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호부터, 각 지역 문화활동가들로부터 지역의 문화소식을 받아 싣습니다. 고창의 이명훈 고창농악전수관 관장, 군산의 유선주 KBS전주방송 리포터, 남원의 이석홍 남원문화원 사무국장, 무주의 정훈 무주닷컴 운영자, 부안의 염기동 부안독립신문 기자, 임실의 양진성 임실필봉굿보존회 회장, 장수의 고태봉 장안문화예술촌 촌장, 정읍의 황성희 정읍통문 기자, 진안의 한재철 마이산 닷컴 운영자가 각 지역의 문화소식을 전해드립니다. ▒ 군산소식 휘엉청 달이 밝았다 ‘중동 당산제’ 정월대보름의 둥근 달은 여느 보름달과는 다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굳이 고개를 들어 달을 보고 소원을 빌기까지 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졌기 때문일까? 새해 첫 보름달에 이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옛 조상들은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을 특별히 여기며 기리는 각종 제사를 지냈다. 단순 미신이 아닌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제례도 이제 하나둘 맥이 끊기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군산지방에서 뿌리깊게 내려오고 있는 동제중의 하나인 ‘중동 당산제’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군산은 유교와 불교 외에도 토속신앙이 일반적인 신앙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이 토속신앙은 집안에서는 가신신앙의 모습으로 마을에서는 당산(堂山)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군산지역에 있던 모든 마을에서 당산을 모셨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첫새벽에 당제를 지냈고, 어르신들의 말에 의하면 중동 당산제는 약 200년 전부터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농사와 어업을 동시에 하고 있는 중동 지역의 특성 때문에 한해 농사의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행사인데, 군산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동 당산’은 토석채취를 위해 서래산(중동 돌산)이 헐릴 당시인 지난 1976년 당산을 중동의 노인회관으로 이전해 슬라브 단층 옥상에 슬레이트로 당집을 만들어 모신 후 지금까지 당산을 지켜왔다.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는 당산은 종교적인 기능 외에도 1년에 한번씩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일을 논의하고 제사가 끝나면 굿판을 벌여 지역주민들의 단결력 결속과 축제의 역할도 하는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린 중동 당산제는 군산지역의 대표적인 당산제례를 재현하는 행사로 지역주민들이 참석해 마을의 액을 몰아내고 안녕과 복을 기원했으며 무사 평안함을 빌어주는 풍물굿판으로 펼쳐졌는데, 그 흥겨움만으로도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지역주민의 화합과 민족 문화의 계승·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서래산의 당집을 지키던 이연숙 할머니가 현재, 당집이 모셔진 중동 노인회관 옆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과연 중동 당제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사뭇 걱정이 앞서는 것은 기우일까. ▒ 장수소식 ‘장수의 문화원류 찾기’ 인류의 역사를 크게 구분한다면 역사시대와 선사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역사시대를 계상한다면 우리 인류의 역사는 대략 3천년에서 길어야 1만 년 전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장수역사는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역사이후 초기시대에는 제대로 된 기록. 조사나 발굴이 되어 있지 않아 자료가 매우 미흡하고 그만큼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뿌리와 원류를 안다는 것은 굳이 ‘온고지신’이나 ‘법고창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상식에 관한 일이고 특히 족보를 소중하게 이어 온 한국의 문화적 관점에서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나 그렇지 못한 점이 매우 아쉽다. 수 만 년 전에 일어난 일들을 알아서 무엇에 쓸고, 할 수도 있지만 최근 들어 ‘한류문화’니 ‘세계화’ 또는 ‘글로벌시대’니 ‘동북아의 중심 국가’니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니 하는 말들은 모두 이러한 뿌리를 알지 못하고는 허상에 불과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 즈음 『장수군의 교통문화』 라는 반가운 책을 보았다. 삼국시대 이전의 고적과 유물에 근거하여 주변지역과 연계된 교통문화를 가지고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동부산악지대에서 백제나 신라에 대응된 독특한 가야문화권이 형성되었다는 것에, 우리의 역사서적을 다시 써야 할 놀라운 일이었다. 일찍이 기록에도 없었던 장수의 가야문화를 혼자 힘으로 연구해 온 곽 선생의 눈물겨운 연구의 결과가 최근 들어 문화원의 도움으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곽 선생이 수년전부터 장수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장수 가야시대유물에 대한 지표조사이다. 백날 돌아다니면서 떠들어봐야 효과가 없나 했는데 여러분의 관심으로 그나마 조끔씩 나아지고 있는 듯 하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그나마 기록으로 전하여지고 있으니 다행이고 그 이전의 장수에는 어떤 분들이 어떤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살았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에 엄청나게 도굴이 되었고 지금도 포크레인 밑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역사의 유물들을 하루빨리 건지어 보존하는 것이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참에 욕심이 있다면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가야문화시대의 유물에 대하여 깊이 있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 두 번째 소개할 책은 634쪽에 이르는 방대한 량의 『장수의 마을과 지명유래』이다. 장수읍, 번암면, 산서면에 우선하여 정리되었는데 마을의 유래는 물론 순 우리말로 되어있는 산과 들판 민간신앙 등이 정겹게 밝혀져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조사, 편집, 집필이 장수가 고향이고 현재 장수에 살고 있는 가슴, 가슴들이 모여 쓰여 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산업화에 밀리는 동안 기록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때에 마지막 정리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절박한 시점에서 나온 책이라 소중하다. 장수의 윷놀이는 ‘종발 윷’이다. 밤톨만하다 하여 ‘밤윷’이라고도 하며 종지를 위로 향하여 던지는 것을 ‘나팔윷’이라 하고, 종지를 엎어 던지는 방법을 ‘복자윷’이라 한다. 이길 것이라 판단하는 편에 돈을 걸기도 하는데 이를 ‘쑥구 든다’라고 한다. 이뿐이랴, ‘깃절놀이’, 당산제, 팥죽제, 선비재와 상사바위의 전설, 도깨비 제사, 고바우, 개금밭골 등 듣기만 해도 정겹고 흥미 있으며 문화적, 교훈적 가치가 상당함은 물론 현대에 활용하여 문화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들이 망라되어 있다. 장수군의 중장기적 발전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는 좋은 자료의 하나이나 활용할 인재가 있을지 궁금하다. 세 번째 책은 『장수문화 제3호』이다. 2005년 장수에는 ‘장수향토문화연구회’가 발족되었는데 이 책은 바로 ‘장수향토문화연구회’가 현지답사를 통하여 조사된 자료를 근간으로 향토사, 논설, 설화, 수필, 시, 창작동화가 어우러져 발간된 책이다. 물론 부분별 오자도 보이고, 학술적 의미가 좁아 보일 수도 있으나 장수의 향토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를 수 있는 경우는 없지 않을까 싶다. 더군다나 학술적으로 조사되지 않고, 밝혀지지 않은 몇 가지 사료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 의미가 깊어진다. 출범한 나이가 비록 작지만 향토문화를 발전하고 이끌어갈 인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 진안소식 뿌리문화의 소강(小康)은 정신적 삶의 후퇴에 대한 반증 원평지 마을의 기원제 올 대보름날은 이른바 서양풍습인 ‘발렌타인날’과 날짜가 근접한 연유로 마침 여러가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음력과 양력을 기준으로 하는 데서부터 달리 시작해 그 생활문화적 향수(享受)를 누리는 세대와 연령층도 다르다. 그 중에서도 본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그 가치 내지 취지가 아닐까 한다. 정월 대보름날이 갖는 내밀성과 자연 순응의 공동체 양상에 비해, 서양의 그 것은 지극히 외향적이며 개인주의적인 모습으로 비쳐진다. 다소 비교할 대상으로는 적절치 않지만, 시기적으로 유사한 연유로 하여 일상생활에서는 마치 동서양의 풍습이 저울질되는 입장에 처한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극명한 양분화로 우리 것의 상실을 보면서 ‘나’와 ‘우리’의 실종 위기감마저 느낀다.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낀 중간세대로서 구차하게 양시양비(兩是兩非)를 들이댈 처지는 더더욱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세대차이나 시대 탓으로 돌릴 문제는 분명 아니라고 본다. 靈은 靈이고 物은 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산골 마을의 풍속도 비록 평야부에 비해 농경문화의 다양함은 덜하겠지만 이 곳 산골마을은 나름대로 독특한 농경문화와 생활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무진장(전북 동부산간 무주·진안·장수)이 지리적으로 오지였다면, 문화나 풍습 또한 그 원형이 잘 보전될 수 있는 여건으로 되풀이해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진안고원 산중에서도 유일한 평원(平原)인 마령면 원평지 마을의 대보름달 맞는 분위기는 다소 각별하다. 집집마다 찰밥이며 오곡밥 또는 갖가지 나물찬을 마련하고, 일찌감치 보름달맞이에 앞서 온 동네가 술렁인다. 마령면 지역은 지형상으로 산간부에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평야부를 형성하여 식량이 귀한 시절 벼농사가 가장 성행했었다. 유사한 지형의 장수군 산서면(山西面)에 가면 ‘마령은 무진장의 머리 격이고, 산서는 꼬리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원평지 마을은 지명처럼 평야부의 중심에 위치하여 자연발생적 대규모의 취락구조를 이루었고 전통 농경사회의 풍습과 유제(遺制) 또한 다양한 형태로 존속해오다 근대화 이후 이농현상과 경지정리 등 농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를 거치면서 농경문화의 요소가 상당 부분 상실되거나 파괴되는 진통을 겪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농경사회의 미풍과 양속이 있어 그나마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한때는 마을 인구가 천 명이 넘었지만(아마도 무진장에서는 가장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1/5 정도로 줄었다. 청장년층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취약해 노령화된 마을이 되었지만, 전통적으로 내려온 마을 동제(洞祭·기원제)는 어김없이 그 맥이 이어져 ‘큰 동네’의 자존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조상들의 지극한 기원과 희망이 망월(望月)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했던 것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좋은 것은 지키고 나쁜 것은 물리친다는 마을공동체의 상생(相生)정신이리라. 농촌사회 특히 산간부 지역에서마저 대부분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 달집태우기에 그치거나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실태에 이 마을의 대보름은 각별한 의미와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상여를 맬 사람마저 없다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의 고향이 피폐되었으며 소외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그래도 이 마을에서는 그동안 이어져 온 전통을 질긴 들풀처럼 지켜내고 있어 우리다운 풍속이 잘 보전되고 있는 본보기로 여겨진다. 대보름달이 뒷산 너머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마을의 남녀노소와 고향 찾은 사람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엄숙한 절차로 기원제를 치루고 마을 뒷산 ‘동대’에서 떠오르는 대보름달을 맞으니 마침 동대토월(東臺吐月)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몸소 행사를 집례하고, 초헌, 아헌, 종헌과 좌우 집사를 맡아 귀감(龜鑑)이 됨으로써 큰 공덕을 보여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내년 이맘때 다시 이 자리에 모여 오늘을 되새기며 고향을 지킬 것이다. ▒ 부안소식 “부안 문화에 ‘활력’ 불어넣을 터” 변산 옛 마포초교 ‘부안생태문화활력소’로 변신 지난 10일 개관한 부안생태문화활력소(대표 허철희, 이하 활력소)는 허철희 사진작가 등 지역 출신 문화활동가들과 주민들 10여명이 만든 문화단체다. “반핵싸움 뒤로 주민들 사이에 싹튼 생태문화적 감성을 바탕으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킬 거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재작년 말부터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계획을 세우고 문화관광부로부터 문화공간 리모델링 사업을 지원받게 됐지요.” 활력소 고길섶 씨의 설명이다. 옛 마포초 운영위원회, 산·들·바다 공동체, 변산공동체 등과 함께 문화공간을 옛 마포초교에 마련하기로 한 것은 지난해 10월. 7년 전 폐교된 뒤로도 풍물패 천둥소리의 풍물강습, 어린이집, 마을도서관으로 활용되는 등 주민들의 관심이 녹아있는 곳이기에 활동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넉달 정도 개조 공사를 거치니 마포초교는 한결 산뜻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교실 두 개를 터 부안의 역사와 생태를 담은 전시실을 만들고, 길게 뻗은 복도에는 부안항쟁을 기록한 사진과 청소년들의 그림 등 반핵기념품들을 전시했다. 부안문화관이라 이름지어진 이 공간은 부안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상설전시관이다. 교실 하나는 주민 영화상영관으로 변신했다. 옛 마을도서관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단체 등에서 도서를 기증받아 모두 6천권을 소장한 큰 도서관이 됐다. 두 개 건물 중 다른 건물은 기존의 어린이집과 함께 생태문화체험을 위해 부안을 찾는 이들이 묵는 숙소로 활용될 예정이다. 화장실은 생태뒷간으로 개조했다. 활력소는 앞으로 책읽는 마을 만들기, 주민영화 감상, 천연염색 교실, 문화예술교육 등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도심과 지역의 생태문화교류를 담당하는 체험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예정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부안의 사계절 밥상’이 한가지 사례인데 농어촌 밥상문화를 선보임으로써 도시화와 상품화 논리로 해체된 우리의 먹을거리 문화를 재조명해보겠다는 의도다. 허철희 대표는 “부안은 새로운 문화도시의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문화행정 마인드나 문화주체들이 태부족한 실정”이라며 “마포초교를 주민들의 문화와 삶의 소통공간으로 만드는 것과 함께 부안 문화행정을 비판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