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기량을 가진 광대만이 무대에 설 수 있었다는 대사습대회의 역사 안에는 뛰어난 명창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필시 듣는 사람도 있는 법. ‘소리의 고장’ 전주는 ‘귀명창의 동네’라고도 불리었는데 대사습놀이에 청중으로 참여했던 귀명창들은 소리가 좋지 못하거나 중간에 실수를 연발하는 명창을 퇴장시킬 정도로 소리에 대한 수준과 관심이 높았다. 판소리와 관련된 모든 지식에 해박하고 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소리 좀 한다는 소리꾼들도 귀명창의 평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그렇게 창자와 청자가 서로 도와가며 우리 판소리는 그 높이를 키워왔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몇몇 대학생들에게 “귀명창이 뭘까요?”하고 물어보았다. “귀명에서 불리는 창, 귀명이 부른 창?” 이라는 엉~뚱한 대답에서부터, 관심 없다는 듯 대충 “명창이 아닌 사람”이라고 얼버무리기도 하고, “소리는 잘하는데 듣지 못하는 사람?”, “청각이 뛰어난 명창?” 귀와 연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본 사람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잘 듣는 사람”, “명창은 아닌데 듣는 능력이 뛰어나 명창이라고 불리는 사람”이라고 정답에 가까운 응답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렇다면 귀명창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판소리를 감상하는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그걸 분석하면 바르게 듣고 또 바른 말로 꾸짖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르게 듣는다는 것은 창자가 힘을 낼 수 있도록 흥겨운 추임새와 장단을 넣어준다는 말이고, 바른 말로 꾸짖을 줄 안다는 것은 사설과 발음의 정확성이나 소리의 깊이, 너름새 등의 틀린 부분을 과감히 지적해내어 소리꾼의 기량 향상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시대는 느리게 변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귀명창이란 말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귀명창만 모르면 다행이지만 판소리 또한 모르는 척 넘어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귀명창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귀명창이야말로 판소리의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는 숨은 힘이기 때문이다. 3월 17일 오후 7시 30분, 전주전통문화센터 한벽극장에서 2006 제1회 귀명창 대회가 열렸다. 한국방송공사(KBS) 라디오 <흥겨운 한마당>에서 주최한 이번 대회에는 판소리를 사랑한다 자부하는 강성환, 박진석, 양동규, 김일수, 최봉근, 홍기종 총 여섯 명이 참가하였고, 오정숙, 김일구 명창과 판소리 전문가 이규호, 전북대교수 정회천 씨 등이 심사를 맡았다. 프로그램은 1부 판소리와 관련된 상식퀴즈 풀기와 추임새를 얼마나 잘 넣는지를 테스트하는 ‘소리듣기’, 2부 젊은 소리꾼의 소리를 듣고 나름대로 평을 한후 심사위원의 평과 비교해보는 ‘소리평가’로 진행되었다. 활기차고 구성진 추임새를 넣으며 관련문제를 척척 맞추는 귀명창 후보들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감탄을 자아냈다. 젊은 판소리꾼 이재악의 수궁가 한 대목을 듣고 난 참가자 홍기종 씨는 “변성기에 들어섰는지 성음 상하의 폭이 매끄럽지 못하지만 가사전달이 정확하고 장단이 잘 맞았다. 그러나 우리 판소리는 사설이 중요한데 그것의 극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 이규호 씨는 참가자들이 평가를 하는 심사위원보다 더 세세한 평을 해주고 있다고 놀라워하며 어린 소리꾼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지금 소리를 배우는 과정이지만 기교를 너무 중시하는 것 같다. 기교보다는 힘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도록 좀더 연습이 필요하다. 소리꾼이라면 사설을 제대로 구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맞다”고 말했다. 이 날 축하공연으로 오정숙, 김일구 두 명창의 농익은 무대와 애니판소리로 만들어진 조선전기 8명창 중 1인자라고 불리었던 최초의 양반 출신 광대 권삼득의 일대기, 춘향전을 재미있게 고친 ‘너무나 못생긴 춘향이’가 선을 보여 방청객들의 호응을 자아냈다. 귀로만 소리의 내용과 상황을 파악해야 했던 이전의 방식을 떠나 쉽고 재밌게 판소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비디오로 만들어진 것.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판소리에 대한 흥미를 심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날 진행자는 시간이 촉박하여 대회의 참가자를 신청 순으로 뽑아 다른 귀명창들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죄송한 마음을 드러내었다. 사실 어떤 우열을 가리는 대회라면 최고는 아니더라도 으뜸에 상응하는 사람을 초청해야 옳은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찾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더 뛰어난 귀명창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착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판소리 귀명창들을 위한 첫 무대가 전주대사습과 세계소리축제로 우리 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 고장 전주에서 첫 선을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는 깊다. 이 날 귀명창대회의 우승은 전주시 덕진구에 사는 박진석(45)씨가 차지했다. | 송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