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문윤걸 문화저널 편집위원 2006년의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하는 전주시립교향악단의 ‘2006, 신춘음학회’가 2월 1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있었다. 이번 신춘음악회에서는 생명의 숨결로 가득찬 봄의 활기를 불러 오려는 듯 4곡의 왈츠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4성부의 협연자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였다. 선택된 레파토리들은 음악팬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음악들이어서 부담없이 음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친절함이 엿보였다. 2월 중순, 절기로는 봄이 코 앞에 다가왔지만 여전히 날씨는 쌀쌀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많은 관객들이 연지홀을 메웠다. 전체 좌석의 70% 정도를 메운 관객들 중에는 어린이들이 많이 눈에 띄어 조금 걱정도 되었다. 요즘 어린이들이 어디 보통 아이들인가.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의 구분 없이 저하고 싶은 일이라면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아이들을 하도 많이 본지라 혹 연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으나 어린이들 때문에 연주에 방해가 되는 일은 없었다. 아마도 연주곡 자체가 심각한 곡이 아닌 낯익은 곡이기도 하고, 또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음악회에 친구처럼 앉아 연주자들을 만나고 음악을 감상하며 연주에 대해 얘기도 나누는 가족들이 매우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이번 연주회는 작년 4월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김용운 선생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용운 선생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말까지 매우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지휘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만큼 인정받는 분이다. 연주역량은 물론 풍부한 경험과 연륜은 가진 분인 만큼 오랫동안 지휘자의 공백으로 다소 주춤해진 전주시립교향악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시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연주회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연주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로 시작하여 4편의 왈츠와 성악가 4명의 개별 연주 및 사중창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4편의 왈츠는 춤곡으로서의 흥겨움 보다는 지나치게 감상용으로 연주되면서 왈츠가 갖는 특유의 탄성이 느껴지질 않았다. 물론 ‘봄의 소리’나 ‘박쥐’, ‘집시남작’ 등 오페라 서곡 등이 춤을 추기 위해 작곡된 음악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음악적 성격으로 볼 때 매우 밝고 유쾌한 음악들로 다가와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 왈츠를 보다 율동감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작은 북과 같은 리듬악기들이 자주 활용되었는데 리듬악기들의 템포와 선율을 이끄는 현악기들의 템포사이에 불일치가 가끔 일어나는 바람에 듣는 이의 마음이 편안하질 못했다는 점도 아쉽다. 전체적으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나 레파토리의 구성의도 만큼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4편의 왈츠 외에도 4명의 성악가들을 연주회에 초대하여 각기 다른 인간의 소리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4명의 성악가들은 목소리만 다른 것이 아니라 연주 스타일이나 발성법도 확연히 달라 매우 흥미로웠다. 성악가 중 첫 연주는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바리톤 강기우였다. 그는 매우 밝고 안정된 비브라토를 가진 좋은 소리로 연주해 주었다. 그의 연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 때문에 홍난파의 ‘봄처녀’에서는 매우 매력적이었으나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에서는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투우사의 소리로는 어울리지 않았고, 특히 그의 고음에서 호흡과 발성이 흔들리면서 오케스트라를 압도하질 못해 역동적이고 남성미가 넘치는 투우사를 그려내지는 못했다. 두 번째 성악 연주는 메조 소프라노 이아경의 연주였다. 좋은 메조 소프라노가 귀한 우리 현실에서 이아경의 연주를 듣는 것은 이번 연주회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안정된 호흡과 발성에서 나오는 풍부한 음 빛깔에 진지한 음악적 자세까지 그녀의 연주는 이번 연주회에서 가장 빛나는 연주였다. 그녀는 매우 낭만적인 노래 두 곡(‘님이 오시는지’,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을 연주해 주었는데 감정이입이 조금 지나치다 싶은 면도 있었지만 관객과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풍부한 성량과 안정된 피아니시모 등은 그녀의 수많은 수상경력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할 만 하였다. 세 번째 성악 연주는 초청된 연주자 중 유일하게 이탈리아가 아닌 러시아에서 공부한 테너 손성래였다. 그는 매우 밝은 음빛깔을 가진 미성의 테너였는데 그의 발성은 매우 독특하였다. 러시아 민요를 개사하여 ‘나의 사랑하는 전주’라는 곡과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이루고’라는 두 곡을 연주하였는데 두 곡 모두 좋은 연주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투란도트 아리아의 하이라이트인 ‘빈체로’ 부분의 경우 사자후처럼 토해내야 함에도 이를 해결하지 못해 매우 불만스러운 연주였다. 또 그는 마지막에 연주한 성악가들의 4중창에서도 박자를 놓쳐서 다른 성악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등 실수가 많았다. 네 번째 성악 연주는 소프라노 유미숙의 연주였는데 아름다운 목소리와 적절한 표현, 그리고 깔끔한 연주로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특히 그녀는 노래를 확실히 지배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를 보여 주었으며, 모범적인 발성과 표현 등 성악교본과 같은 연주로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만 하였다. 이번 연주회를 보면서 연주와 관계없는 다른 생각 몇 가지를 해보았다. 우선 전주의 관객들은 박수에 매우 인색하다는 점이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관객들은 지나치게 박수를 아꼈다. 물론 박수를 강제적으로 치라고 할 수는 없으나 연주회에서 관객은 음악을 듣기만 하거나 평가를 내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왕 연주회에 갔으면 좋은 연주를 듣기 위해서 관객들도 노력해야 한다. 관객은 박수를 통해서 연주자를 격려하고 신명나게 함으로써 좋은 연주를 이끌어낼 수 있다. 굳이 평가가 필요하다면 연주회가 모두 끝난 후 하면 된다. 좋은 연주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아낀다면 연주자는 크게 실망할 것이며 크게 긴장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는 우리가 좋은 연주로 보답받을 수 없다. 그래서 박수를 아끼면 그만큼 관객이 손해다. 또 이번 연주회에서 러시아 민요와 아탈리아 민요(O Sole Mio)의 가사를 개사하여 ‘뜬금없이’ 전주를 찬미하는 노랫말이 등장하였다. 음악회에서의 이런 립서비스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것이 초청자의 아이디어였건, 연주자 스스로가 내놓은 아이디어였건 이런 식의 전주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말 전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전주에서 만들어진 노래를 하거나 아니면 전주의 신예 음악인들을 발굴하여 자주 초청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제 이번 신춘음악회를 시작으로 전주시립교향악단의 본격적인 2006년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이미 3월 23일 창단30주년 기념공연이 잡혀있는 만큼 많은 음악팬들의 격려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