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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 |
구수하고 개운한 곰탕 맛
관리자(2006-03-08 18:10:09)

곰탕은 곰국과 같은 말이다. 한자 기록에선 육탕(肉湯)이라 했다. 사물의 갈래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곰국과 곰탕을 다르다고도 말한다. 장거리의 음식점에서 곰국에 밥을 말아서 낸 것을 곰탕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거리 음식점에서 국 따로 밥 따로 낸 곰국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곰국이나 곰탕을 같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곰’이란 말 자체가 ‘고기나 생선을 푹 삶아 끊인 국’을 일컫는 명사다. 곰탕의 유래를 ‘공탕’(空湯)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끊인 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와 쇠고기만을 넣고 끊인 국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곰국이나 곰탕의 곰은 ‘고다’의 동사에서 이루어진 말로 보아 좋을 것 같다. 《시의전서(是議全書)》(19세기 말)에는 곰국을 ‘고음(膏飮)국’이라 하였고, ‘다리뼈·사태·도가니·홀때기·꼬리·양·곤자소니·전복·해삼을 넣고 끓인다’는 설명이다. 해물까지 넣어 고아낸 ‘고음국’이라니 이는 일반 서민식과는 다른 특별식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직접 즐겨본 곰탕으로는 30여 년 전 「한일관」(주인 朴康任)의 것을 으뜸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아침 콩나물국밥으로도 유명하였지만, 점심·저녁의 복탕·곰탕으로도 이름난 식당이었다. 소의 머리·꼬리부분 고기 뿐 아니라 양·곱창 등을 푹 끓인 국물에 특히 토막친 대파까지도 흐늘대게 익혀져 나온 걸쭉한 곰탕이었다. 저녁이면 끼리로 뿐 아니라 술안주로도 그만이었다. 채성병(蔡成秉) 시인은 <곰국>에서, - 마누란 몸살이 났다고 곰국을 끓여 주지만/ 곰국, 은 반역인가   계란을 풀고 후추가루를 쳐도/ 입맛이 돌지 않는다/ 파 마늘 이겨 넣어도   눈두덩이 무겁게 짓누르는/ 가위눌림 속에/ 곰국, 은 반역인가 - 라 하여 몸살감기에 곰국으로도 입맛을 챙기지 못하고 있음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한일관」의 저 곰탕 한 뚝배기면 나의 젊었을 때의 감기도 몸살도 거뜬히 물리쳐 주곤 하였다. 「한일관」의 저때 곰탕과는 다른 맛이어도, 최근에 곰탕 맛을 새로 챙기게 되었다. 박남재 화백에게 이끌려 간 「전통 장작불 곰탕」(완주군 소양면 명덕리, 전화 063-247-7004, 대표 김용선)으로 하여서다. 꽃샘철 약간 싸늘한 날씨였다. 식당은 소양천의 한 갈래인가, 냇가에 외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울타리 없이 차지한 터도 꽤 넓은 편이었다. 큰 가마솥이 걸린 건물이 따로 있고, 그 건물의 옆에는 땔감을 쌓아놓은 헛간도 딸려 있다. 가마솥 아궁이 앞에서 한 여인이 불을 지피고 있었다. 땔감은 소나무 장작이 아니다. 새로운 건축으로 하여 밀려난 옛 건물의 기둥이나 널빤지·마룻장 같은 것들이었다. 아궁이의 불길 앞에서 잠시 싸늘함을 눅이자니 어린시절 고향의 부엌정경이 어려들기도 한다. ‘전통 장작불 곰탕’을 간판으로 내어 건 까닭을 알 만하다. 방에 들어 상 앞에 자리하자, 소금·후추가루 그릇이 놓여 있다. 식단의 무릎도가니탕·버섯차돌곰탕·전통곰탕의 3종 중 전통곰탕(값 6천원)을 택하였다. 이윽고 김치·깍두기가 담겨진 두 단지가 놓이고 전통곰탕의 뚝배기가 나왔다. 곰탕은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김치·깍두기는 단지에서 먹을 만큼 꺼내어 먹도록 되어 있다. 너절하지 않는 상차림부터가 마음에 든다. 초장접시가 따로 나와 있으나, 나의 구미엔 곰탕의 국물도 건더기도 소금 간만으로 맞아떨어진 맛이었다. 구수하고도 개운한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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