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3 |
[특집]대안학교 - 3년이 지난 오늘, 새날이 자퇴를 하다
관리자(2006-03-08 20:37:37)
글 | 전희식 귀농인
3년 전에 이곳에 썼던 글을 찾아 읽다보니 문득 이 말이 떠오릅니다. 이현주목사님이 엊그제 2월 17일 <전북생명평화설레임>이라는 단체에서 연 <생명평화학교>에 와서 강연하시면서 한 말입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오직 평화뿐이다. 내가 평화롭게 말하고, 평화롭게 행동하고, 평화롭게 생각 하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대안의 삶, 대안의 교육도 그렇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대안교육에 특별한 길이 있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대안적으로 살면 되겠다는 것입니다.
두 아이를 다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하게 되는 갈등과 번민은 훗날의 행복과 지금의 만족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아무리 촘촘히 예측하고 설계해 본들 지금 이 순간을 억누르고 포기하기에는 껄쩍지근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다보면 미래가 불안해집니다.
며칠 전. 2월 10일에 딸 새날이랑 학교에 가서 정식으로 자퇴를 하고 왔습니다. 관심거리는 그 학교가 대안학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제게 ‘대안학교’의 범주에 ‘가정학교’가 실감나게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가정학교에 신입생이 들어오다 보니 이제 제가 교장노릇, 학부모노릇에 교사 노릇까지 다 해야 할 처지가 됐습니다. 이 말은 농담 삼아 하는 말이고 사실은 한 아이의 교육과 성장에 교장과 교사가 누구로 정해 질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배울 마음과 자세만 되어 있다면 온 세상이 다 선생이고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딸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학교 분위기도 그랬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다 소중한 교재로 삼고 풀어가는 학교였습니다. 충청도 홍성에 있는 학교인데 전통도 오래되고 경쟁률마저 높은 학교여서 그 학교 가려는 학생들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겠다면서 조목조목 드는 이유들 또한 수긍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공동체가 정한 생활과 질서는 아무리 공동선을 담아냈더라도 개인에게 억압과 부조화로 다가 옵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분명하고 자신감이 클수록 고통이 되나봅니다. 우리 아이는 그것을 호소한 것입니다. 부모로서 판단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 뜻이 접히고 끝내 딸아이의 바람대로 된 것은 딸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1년 내내 자퇴 갈등을 하면서도 자기의 일상에 충실했고 생각이 깊어지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딸아이의 자퇴는 그 학교가 최상의 교육을 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시골 우리 집까지 찾아오셨던 교장선생님도 새날이의 앞날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걱정도 있지만 새날이 앞에 펼쳐질 삶의 과제들과 인연들에 가슴이 설레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이현주 목사님의 강연이 끝나고 원불교의 어느 노 교무님이 우리 새날이를 보더니 팔을 붙들고는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아이를 당신에게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아이 첨 본다면서 당신이 가르치고 키워서 성직자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자퇴한 사실은커녕 저도 첨 만나는 분이 그러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세상 인연이.
이제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스스로 공부하며 살아가겠다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 마음이 편치만은 않습니다. 대학을 간다 안 간다 정하지는 안했지만 가정학교(홈스쿨링)를 하면 진학은 어떻게 되는지 좀 막막하고, 집에만 데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여기저기 공부와 생활이 하나로 될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새날이는 올 한 해 서너 가지를 집중적으로 해 보겠다고 합니다. 근 현대사 공부를 깊이 해 보고 싶다고 합니다. 강준만교수의 ‘한국현대사산책’을 텍스트로 삼겠다고 이미 정했네요. 그림그리기와 소설 쓰는 일도 있습니다. 이번 3월 17일부터 시작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전북 순례 4개월을 꼬박 참여 하겠다고도합니다.
전라북도 전역을 걸어 보겠다는 것입니다.
봄이 활짝 펼쳐지는 산과 들을 두 발로 걸으면서 철이 오가는 것을 보고 친구도 만나고 큰 스승들도 모시게 되리라 봅니다. 봄볕에 탄 얼굴과 튼튼해 진 몸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나이 어린 여자애가 겪을 일에 걱정도 됩니다.
작년, 한 달이나 두 달 만에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새날이는 꿈이 달라졌습니다. 한번은 유기농업인협회장이신 정상묵선생의 특강을 들었다면서 자기도 농사를 짓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자식이 부모처럼 살겠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또 바뀌더란 말입니다. 한울노동연구소 하종강 선생의 특강을 듣고는 노동자로 살겠다더니, 박재동 화백을 만나고는 자기도 평생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습니다. 실상사 작은학교 다닐 때는 담임선생 덕분에 수학자가 되겠다고 했었습니다.
전북지역을 탁발순례 하고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합니다.
요즘 두 달여 집에서 아이랑 지내다보니 좋기는 합니다. 며칠 전에는 땔감을 하러 뒷산에 같이 갔는데 지게질을 가르쳤더니 제법 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게질이 몸의 균형을 잡고 힘을 기르는 데는 아주 그만입니다. 뒤뚱거리며 통나무를 지고 비탈길을 내려와야 하는데 신경을 발바닥과 등허리에 집중하고 산비탈의 경사나 지게의 무게중심까지 가늠해야 합니다.
올해 중졸 검정고시를 치러야 하는 남자동생을 새날이가 가르치고 있는데 아주 잘 가르칩니다. 문제파악이나 설명이 감탄스럽습니다. 1과 순환마디가 9인 순환소수 0.9가 어떻게 하여 등호가 성립하는지를 설명해 낼 때는 저도 혀를 내둘렀습니다. 동생 새들이도 누나처럼 중학교를 대안학교에 다니므로 검정고시를 봅니다. 새날이는 당시 전북도에서 제일 시험성적이 좋다며 교육청에서 전화가 오고 신문사에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1학년 전체 수석이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열심히 하는 것도 있지만 공부에 대해서나 생활에 있어서 자기 동기가 명확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 아이들이 대개 그렇게 커 갑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돈 있는 사람이나 대안학교 보내지 아무나 대안학교 가냐면서 은근히 비꼬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 문제에 저는 아주 단호합니다. 세상 욕을 하면서도 주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기존교육과, 대안적 삶을 꾸리고 이를 이웃과 공유하고자 하는 대안의 교육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돈도 따져 봤더니 오히려 거꾸로 입니다. 인천에 사는 친구 아이가 새날이와 동갑인데 두 과목 과외비 40만원에 학원비 10만원, 하루에 용돈을 두 끼 밥값이랑 2만원 내지 3만원 주는데 등록금까지 월 100만원 든다고 합니다. 새날이는 기숙사생활비와 등록금 그리고 용돈과 동아리활동비 다 하여 한 달에 40만원이 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습니다.
돈으로는 비할 바 없는 귀한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집 밖에 있어도 부모가 마음을 턱 놔도 되는 안전함입니다. 선생님과 다른 학부모들과 아이에 대한 믿음입니다. 새날이가 자퇴를 하는데도 그 학교 졸업식에 제가 가게 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학부모는 영원한 학부모라며 학부모 모임에 계속 나오라고들 합니다.
아는 사람들이 저에게 딸이 올해 몇 학년이냐고 물으면 저는 열여덟이라고 대답합니다. 가정학교에는 학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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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 |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서울과 인천에서 터를 닦고 살다, 10여년 전 완주군 소양으로 귀농했다. 정농회외 귀농학교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주라인’이라는 인터넷 회사를 설립하는 등 정보의 인간화와 민주화에도 관심이 높다.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 사이버 단장’을 맡고 있으며, 인터넷 웹진 오마이뉴스에 ‘전희식의 귀농일기’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