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래 평전 -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 (안경환, 2006, 강) 글 | 이재규 겨례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사무처장 젊은 날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주는 감동 때문에 오래 가슴 떨려본 적이 많았다. 베라 자수리치, 로자 룩셈부르크, 레온 트로츠키, 안토니오 그람시,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끝을 향해 온몸으로 밀어붙이며 싸우다가 어느 순간 천상으로 비약해 신화가 되어버린 짧고 분명했던 삶. 젊은 우리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하던 그 이름들은 대개는 당대 사회현실에 치열하게 맞서 싸우다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혁명가들이었다. 중남미, 아랍을 거쳐 베트남, 인도, 중국 쪽으로 애돌다가 결국 출발점으로 돌아오면 상처 투성이의 우리 역사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불멸의 이름들. 어두운 대지에서 날아올라 크고 밝은 빛으로 남은 자들의 앞길을 비쳐 주는 그 별들 중의 하나. 조영래 선생의 이야기가 드디어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평전’이다. 평전(評傳)이라 한다면‘어떤 개인의 일생에 대하여 비평을 섞어 가며 적은 기록’이라는 말이다. 쓴 이의 앵글에 크게 의존하는 것이 평전인지라 공식 전기에 비해 주인공의 삶에 대한 다양한 주석과 추론이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삶을 놓고도 여러 본의 평전이 가능하다. 마치 한편의 원작이 매번 무대마다 각기 다른 해석의 공연을 가능하게 하듯이. 안경환 교수가 쓴 이번 평전은 조영래 선생에 관한 첫 번째 평전인지라 조영래를 아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비평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조영래 선생의 유족들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이 강하게 반영된 서술 방식에 유감을 갖고 있으며 새 평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풍문도 들려온다. 이 책의 저자 안경환 교수는 조영래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로 현직 서울대 법대 교수이면서 법과 문학, 법과 영화를 연결하는 글쓰기로 상당한 필명을 얻은 바 있다. 『이키루스의 날개로 태양을 향해 날다』 『법과 문학 사이』 등의 책을 읽다가 현실 법제도와 문학적 상상력을 교직하는 그의 안목과 글솜씨에 경탄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조영래 평전에서는 그런 글맛이 조금 약하다. 사실 이 책은 조영래의 개인사가 아니라 조영래를 매개로 한 20-30년간의 사회사, 운동사, 지성사라고 부르는 편이 더 맞을 듯 하다. 고인과 필자가 공유했던 시간대를 따라 촘촘하게 재구성한 조영래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 공부 하나로 가문을 일으키려 했던 수많은 ‘청운의 꿈’들과 1960-1980년대 한국현대사의 격렬한 부딪힘이 바로 오늘의 일인 듯 눈앞에 펼쳐진다.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선 때로 엘리트적 자부심이 지나치지 않는 가 싶을 정도로 서울대 이야기가 장황한 대목도 없진 않지만 5년여의 준비가 무색하지 않게, 안경환 교수는 질곡과 격랑의 한국 현대사를 한복판에서 열정으로 살아온 조영래의 삶과 사상을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설명하면서 필요에 따라 친절한 주석을 붙여주고 있다. 조영래 선생의 약전을 적어보자. 조영래 선생은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한일회담 반대, 삼선개헌 반대 등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졸업 후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접하고 전태일 정신의 계승과 확산을 위해 노력했다. 1971년 사법연수원 연수 중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 반 동안 투옥되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6년간의 수배 생활을 겪었다. 힘든 수배 기간 동안에도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숱한 어려움 속에서 『전태일 평전』을 집필, 완성하는 놀라운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전태일 평전』의 저자로서 조영래의 이름은 오랫동안 비밀에 부쳐졌고 그의 사후에야 조영래의 이름을 단 책이 출간되었다. 1980년 복권 후 사법연수원에 재입소, 법조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1983년 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부천서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 사건,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등에서 보여준 조영래의 용기와 열정은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사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조영래가 펼치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은 1990년 12월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남으로써 미완의 상태에서 봉인되었다. 유고집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둘 수는 없습니다』(1991)와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1992)이 사후에 출간되었다. 완고한 고집의 지식인,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사회변혁에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문사. 무엇보다 인권변호사이자 『전태일 평전』의 숨은 저자로 알려졌던 조영래의 삶을 이렇게 간단히 요약하기에는 그가 피어올린 불꽃이 너무 크고 밝다. 안경환은 ‘이 땅의 민주화운동사에서 조영래가 차지하는 위치를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의 자리에 비유해도 좋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사법연수생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 1위에 올랐지만 조영래는 여전히 일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비주류의 사람이다. 책 뒷날개에 실린 추천사에서 강금실 변호사(전 법무부장관)는 ‘여기 어려운 한 시대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끌어안고 투신하여 기어이 깊은 사랑과 진정함의 기억으로 남은 한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이성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치열하게 산 흔적을 남기고 떠난 사람, 아깝게도 일찍 맞이한 죽음 때문에 그 존재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그의 짧고 분명했던 삶은 오래 잠들어 있던 우리의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