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 |
[특집]대안학교 -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
관리자(2006-03-08 20:39:44)
글 | 최정학 기자
실상사 작은학교는 지난 2001년 문을 연 중학교과정의 비인가 대안학교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불교계 대안학교이기도 하다.
작은학교는 남원의 산내면 선돌마을 실상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을 비롯해, 높은 봉우리들이 아늑하게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그곳에서 10여 명의 교사들과 43명의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학교는 콘테이너 박스 몇 동이 전부일 만큼 단촐했지만, 곳곳에서 아이들의 활력이 느껴졌다. 건물 벽면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 낙서가 가득했다. 곳곳에 쓰여져 있는 아이들의 이름과 ‘즐~’ 같은 최신유행의 인터넷 용어는 이곳 아이들이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은 불교의 세계관인 ‘연기’가 교육의 기본이념이에요. 세상에 나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죠. 아이들이 일반적인 지식의 습득보다는 ‘삶’이나 ‘행복’, ‘사회구조’ 등에 관심 갖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하도록 교육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면서 기획팀장 및 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강은화 씨의 설명이었다.
학교의 교과과정과 생활도 모두 학교의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모아진다. 교과과정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철학 등 일반학교에서 다루고 있는 중등 지식 공부인 일반공부와 체험공부, 주제공부로 나뉘어 진다. 체험공부는 작은학교가 지향하는 공존과 생태, 자립의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체험위주의 교육시간이고, 주제공부는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관심분야를 발견하고 사물과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하는 공부이다. 학생들은 오전 시간에 일반공부를 하고 나면, 오후시간에는 학년에 상관없이 개성과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관심분야를 선택해 듣게 된다.
하지만, 작은학교가 교육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치살림’과 ‘야단법석’이다. 자치살림은 자립적이고 생태적인 생활을 꾸려나가는 활동을 말한다. 학생들은 1주일에 90분 이상씩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텃밭 가꾸기를 중심으로 효소 만들기, 곶감 깍기, 문 바르기, 정돈하기, 운동장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한다. 스스로 먹거리를 생산하고,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일의 가치를 알고 지속가능한 삶을 건강하게 가꾸어나가는 연습을 한다.
‘야단법석’은 교사와 학생이 한달에 한번씩 모여 작은학교 식구로서 화합을 다지는 자리다. 이 시간을 통해 학교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문제를 대화와 토론으로 해결해 나가기도 하고, 관심사에 대한 논의나 건강한 학교 문화에 대한 논의를 하기도 한다. 이 때에는 교사도 학생도 없다. 그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토론하고, 정해야 할 것이 있으면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
“삶의 결을 바꾸는 교육을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모두 고민하고 정했어요. 문을 연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시행착오의 연속이죠. 그리고 이런 시행착오와 혼란은 결코 앞으로도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죠. 우리는 1주일에 1번씩 야단법석 시간을 통해 교사도 한 표, 학생도 한 표를 가진 표결권자의 자격으로 논의를 많이 해요.”
강은화 씨는 교사와 학생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 가는 것이 결국 대안학교의 특성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작은학교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작은가정’이다. 작은학교을 다니는 43명의 학생 대부분은 ‘작은가정’에서 생활한다. ‘작은가정’은 마을의 빈집을 얻어 교사 1명과 학생 5명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일컫는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당번을 정해가며 밥을 해 먹고, 잠을 잔다. ‘삶의 결’을 바꾸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니 만큼, 휴대폰이나 MP3 등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고 ‘작은가정’에는 텔레비전도 없다.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대부분이니 만큼, ‘중독성’ 있는 것들로부터 생활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요즘은 ‘인터넷’ 사용만큼은 허용해주고 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교육을 실현시키고 있는 작은학교에도 고민거리는 많다. 그중, 하나가 작은학교가 ‘비인가’학교라는 점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제도권’ 교육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주체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 ‘제도권’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하지 않아도 될 부담과 고민을 떠안아야 되기도 한다.
“일반학교가 입시라는 목표점을 위해 많은 부분을 인내하지만, 이곳은 그 목표가 없기 때문에 훨씬 다양한 학생들의 개성이 표출됩니다. 학교에 들어오면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부터 시작하게 되죠. 하지만, 2학년 말쯤 되면, 검정고시에 대한 부담을 안게 됩니다. 학교에서도 검정고시에 맞춰 수업을 맞출 수도 없고, 고민이 많죠. 그래서 아예 고등학교까지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보다 자유롭게 큰 틀의 교육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올해, 2월 달까지 작은학교는 세 번째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졸업생들은 검정고시를 보고 일반학교로 가는 학생들과 또 다시 대안 고등학교로 가는 학생, 그리고 아예 진학 자체를 하지 않는 학생들로 나누어진다. 회를 거듭할수록, 진학을 하지 않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가고 있고,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더라도 1~2년 다니다가 제도권 교육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한다.
학생들에게는 이곳 작은학교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온갖 선택의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작은학교를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