가야 했던 터라 다소 어렵고 지루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족 분열의 이유, 굵직한 감정의 움직임들을 습관처럼 받아들이지만 가슴속은 너무나 시린, 곧 외로움으로 통일되는 그들의 아픔을 공유했기 때문일까.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발걸음과 표정은 살짝 굳어있었다. 문화공연을 향유하기 어려운 환경에 있는 시설이나 단체에게 우선적으로 티켓을 분배하기 위해 홈페이지(www.artsaward.or.kr)에서 신청을 받고 추첨으로 티켓을 분배한 방식은 참으로 취지가 좋았다. 이번 작품들은 작년 국내에서 공연되었던 것들 중 최고 실력자들의 무대라고 할 수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박수 소리가 컸다. 거의 꽉 찬 객석은 전주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19일, 연극이 끝나고 만난 이경신(전북대 3년) 씨는 “친구와 함께 홈페이지에서 전주 공연을 모두 신청해서 보고 있다”며 올해의 예술축제의 취지와 공연의 질적인 면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제 무용공연을 모악당에서 보았는데 VIP석이라고 불리는 앞자리들이 군데군데 비어있었어요. 관객이 앉지 않는 좌석을 VIP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예약을 해놓고 안 온 건지, 일부러 비워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터는 앞자리부터 차곡차곡 채워줬으면 좋겠어요.” 이경신 씨의 지적처럼 공연이 이루어졌던 각 홀의 앞좌석들이 비어있는 것은 보기 사나웠다. 남의 것을 탐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주인 없는 돈에 손이 가는 것을 쉽게 참을 수 없듯이 문화공연에 대한 기본 상식과 예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도 무대의 감동을 더 가까이 보고 느끼고 싶은 차에 비어있는 앞좌석은 (게다가 무료이고, 주인이 확실치 않았으므로) 다분히 엉덩이를 옮기고 싶은 마음을 일게 했던 것이다. 사실 공연 중간의 쉬는 시간에 주위 사람들이 방해를 받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리 이동을 두고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일찍 와서 뒤의 지정좌석에 앉았다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앞자리로 옮긴 사람과, 이미 공연이 시작된 후에 당당히 걸어와 앞의 자기좌석을 되찾아가는 사람, 누구에게 도덕을 물어야할까. 좌석관리 시스템을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올해의 예술축제 전주 공연은 끝이 났지만 대구와 부산, 서울 등지에서 4월 15일까지 공연이 계속된다. 관심이 있다면 www.artsaward.or.kr로 들어가 보시길. | 송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