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06.3 |
다가산에서 본 전주
관리자(2006-03-08 21:34:10)

글 | 홍성덕 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전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전주에 사는 사람들이나 전주를 찾은 사람들에게 전주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사람마다 각기 다른 곳들을 생각하겠지만 필자가 즐겨 찾는 곳은 중바위 꼭대기이다. 동고산성에서 치명자성당으로 내려가는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는 바위 정상이 전주를 조망하고 이해하기 가장 좋은 곳으로 꼽힌다. 산불 감시 초소 옆에서 숨 고르며 내려다 본 전주는 천년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곳에서 본 전주는 전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전주’라는 지명이 생기고, 후백제의 도읍지로서 조선왕조의 본향지로서 전주가 시공간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사진 속에 나타난 전주의 공간적 영상은 그처럼 높게 오르지 않는다. 전주를 굽어다본 수많은 사진들은 지금은 산이라 할 수 없는 조그마한 언덕에서 찍은 것들이다. 다가산이 첫째이고, 초록바위가 둘째이며, 오목대가 세 번째이다. 옛 사진 기술로 담아낼 수 있는 전주의 규모가 그 정도의 높이면 충분했을 터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 일 것이다. 도시가 조금씩 커져가면서 도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은 그보다 높은 완산 봉우리나 기린봉, 중바위, 남고산 등으로 옮겨지지만 지근거리의 도심은 여전히 세 곳이 유효하다. 도시를 조망하면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진 1>은 다가공원에서 지금의 웨딩거리쪽을 찍은 것이다. 사진 중앙에 위로 곧게 뻗은 길이 중앙동 우체국에서 천변으로 내려오는 길이며 길 중간에 보이는 빌딩은 위치로 보아 현재 진미반점이 있는 건물로 여겨진다. 당시 하카다야(博多屋)라 해서 유명한 우동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현재 남아 있는 일제시대 전주부의 건물 중에 가장 크고 예쁜 건물이다. 사진이 촬영된 시기는 오른쪽 상단에 도청 건물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1920년대 후반 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찍힌 전주시내의 인상은 나무가 많다는 것이며, 초가집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전주라는 도시가 양반의 고장이기 때문에 전주시내에는 기와집이 많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일제시대의 전주는 초가집 투성이다. 기와집이라고는 관청(전라감영, 전주부영, 객사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일부 상인들이 살던 곳 뿐이었으며, 기와집촌을 이루고 있는 한옥마을은 1920년대 이후에서야 형성된 근대 도시 한옥들이었다. 때문에 전주시내에는 초가집이 당연히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다사산 정상에서 전주천 상류쪽을 촬영한 <사진 2> 속의 전주 집들 역시 대부분이 초가집이고 집 주위에는 나무들이 빠짐없이 심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는 오른 쪽 하단의 완산교가 콘크리트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역시 1920년대 후반의 것이다. 거의 동시대에 찍은 것으로 일본지리대계에는 좌우로 연이어져 있는 사진도 있다. 도시화의 진행은 삶의 공간을 다양하게 바꾸어 놓았다. <사진 3>은 1970년대 중엽에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사진 2>와 동일한 장소에서 약간 도심쪽의 모습이다. 이 사진을 보면 일제시대와는 달리 전부 기와집으로 바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옥 사이의 나무들은 여전히 도심의 더위를 식혀주고 있다. 다가산은 한 때 연인들이 올라가 전주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포토포인트였다. 60-70년대 다가산과 오목대 정상은 정상부에 큰 나무들이 없어서 도심을 병풍삼아 사진찍기에 딱 좋은 곳이었던 것이다. 도심의 확장과 녹화로 인해 다가산에서 시내를 볼량이면 독립탑 위에     발을 서야 할 판이니 근대 100년의 풍경이 가져간 것이 다가산의 정경이기도 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