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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 |
우리 신화 ‘다시 보기’, 그러나 우리 신화의 ‘신화화’ 경계하기
관리자(2006-03-08 21:40:52)

『우리신화의 수수께끼』 (조현설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05) 글 | 진명숙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 2006년 새해 벽두를 한참 지나 책 한권을 만났다. 조현설의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가 그것이다. ‘아주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라는 수식어답게 지은이는 우리에게 ‘낯익은’ 혹은 ‘낯선’ 신화 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물론 우리 신화를 가지고 대중에게 성큼 다가간 책이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서종오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 신동흔의 『살아있는 우리 신화』 외에도 많다. 이 책들도 조현설의 저작과 함께 서평에 동참시키고 싶지만 아쉽게도 나는 이 책들에 아직 손때를 묻히지 못했다. 조현설의 『우리신화의 수수께끼』는 무엇보다도 읽기에 참 좋은 책이다. 쉽고 간결하면서도 섬려한 문체, 각 장 구석구석마다 사진과 그림으로 내용의 재미를 더 보태주고 있는 삽화들, 신화 이해의 깊이를 더하고자 친절하게 달아놓은 주석, 이 모든 방식이 독자로 하여금 이 책에 빠져들도록 한다. 이 책은 우리 신화의 ‘약수’를 찾아 떠나는 긴 여정에서 만난 서른 개의 수수께끼를 풀어헤치고 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 수수께끼를 풀어헤치는 방식이 독특하다. <웅녀라는 오래된 수수께끼>로 첫 장을 여는 소재는 흔한 단군신화에서 또 다른 수수께끼의 코드, 고조선의 건국 신화에 감추어져 있는 코드를 끄집어낸다. 그 코드는 우리의 단군신화에서 고조선의 건국영웅, ‘단군’을 낳기 위해 잠시 자궁을 내어준 대리모로 끝나버린 웅녀의 이야기에서 찾아진다. 지은이는 웅녀를 시조신화로 모시고 있는 에벤키족의 이야기를 빌리면서, 남성 중심의 건국신화 속에서 타자의 이미지로 전환된 여신 웅녀의 잃어버린 신화 찾기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 신화 비틀어보기’ 방식과 흡사하다. 이것은 다음 장에서도 계속된다. <단군의 어미는 웅녀인가 백호인가>에서도 상식으로 통했던 ‘웅녀’라는 정답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강력한 전승력에 밀려 잊혀진 《묘향산지(妙香山誌)》의 <단순신화>를 들춰내어 금기를 깬 호랑이와, 호랑이를 시조로 모시던 집단을 역사의 패배자로 여기던 우리의 사시(斜視)를 교정할 것을 경고한다. 그래야 우리 신화 속에서 천의 얼굴을 지닌 호랑이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성 독자인 나로서 이 책이 반가운 까닭은 첫 장 웅녀의 이야기에서 이미 눈치챈 사람도 있을테지만, 꽤 많은 부분을 우리 신화속 여신들의 이야기로 할애하였다는 점이다. 제주도 선문대할망, 마고할미, 노고할미 등 창조여신들은 남성신에게 자리를 내주고 자신은 산신으로 숭배되거나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익사하는 전설의 주인공이 된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여성신은 다양하다. 내기에 져서 자신을 팔아버린 남편 궁산이에게 구슬 옷을 입혀 태양신이 되게 한 ‘명월각시’, 국가와도 같은 아버지 ‘오귀대왕’의 병을 구하기 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저승인 서천서역국 여행을 통해 생명의 약물을 구해다 주고 정작 자신은 무조신이 된 ‘바리데기’, 자신에게 불행의 씨앗을 심어준 ‘아버지’와 ‘아들’에게 서천꽃밭의 꽃감관이 되게 한 ‘원강암이’, 무능력한 남편 황우양을 성주신으로 만들어주고 대장장이에서 베 짜는 여인으로 주체성을 잃고 타자화된 ‘성주부인’, 지혜로 온갖 고난을 통과한 후 농사를 관장하는 세경신이 된 ‘자청비’ 등 이 책에는 많은 여성신이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 신화가 남성 중심, 아버지 중심, 부계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 속에서 여신이 어떻게 주변화되었는지, 우리 신화가 남성들의 욕망과 어떻게 짝해 있는지를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소외되었지만 여전히 풍요와 재생의 힘을 간직한 여성신을 우리 신화의 주 무대에 세우고자 한다. 결국 우리 신화는 어떤 역사의 순간에 만들어져 고정된 하나의 이야기로 멈추어 버린 것이 아니라 역사의 변화 한 가운데 놓여있는 것이다. 그 일례로 박혁거세의 시조모인 ‘선도성모’를 들 수 있겠다. 선도성모는 현 혈족집단의 시조모(始祖母)였다가, 신라 건국신화에서 배제되었다가, 불교진흥시대에는 불사를 무진장 좋아하는 여산신으로 화장을 고쳤다가, 끝내는 소중화 의식에 의해 신라 건국신화에서 중화의 매개자로 성형한 우리 신화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저자가 우리 신화의 ‘약수’로 추출하는 주제는 참으로 풍부하고 다양하다. 미륵과 석가의 태초의 싸움으로 혼탁해진 세상, 여러 개의 해가 한꺼번에 출현하는 신화적 상황을 통해 문명이란 사상누각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리는 ‘자연의 괴변’, ‘거대한 거시기’에 담겨있는 남성 권력의 상징 등. 이렇듯 우리 신화를 통해 저자가 찍고자 하는 방점은 우리 신화의 풍부한 ‘신화소’이다. 구조주의 인류학자로 이름을 남긴 레비스토로스는 남아메리카 저지대로부터 북아메리카의 북서해안에 이르기까지 813개에 달하는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를 상술하고 분석하여 인간의 보편적 의식 구조를 설명하려고 한다. 신화란 ‘신화소’라 불리는 요소로 구성되며, 신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그 요소들을 이리저리 배열하여 의미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진실을 표현하는데, 신화가 상징하는 바는 문화(또는 문화영역)에 따라 독특할 수도 있고 보편적일 수도 있다. (앨런 바너드 저, 김우영 역, 2003, p.231 인용). 다시 말해 한국 신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해 저자는 한국 신화를 둘러싼 문화적 맥락과 숨은 코드를 발견하도록 한다. 더욱 이 책을 빛나게 하는 것은 우리 신화를 푸는 수수께끼는 한반도라는 닫혀진 공간 안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 서두에서 지은이도 ‘우리 신화에 대한 풀이가 막 다른 길에 이를 때 길을 열어주는 또 다른 우리 신화, 곧 다른 민족의 신화가 있으니 그 길이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신화를 푸는 열쇠로 동서고금의 여러 신화를 함께 비교하여 우리 신화를 이해하는 데 그 깊이와 폭을 더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대중서의 성격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들이 어느 정도 우리 신화나, 역사, 인물 등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라 설정한 상태에서 써 내려간 부분도 적잖이 있어 우리 신화의 초보자에게는 ‘학문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 신화’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자극한 데에 있기 때문이다. 몇몇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대상물’로 취급된 우리 신화를 대중들의 시선 속에 내어 놓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으로 다른 신화 속에 우리 신화를 올곧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연 이 책은 돋보인다. 하지만 서평이란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자위한다면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우리신화의 수수께끼』가 우리 신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통해 우리 신화의 숨겨진 코드와 문화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자칫 우리 신화의 ‘우수성’으로 이해하면 어쩌나 걱정된다. 90년대 유홍준, 주강현으로 이어진 ‘우리 것 찾기’, ‘우리 것 다시 보기’ 류가 안고 있는 ‘자민족 중심주의’, ‘문화본질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신화의 ‘신화화’, 이것을 경계하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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