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의 전통문화와 축제 글 | 양진성 임실 필봉농악보존회 회장 임실은 삼한(三韓)시대에는 청웅현(靑雄縣)이라 하였고, 삼국시대 때 임실현(任實縣)으로 개칭되어 고려, 조선 조에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속한 행정구역은 변화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임실이라는 이름을 고수해 온 고적(古蹟)의 지역이다. 비단 독보적인 산수(山水)의 미(美)를 간직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고찰(古刹)과 서원(書院)의 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불교와 유교의 문화적 요지의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임실군의 명승지로 꼽히는 곳은 관촌면에 위치한 사선대(四仙臺)로 진안군에서 발원(發源)한 오원천(烏院川)이 흐르고 주변에 울창한 송림(松林)과 잡목이 들어차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사계절에 맞는 볼거리와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사선대의 유래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전 마이산(馬耳山)의 두 신선과 운수산(임실면)의 두 신선이 이곳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여 대에 오르기도 하고 혹은 바위 위를 거닐기도 하면서 맑은 물에 목욕하고 즐기니, 까마귀 떼가 날아와 함께 어울리고 있을 적에 홀연히 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네 사람의 학발신선(鶴髮神仙)들을 호위하여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로 해마다 이맘때면 그들 선남선녀들이 놀았다하여 이곳을 사선대(四仙臺)라 했다는 이야기다. 임실의 지역축제로 전국적 유명세를 얻고 있는 것들로는 소충·사선문화제와 임실필봉농악의 정월대보름굿, 오수 의견문화제를 손꼽을 수 있다. 임실군민의 날을 필두로 3-5일간 진행되는 소충·사선문화제는 사선녀(四仙女) 선발대회, 전국 궁도대회, 전국 농악경연대회, 노래자랑, 체육대회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어 지역민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전국적인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 11-마호필봉농악보존회의 주관아래 매년 2월에 개최되는 필봉농악 정월대보름굿은 축제 및 발표회 형식으로 기획되어 전국적으로 관람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 정월대보름굿은 애초 세시풍속의 한 의례로 마을에서 자족적으로 즐기던 굿판이었는데 1970년대의 문화적 암흑기의 이른바 새마을운동이라는 기치아래 사장(死藏)되어 가고 있었다. 이를 필봉농악의 기능보유자이자 상쇠였던 고(故) 양순용이 1980년에 마을 주민과 농악대의 힘을 모아 관련 학계 인사들과 외지인, 지역민들을 초청하여 발표회 형식으로 마련한 자리로 잊혀져가고 있는 마을굿을 세상에 소개하면서 다시금 출발한 것이다. 이후 여러 사정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87년을 기점으로 부활되어 24회를 치름으로 해서 지역의 대표적 세시행사이자 전국적 인지도가 높은 행사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의 꾸준한 매니아 관람객이 참여하고 있어 지속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축제이다. 임실 지역은 상업이 크게 발달한 지역이 아니며, 군민의 대부분이 농경에 의탁하여 생계를 꾸리고 있다. 따라서 상업예술이 발달하기 보다는 민속과 유기체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민속예술 장르가 그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실의 전통문화 중에 가장 대표적인 예술문화는 중요무형문화재 11-마호로 지정받은 임실필봉농악과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수차례 수상 경력이 있는 삼계면 두월리의 상여소리와 들노래가 있다. 특히 삼계면의 고전 상여소리는 3백여년 전부터 전해왔던 이 지역의 상례풍속과 함께 원형 그대로 보존, 전승되어 오고 있다. 마을굿의 원형을 보고 싶다면 필봉농악을 보라는 권유를 받을 만큼 현재 시점에서 가장 잘 보존,전승된 마을굿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11-마호 임실 필봉농악이다. 필봉농악을 태동한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는 농업을 중심으로 한 중 산간지대에 위치한 곳으로 필봉(筆峯)이란 이름은 마을의 주산(主山)이 붓끝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유래된 것이다. 필봉의 주된 생업은 농업이지만 이 외에도 잠농(蠶農)과 길쌈을 나서 베를 짜고 옷감을 만드는 것이 주민들의 수확을 올리는데 매우 중요한 역을 지는 노동이다. 현재는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60세를 훌쩍 넘은 백발의 벗들로 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자식들의 이야기와 여러 정담으로 세월을 나고 있어 혈기가 느껴지기 보다는 깊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여느 시골 마을과 다름없다. 그러나 이곳은 언제든지 필봉산의 높이만큼 타오를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의 불씨인 풍물굿을 내재하고 있다. 필봉농악은 이 마을이 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그 맥 역시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그것이 외지로 걸궁굿을 치러 갈만큼 수준 높은 풍물굿의 모습을 갖춘 것은 115년 전 유명한 걸궁굿 상쇠로 이름을 날리던 박학삼을 마을의 굿선생으로 초청한 이래이며, 이후 양순용 상쇠에 이르러 굿판의 절차와 가락이 모두 정리되고 단절된 마을굿의 형태가 완전히 복원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허튼가락과 부들 상모의 명인이기도 한 양순용 상쇠는 풍물굿의 전승과 보급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으며 풍물굿이 안착하기까지의 거칠기만 했던 문화적 환경을 개척하여 오늘과 같은 필봉농악 전승체계를 공고히 일구어내었다. 필봉농악은 1988년 중요 무형문화재 제11-마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활발한 공연활동과 전승 교육을 펼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7만여명의 전수생을 배출해 내었다. 현재까지의 필봉농악의 전승계보는 상쇠 중심으로 전판이 - 이화춘 - 박학삼 - 송주호 - 양순용 - 양진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봉농악의 특징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허드잽이(잡색)가 많이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이 굿을 치는 치배와 관중의 가교역할을 담당하여 판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신명을 돋운다는 점과, 채굿, 영산굿, 도둑잽이굿, 수박치기, 싸잽이굿 등의 가락과 굿판 절차에서 독특하면서도 마을굿이 가지는 의식성, 놀이성, 개방성을 동시에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필봉농악은 무형문화재 전수관이 건립되어 200명 이상이 숙식할 수 있는 시설과 교육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주변 자연환경도 뛰어나다. 또한 필봉농악보존회에서는 현재 연중 행사로 기획되어 있는 2월의 정월대보름굿과 8월에 열리는 풍물굿 축제 외에도 일상적인 문화체험이 가능한 다양한 상설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의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양진성 | 필봉농악보존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농악부문 장원을 차지하는 등 수많은 대회에서 수상했다. 현재는 원광대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