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조병철 화가 2004년 10월 개관한 전북도립미술관은 ‘도민을 위한 열린 문화공간을 지향하며 중앙편중의 기초예술 진흥 및 지역미술문화 저변확대’를 위해 지난 1년 4개월 동안 ‘전북미술의 현장展’ 참여 작가 145명, 150여점의 작품을 포함하여, ‘전북미술의 조명展’ 1부에 원로작가 32명의 작품 90여점, 2부에 중견, 청년작가 250명의 작품 250여점, ‘전북미술의 맥展’에 작고작가 52명의 작품 160여점, ‘전북서예 역사와 동향展’에 작고작가 51명, 출품작가 86명의 작품 200여점, ‘엄뫼-모악展’에 출품작가 52명의 작품 75점, 그리고 전라북도청사 갤러리에서 전시한 ‘전북의 산하 1. 2부展’에 출품작가 38명의 작품 39점 등 전북미술과 관련된 8건의 전시에 전체 출품작가 706명(작고작가, 출향작가 포함)에 전시작품수 964점(회화, 조각, 공예 포함)을 기획 전시하였고, 그동안 전시되었던 ‘중국미술의 오늘展’ 등 6건의 다른 기획전시에 참여한 출품작가와 전시작품의 수를 합하면 실로 그 수는 방대하다 하겠다. 아마 이러한 기록은 공식적인 집계와 통계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겠지만 기네스북에 오를 수준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토록 자세하게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에 대해서 설명을 더하는 이유는 앞으로의 미술관에서 벌이는 전시의 기획과 그 질적인 부분 그리고 미술관 내부의 효율적인 시스템의 운영 등을 지적하기 위함인데 그에 앞서, 그 동안 미술관의 노력과 함께 한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이 지역미술인의 한사람으로서 심심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앞서의 집계에서도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 지역엔 유달리 기초미술에 종사하는 작가들이 많고 그 전통이 깊다. ‘전북미술의 현장전’을 둘러본 나의 소감은 ‘지역의 생생한 삶, 그 현장에서 삶과 예술의 융합’을 추구하자는 의미에서 ‘창작미술의 현장’을 조망하려는 기획의도에 비해 일부 출품작들은 다소 거리가 멀어 보였고 몇몇의 그림들은 작가적 소양을 평가하는 공모전 양식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어 실망스럽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일제식민통치시대 간교한 문화정치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조선미술전람회’ 류의 양식을 답습한 공모전 등을 통해 작가 수련을 닦는 미술계의 관행이 한시 빨리 개선되어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창작풍토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이 전시는 전북미술을 개괄하려는 관련된 지난 전시들의 연장선에 놓여 있기에 어쩌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이러한 모습들에서 지역미술의 다양한 면을 분명히 읽게 된다. 그러하기에 이 전시에 대한 평가는 이전의 것들과 함께 이루어져야 하며, 아울러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는 전북미술 전반의 특징과 그 흐름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한 부분에 대해선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 미학자와 미술이론을 공부하는 전공자분들의 몫으로 돌려져야 한다. 이 지역미술에 대한 비평의 중요성은 지역미술을 발전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기에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이 지역미술의 미학이나 미술사를 전공하는 분들의 용기를 주문하고 싶다. 어떤 학자는 ‘미술사를 인문학의 꽃’이라 했다. 동의한다. 그와 함께 이 지역미술의 역사. 이 지역의 미학이 정립되거나 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창작에 임했던 작가와 작품, 현재 창작에 임하는 작가들에 대한 비평이 분명하고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심정적으로! 개개인 삶의 가치관과 생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작품이란 비평을 자양분으로 자라는 식물이다. 이제는 주례처럼 쓰는 전시서문이나 인상비평 등의 안일함을 벗고 비평의 책임감을 같고 경쟁력 있는 작가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함께해 주길 바란다. 생각해보자. 관객과 귀명창이 없는, 비평이 없는 한국영화와 국악의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경쟁력이 없는 패쇄적인 집단은 비평에 인색하다. 아울러 이웃한 도시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앞서 열린 ‘남도미술 100년-그 뿌리를 찾아서 展’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전라도와 호남이라는 지역의 개념정립과 미술사적 교류의 문제, 그리고 미술가들의 활동문제 등이다. 자꾸 전북과 전남이라는 좁은 범주의 지역적 개념을 벗고 이제는 다시 ‘예향 호남의 맥’을 함께 일구어야 할 것이다. 이미 남도의 미술은 소치나 미산, 의재, 남농, 천경자 등의 한국화와 오지호, 김환기, 강용운, 양수아 등의 회화작가 군을 한국미술사의 큰 별로 자리매김 했다. 이에 반해 전북은 상대적으로 이곳 출신의 화가에 대한 조명이 부족하여 창암과 강암, 석전! 등의 서예가와 최북이나 채용신 같은 분들이 미술계에 조명되었지만 부족한 감이 있고, 김영창, 김용봉, 진환 등등 많은 선배들의 작품이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올곧게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조각분야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고 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개인적으로 볼 때 전북출신의 많은 작가들 중 현재 조각분야의 작가들의 능력과 작품성들이 무척 탄탄한데 이에 따른 객관적이고도 세밀한 연구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개인의 가능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들이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지역미술의 토양과 인식위에 도립미술관은 전시기획에 앞서 지금껏 해왔던 전시자료들의 성과를 정리 연구하고 소외된 작가와 부족하고 누락된 부분을 조사·보강하여, 보다 분명하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지역미술의 발전방향과 앞으로의 전시방향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이후의 전시 수를 과감히 줄여 질적 수준을 높이고 연구인력 등을 보강하고 필요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여 교육과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립미술관의 위상을 드높이는 개선방안들을 강구하여 경쟁력 있는 미술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지난해 한국소리문화전당 전시지원프로그램 기획공모 MVP - ‘숨 展’(2005.2. 전북예술회관) 이후, 지난 9월 같은 프로그램의 기획공모에 신청자가 없자, 창작지원 기획초대전으로 마련된 이번 ‘미술의 조건 展’은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감각적이며 순발력 있는 전시로 만들어졌다. 전시규모는 지난 ‘숨’ 전의 절반의 공간인 예술회관 1층 전시실만을 채웠지만, 전시의 밀도와 내용을 첨가하기 위해 작가좌담회를 마련, 녹취 정리한 작가들의 솔직한 얘기를 담은 팜프렛을 전시 중에 발간한다는 계획과 소정의 창작비를 지원하는 반가운 기획이었다. 사실 학교법인 예원예술대학에서 위탁 운영하는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은 도의 재정적 뒷받침이 크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수익과 이윤을 창출하여 지속운영 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획전시나 전시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노력만으로도 지역미술瓦 적잖은 활력이 되고 있다. 특히 이 일이 전시실의 운영과 기획을 맡은 한 개인의 노력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은 공기업과 사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처럼 역설적이다. 아무튼 어려운 여건속 에서도 개개인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일들이 미래의 튼실한 지역문화 자양분으로 자라나길 바랄뿐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윤철규·문지웅·이정웅·최광호·신명식·서용인 등 6인으로 전주와 군산, 익산, 태인 등지에서 이 지역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하는 3, 40대 초반의 젊은 회화작가들로서, 이들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자세와 태도로 많은 선배들로부터 역량을 인정받는 작가들이며 그만큼 기대가 큰 후배들이기도 하다. 전시 자체는 준비의 부족한 시간관계상 출품작 거의가 이미 개인전 등을 통하여 발표된 작품이었기에 작품평 등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작품 평이나 전시비평보단 개략적인 전북미술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기획자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출품작가 6인의 작품경향은 한결같이 인상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 색면분할, 팝아트 등 20세기 서구미술의 교과서적인 양식전범을 답습하고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이미 대중문화에선 ‘한류’가 떴는데 전북의 회화(유화)는 아직도 서구추수적인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들 참여 작가는 그것을 의도하거나 자기화하려는 과정에 서 있다고 본다. 그리고 또 그러한 양식들과 전범들의 미학이 폐기처분 되거나 사라진 것도 아니며 고전의 가치가 퇴색되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안 되나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 싶다. 물론 인간이란 한계를 지니며 자신이 보고 싶은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됨은 나 역시 예외일 수는 없지만, 미술가로서 양식적 세계가 독창적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 그것은 아류로 밖에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익히 잘 알 터이다. 박수근이나 수화 김환기, 고암 이응로의 작품이 한국적이다고 해서 세계적으로 조명되지 않은 일 없고, 백남준의 예술적 자양분인 한국의 전통문화가 무시당한 일 없다고 본다. 다만 그것을 제대로 모르고 역사주의나 향토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더욱이, 배타적 민족주의나 토속적 감성주의에 호소하는 것도 곤란하다. 문제는 우리 개개인의 가능성을 세계화하는 일이며 각자의 고유한 언어를 구체화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작품이란 그 시대 그 지역문화의 거울이다. 물론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어야 함이 우선이지만 작품의 형식이란 내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세계화나 예술의 보편성을 오해한 결과 서구화나 서양화양식을 답습하는 것이 진보적이며 국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오히려 더욱 전통적이며 현대적이고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그 방식을 개척한 것들이 경쟁력 있는 예술이고 문화상품임을 알지 않는가를 반문하고 싶다. 서구를 무시하거나 유화를 버리라는 게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보고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박세리나 박찬호. 하인즈 워드가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도 미국으로 이민갈 수는 없다.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프리미어에 진출했다고 해서 박주영이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종가 브라질에서 유학했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갈 수 없지 않은가. 한류가 아무리 뜨고 수출이 아무리 늘어나도 지난해 무역외 수지는 250억불 적자를 넘어섰다고 한다. 밖에서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외국인이 우리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25조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기업의 한해 순수익과 맞먹는다는 얘기다. 놀라운 사실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 외형적으로 한류는 잘 나가는데 실질적으론 교육, 문화, 예술, 금융, 경영, 시스템, 노하우에서 경쟁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스포츠나 올림픽에서 1등을 하고 금메달을 따 봐도, 콩쿠르에서 1등하고 세계적인 활동을 벌여도, 월드컵에서 3회 연속 본선진출하고 4강에 올라도 그것은 환각성 마약 같은 상술이며 실리는 누가 챙기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며 그것은 우리 각자 한사람 한사람이 경쟁력 있는 개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드시 하버드나 MIT, 줄리어드, 동경대에 유학가는 것이 아니고, 꼭 서울대를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모두가 대학원을 나와야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능력을 갖춘 땀 흘리는 명인, 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특이한 현상으로 짚고 가야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공공전시공간이 넘쳐나고 전시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전주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있다. 생각해 보자 전문화되고 제대로 된 전시관이 몇 개나 있는지를, 또 내가 믿고 함께하고픈 화랑이 몇 개나 되는지를, 그런대도 공모전, 단체전, 그룹전, 동문전, 기획전, 개인전이다 무슨무슨 전시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정말 많은 수의 작가들이 넘쳐나고... 미술품 거래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미술시장이 고사한 전북미술, 이는 도민 인구 189만에 1인당 소득수준 8천불을 감안할 때 기형적인 현상으로 인구 4천 8백만. 국민소득 1만 5천불시대 우리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그런데 더 놀랄 일은 전시가 만들어 지는 구조와 작가들의 활동반경이다. 검증되지 않은 동네 작가가 너무 많고 그림의 경향 또한 일률적이다. 적어도 지! 역미술가란 그 지역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 그림의 조건과 미술적 태도를 고민하고 세계를 바라보고 건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통해 지역을 발전시켜 나가려는 윤리적 의식을 요구한다. 미술의 시대적 사회요구가 작품에서 실현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미술가가 사회적 역선을 꿴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인식의 폭과 깊이를 요구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 둘씩 그러한 자생적 노력들이 이 지역에서 우리 주변에서 움트고 있음이 감지된다. 그러한 노력들이 우리의 미래를 건강하게 일구어 내리란 기대가 있다. 더 독려하고 싶고 동참하고 싶다. 그렇기에 작가로서 나도 이러한 시점에서 창작의 첫 자세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오직 좋은 작품하나 잘 만들어 볼 요량으로 모든 것을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고 백남준 선생 같은 훌륭한 예술가는 못되겠지만 지역미술을 풍요롭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크다. --------------------------------------------------------------------------------------------- 조병철 | 62년 김제 생이다. 91년 대학 졸업 후 전주에 정착, 6회의 개인전과 70여회의 전시회에 참여하였다. 2004년 풍남동에 거주하며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