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소설은 읽을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그가 구사하는 표현들 즉, 어휘의 다채로움이나 비유의 생생함 그리고 작중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현장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소리꾼이 소리로 부른다고 해도 적절할 듯하고 사랑방에 모여 소리 내어 읽어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태평천하』 가운데 <실제록>의 내용을 재구성하여 채만식 소설 문체의 유려함을 즐겨보기로 하겠습니다. 윤 직원이 이렇습니다. “낸들 왜 그 데숙이(뒷덜미)에 서캐 실은 예편네라두 하나 있으면 졸 생각이 읍겄덩가? 아, 그렇지만 그렇다구 내가 이 나히에 어디 가서 즘잔찮게, 예편네 얻어달라구, 말을 낼 수야 있넝가 그렇잔헝가?” 짐짓 체면은 차릴 줄 아는 위인인 듯합니다만 “야, 이 수언 불효막심헌 놈덜아! 그래, 느덜은 이놈덜, 밤낮 기집 둘셋 얻어놓구.....그러면서, 이 늙은 나넌 이렇기.....죽으라구 내버려두어야 옳단 말이냐? 이 수언 잡어뽑을 놈덜아!” 하고 맏아들 창식이, 큰손자 종수에게 노골적으로 공박을 할 정도니 말 다했지요. 게다가 알고 보면 혼자 지내는 작년 가을 일 년 정도이고 그 전까지는 첩이 끊일 새가 없었습니다. 지난 십 년 동안 첩을 갈아세운 것만 해도 무려 십여 명은 될 것이며, 기생 첩, 가짜 여학생 첩, 명색 숫처녀 첩 등 가지각색이었으며 두서너 달씩 살다가 갈아세우곤 했답니다. 기실 돈 십 원 한 장이면 반반한 얼굴에 노래도 명창인 기생 놀이를 할 만하지만, 돈이 십원, 파랑딱지 그놈 한 장이면 일 원짜리로 열 장이요 십 전짜리로 일백 닢이요, 일 전짜리로 천 닢이요, 옛날 세상이라면 엽전으로 오천 닢이요, 오천 닢이면 만석꾼이 부자라도 무려 천칠백 번이나 저승을 갈 수 있는 노수요라는 걸 짜하게 계산해 낼 줄 아는 위인이라 함부로 돈을 쓸 사람도 아닙니다. 해서 열너댓 살 먹은 어린 애들 데려다가 말눈깔사탕도 사 먹이고 책도 읽히고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밤이 이슥한 뒤에, 첫 날은 일 원 한 장 손에 쥐어주고 인력거 태워 보냈다가 다음 날부터는 버릇 들까 무서워 사나흘에 한 차례로 입씻이 하고 인력거 대신 삼남이 딸려 보낼 재미를 찾았던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머리 쓰다듬던 팔로 목을 그러안으려다가, 허리를 끌어안으려다가, 무려 다섯 번이나 창피를 당했지만 양반이 파립 쓰고 한 번 대변 보기가 예사지, 파렴치한 짓도 여러 차례 하다보면 이골이 나는 법이라, 윤 직원 영감이 처음 뜻을 굽히지 않고 웬만한 입살을 타지 않는 춘심이와 한판 거래를 하게 됩니다. ① 첫째 판. 서빠닥은 짤뤄두 침은 멀리 비얕넌다더니 “아까 낮에 명창대회서 영감님이 연신 조오타! 조오타! 하시던, 적벽가 새타령 하까요?” “하앗다! 고년이 서빠닥은 짤뤄두 침은 멀리 비얕넌다더니 이년아 늬가 적벽가 새타령을 허머넌 나넌 하눌서 비를 따오겄다!” ② 둘째 판,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너, 배 안 고프냐?” “아뇨, 왜요?” “배고프다머넌 우동 한 그릇 사줄라구 그런다.” “아이구머니!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 “저런 년! 주둥아리 좀 부아!” ③ 셋째 판, 누가 그런 비싼 것 말이간디? “저런 년 부았넝가! 헤헤, 그거 참! 이년아, 그러지 말구, 이리 오너라, 이리 와, 잉 춘심아!” “그럼, 나 반지 사주믄?” “반? 지? 에라끼년! 누가 그런 비싼 것 말이간디야!” “일 없어요! 시방 가서 사 주시믄 몰라도.” “내일 낮에 가서 사주마, 사주께, 그러지 말고 이리 오니라!” “오널처럼 까불구, 말 안 들으면 반지 사준 것 도로 뺏는다?” ④ 넷째 판, 연애를 하면 밥이 쉬 삭는다. 연애를 하면 밥이 쉬 삭는다구요. 윤 직원 영감은, 속이 다뿍 허출해서 우동 한 그릇을 탕수육 반찬 삼아, 걸게 먹었습니다. 트림을 끄르르 새끼손 손톱으로 잇자를 후벼서 밀창문에다 토옥, 담뱃대를 땅따앙 치면서, 하는 소립니다. “늬집에 가서 이런 이얘기허머넌 못쓴다!” “무슨 얘기요?” “내가 반지 사주구서 말이다, 저어 거기서, 응? 그 말 말이여?” “내애 내... 않습니다.” “나, 욕 으더먹지, 너, 매 으더맞지. 그리서사 쓰겄냐? 그러닝게루 암말두 허지 말어, 응?” 윤 직원 영감이, 갈데없이 근천스런 X배요 납작한 체격에 형적도 없는 모가지를 한 거간꾼 올창이와 나누는 신세한탄은 심 봉사가 딸 팔아먹고 하는 신세한탄 조로, 창식이 종수를 공박하는 내뱉는 포악떨이는 춘향 모 거지 행색의 이 도령 만나는 대목으로, 춘심이와 벌이는 수작은 이 도령과 춘향이 나누는 사랑놀이로, 윤 직원 영감의 첩 내력, 돈 타령은 놀부의 심술 내력과 화초장 이름 까먹은 대목의 창으로 불러도 그만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채만식 소설은 구술 문화가 번창하던 시기의 끝자락에서 탄생한 소설이며 그런 점에서 전라도 말본새를 자원으로 꽃피웠던 판소리와 닮아 있기 때문에 소리 내어 읽어야 소설 읽는 참 맛이 나는 것 같습니다. | 언어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