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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 |
올해도 풍년이겠네-고창 문굿과 줄역사
관리자(2006-03-08 20:08:22)

정월 대보름이었던 지난 2월 12일, 70여 호에 200여 명이 살고 있는 고창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엔 이른 아침부터 외지에서 온 자동차들이 속속 동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 장만을 하느라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이곳저곳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말 그대로, 흥겨운 마을 잔치 분위기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고창농악보존회가 선산마을과 함께 ‘문굿과 줄역사’를 선보였다. ‘문굿’은 굿패가 마을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의 굿, 굿을 잘 쳐야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전문패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30여 년간 사라졌던 것을 지난 1996년 대산면 성남마을에서 처음으로 재연해냈다. 올해에는 300여 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선산마을의 줄역사와 함께 해 볼거리를 더했다. 마을사람들과 외지인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줄다리기와 오방놀이를 하고 당산할아버지께 입힐 줄을 빚기 시작한다. 선산마을 입구에 있는 할머니 당산과 할아버지 당산은 마을의 가장 큰 수호신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의 당산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병술년 상달허고 정월이라 대보름~ 받어라 받어 어기연방 받어라 받어 동녘 하늘 해가 솟아 성인봉에 비췄구나~ 받어라 받어 어기연방 받어라 받어 남녀노소 모두 나서 줄역사에 참여하세~ 받어라 받어 어기연방 받어라 받어 주거니 받거니, 줄을 비비며 하는 ‘줄빚는 소리’가 흥겹다. 줄빚기가 끝나자 본격적인 고창농악보존회의 문굿이 시작되었다. 굿패가 무동을 앞세우고 마을 어귀를 돌아오자 마을은 벌써 술렁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선산마을 입구에 도착한 굿패는 이제 영기와 금줄로 만든 ‘문’을 사이에 두고 마을 사람들과 조우했다. 문을 사이에 두고 굿패가 먼저 나발을 분다. 문굿을 치러 왔다는 신호다. 마을에서도 나발을 불어 ‘알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어, 문굿을 칠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과 이제 시작하겠다는 나발이 오고가자, 본격적인 문굿판이 시작된다. 상쇠와 대포수의 한바탕 힘겨루기, 개인놀이, 지와받이, 콩등지기, 투전치기, 밀치기, 강강술래 등이 순서대로 펼쳐진다. 구경꾼들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들썩인다. 이쯤이면 문이 열리는 것은 당연지사. 문 양옆에 세워져 있던 영기가 뽑히자 굿패의 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기념이라도 하듯 한마당 멋지게 굿을 쳤다. 문굿이 끝나고 마을주민들과 구경꾼들은 자리를 옮겨 오전에 빚어놓은 줄로 ‘줄다리기’를 했다. 남자와 여자가 편을 나눴다. 서로 자기편에 한명이라도 더 끌어 들이려는 정겨운 실랑이가 한참, 드디어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두꺼운 새끼줄이 순식간에 팽팽하게 긴장했지만, 결과는 싱겁게도 금방 나버리고 말았다. 여자 팀, 승! “여자 팀이 이겼으니, 올해 농사는 풍년이겠네~” 여기저기서 승리를 축하 겸 풍년을 기원하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애초부터 승패가 결정되어 있던 줄다리기였다. 승자도 패자도 기분이 좋다. 줄다리기가 끝나자 또 다시 흥겨운 굿판이 벌이면서 오방을 돌았다. 이번에는 고창농악보존회와 마을 굿패가 함께했다. 마을 사람들도 길게 줄을 메고, 굿패를 뒤쫓았다. 오방을 돌다가 할아버지 당산나무에 줄을 감고 보니, 어느새 동녘 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마을회관 앞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본격적인 판굿이 벌어졌다. 마을 어른들은 연신 막걸리 잔을 돌리고, 모닥불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구경꾼들의 얼굴은 붉어져 있다. 마을 꼬마들에게도 이날만큼은 어두운 저녁까지 마음껏 놀 수 있는 날. 빙글빙글 돌아가는 쥐불에, 올해 선산마을엔 보름달이 많이도 떴다. 틀림없이 풍년이다. | 최정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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