竹篇·1 - 여행 서정춘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 글 | 송 희 시인 서정춘 시인을 흘낏 뵌 것은 3년 전 내 시집을 낼 때 마지막 교정을 보러 인사동 ‘시와 시학사’에 들어섰을 때였다. 막 나오시면서 “혹 송희 시인인가? 내가 송 시인 표지 글씨 잘 써줄라고 연습 꽤나 하고 간다” 그러고는 바삐 나가셨다. 인사도 못 드리고 황당하게 스친 것이다. 그 분이 30여년 만에 딱 한 권 시집을 낸 것도, 시 한편 쓰는 걸 지독한 구두쇠 같이 하는 것도 나중에 안 일이다. 출판사에서 그 분의 시집을 사들고 나와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열었다. 오랜 침잠의 세월을 묶은 것이 겨우 30여 편, 굳이 따지자면 1년에 한 편 꼴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것도 어찌나 간결하게 함축되어 있는지 행간 사이에 빠질 때마다 가슴이 후둑후둑 뛰었다. 그리고 우연히 선배 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사회를 볼 때 각인된 이 시를 인용하였다. 여기서부터, ―멀다. 이 첫 행부터가 큰 숨을 들이쉬게 했다. 이 만큼이면 되겠지 이 정도면 되겠지...하다가 늘 제 자리인 날 확인할 때의 좌절이 떠올랐다. 이 정도면 내 가진 걸 다 주었다고 하기도 하고 이 정도 시간이면 삭았음직도 한데 갑자기 툭 불거지는 반응들, 한 가지 깨달았나 싶으면 늘 끝이면서 시작인, 늘 ‘여기’가 제자리인 막막함이라니! 깜깜한 터널을 나려면 이름이나 지식이 다 거추장스러우니 서정춘 시인은 가벼운 잠바차림으로 인사말조차 얼른 비껴간 것이다. 나 한 사람 더 아는 것도 짐이었을 듯 싶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기차. 한 고개 넘어 또 한 고개, 창틈으로 간간이 스며드는 빛이 아니면 도중에 뛰어내릴 수도 있다. 빛이 영 들지 않을 때는 어둠 속에서 어거지로 짜낸 빛 한 올을 만들어 견딘다. 그게 고통이든 희망이든 다행히 우리 모두는 푸른 기차를 타고 있다. 푸르러서 계속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밤 깊은 기차 속에선 막걸리나 색소폰이나 그림이나 한 줄의 시라도 잡고 있어야 한다. 그 다음 해인가 돌아가신 이성선 시인의 시화전 끝물에서 맨손과 맨 입술로 색소폰 연주를 하는 서정춘 시인을 뵈었다. 꽃의 꿀단지에 행여 늘어 붙을까봐 진즉 피운 대꽃을 숨기고 ‘여기’서부터 또 더욱 멀다 라고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어느 날인가 누군가 내 시를 호평한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하셨다. “달콤한 말에 넘어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그라 미친놈들… 쩝쩝” 한 고비 다다랐다고 느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나르시스에 갇히는 것이다. 시(詩)에, 생(生)에, 도(道)에 다다름이 어디 있겠는가? 온전함이 어디 있겠는가? 이 우주에서 나란 주변을 밝게 하는 사람인지 그늘지게 하는지... 다행히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 백년 만에, 그렇게나 빨리 꽃이 핀다면야 이건 엄청난 축복이다. 또한 꽃이라고 어찌 다 같은 꽃이랴! 진짜 여기서부터― 또 시작인 것을. --------------------------------------------------------------------------------------------- 송 희 | 1957년 전주 출생. 96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탱자가시로 묻다』가 있다. 2004년 전북시인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