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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 |
“세계화가 두려운 사람들이여, 단결하라 - 아수라백작에 마주서다.”
관리자(2006-02-01 17:31:38)

『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엘 피스곤, 2005, 부광출판사) 글 | 이지연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부담 때문에 슬그머니 거절하려던 차에 만화책이라는 말에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늘 해치워야 할 일로서가 아니면 좀처럼 책을 집어 들기 힘든 게으른 나의 새해 첫 독서는 그렇게 한권의 만화 읽기로 시작됐다. 생각보다 부드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스토리가 가볍지 않은 탓이다. 그러고 보니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라는 부제가 제법 묵직하다. 이 책은 ‘알려주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왜 가난하게 살아가게 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미국은 옛 식민 강대국들 그리고 IMF와 WTO같은 국제기구와 긴밀히 협조하여 제3세계를 위한 경제정책을 만들었고 그것은 정글의 법칙을 원칙으로 하는 경제 자유주의의 부활이었다고 말한다. 특히 70년대 이후 불어닥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에 강요하기 시작한 이 신자유주의 체제로 라틴아메리카는 자국의 경제운영에 대한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 채 거대한 쇼크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거대 기업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경제 상황에서 시장이 자유화되면 이 거대기업들은 지금까지 보호되어 왔던 모든 것들(소규모 국가경제)을 집어삼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철저히 숨겨진 채 말이다. 이는 마치 산업화된 부국들이 세계 곳곳에 자본주의를 강요함으로써 지역경제를 파괴하고 근대 식민제국이 되었던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태에 불과하”며 그것은 세계화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차로 마초로. 그는 열렬한 자유시장 옹호자이지만 되는 일 하나 없는 거리의 떠돌이며 세계최대의 실패자이다. 제2의 빌게이츠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작정 소노라 사막을 건너다가 컨설턴트를 만나 상상을 초월하는 자유시장의 생리를 듣게 된다. 마초로가 건너던 이 소노라 사막은 미국 애리조나와 맞닿아 있는 접경지대로, 해마다 맨발로 걸어서 국경을 넘어 가려다 숨지는 이민자들의 시신이 연간 수백 명씩 발견되는 불법입국과 마약 밀거래의 주요 통로이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래 형성된 거대한 제 블럭으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간 무역장벽이 대부분 제거되었지만 상품의 국경통과만이 자유롭게 되었을 뿐 노동자들과 심지어 관광객들조차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은 마초로가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해 사막을 통과해야 했듯 여전히 심각한 제한을 받는다. 국경을 쉽게 넘나드는 건 돈이지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서 브로커에게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며, 심지어 사막에서 목숨을 걸기까지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두 얼굴을 가진 세계화이다. “사람들은 세계화가 지구를 축소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어도 부자들에게는 그 말이 해당될지 모르지만, 노동자들에게 축소된 것은 미래에 대한 전망”뿐이다. 초국적 기업들은 노동력이 가장 싼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고, 전 세계 임금을 낮추고 노동운동의 성과를 없애면서 계속해서 경제를 재조직한다. 상품과 자본은 세계를 빠르게 오가지만 노동자는 죽으나 사나 본국에서 분투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 이 거대한 초국적 기업들의 영향력은 국가들보다 더 강력해져서 중간 규모의 경제를 파멸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바야흐로 초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국적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초국적 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은 이미 한 국가의 관심 등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자본 축적을 하는 거대한 기업네트워크이다. 이미 한국의 대표자본이라던 현대나 삼성 등의 주식소유는 50% 이상이 외국자본에 있고, 이는 제일은행 등 금융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초국적 기업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적인 독과점을 형성하여 자신들끼리 협력하는 것이다. 게다가 초국적 기업은 금융시장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생산과 금융이 혼합한 거대한 아수라 백작의 등장이다. 그 앞에 마주선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그러나 초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죽도록 일해도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를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화’란 바로 그 자본주의의 전 세계적 보편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본주의 보편화는 결코 물질적 풍요와 행복이 아닌 불행을 가져다 줄 뿐이다. 빈국과 부국의 불균등, 실업과 빈곤, 환경파괴, 자원고갈, 전쟁 등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심각한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 ‘세계화’의 배후가 미국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 책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 컷짜리 카툰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이 폭력적인 질서에 대해서 통쾌하게도 전달해주고 있다. 사실 만화라는 점 때문에 내용의 깊이는 기대하기 힘들다. 구체적 설명은 때로 과감히 생략되어 있고, 많은 부분 풍자와 은유가 사용되어 있어서 초보자에게 친절한 입문서가 되기에는 2% 부족이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은 그러한 점들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멋진 삽화와 그림들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갈등이 많고, 미국과 대립하는 문제들도 많은 탓에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카툰들은 매우 냉소적인 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미국과 관련된 이슈들을 표현하는 데에는 유난히 노골적이다. 멕시코에서 만화는 문맹률이 높았던 멕시코 국민들에게 언론 기능의 주요 부분을 대신해 주었던 거의 유일한 매체로서 오랫동안 민중투쟁 과정에서 예술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했다. 국내에 소개되는 외국의 카툰들이 미국 작가들에 많이 집중되어 있음을 생각할 때 낯선 멕시코 작가의 이 책은 이러한 멕시코 만화의 직접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를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연초부터 홍콩에서 새해를 맞아야 했던 한국 농민들에게 위로가 될 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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