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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 |
가역적 해학의 유희
관리자(2006-02-01 17:30:48)

『수상한 식모들』 (박진규 지음, 문학동네 펴냄) 글 | 이영철 전주대학교 교수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은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비틀린 의식으로 작용해 온 권력과 부의 모순에 의해 함몰되거나 왜곡된 희생자들의 정체성과 삶의 가치를 신화적으로 복원하고 재구성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6·25동란으로부터 광주대학살 사건에 이르는 현대사의 비극적 폭력과 그에 의해 오염된 사회적 모순을 그의 전복적 또는 저항적 의식을 통해 떠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대사에 접근하는 작가의 문제의식은 정치적이거나 투쟁적이기 보다 비틀린 현대사로 비유되는 문화의 정전적 권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더 분명해진다. 이때 작가의 문제의식은 비록 전복적이고 저항적이지만 비틀린 문제들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논리가 아닌, 가역적(可逆的)으로 작용하는 상호 문맥적 관계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대목임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소설에서 현대사의 비틀린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전복적 또는 저항적 의식은 대한민국의 건국신화를 탈정전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작가의 기발한 착상에 의해 구체화된다. 즉 작가는 이 소설에서 현대사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곰의 성공담 뒤에 묻힌 호랑이의 상실된 정전적 지위를 신화적으로 재생시키는 과정에서 보여준다. 호랑이는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적 파트너에게 요구한 인내와 절제 대신 현실의 적극적인 욕망을 쫓기 위해 변화를 포기한 존재이다. 이에 대하여 정전적 신화는 곰의 성공담에 대조시켜 호랑이를 경박한 현실의 노예 또는 실패자로 폄하하고 있지만, 작가는 비만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않은 자신의 외모와 그로 인한 소외를 호랑의 상실된 정전적 지위와 동일시하고, 호랑이의 화신인 호랑 아낙의 야사를 자신은 물론 현대사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의 신화로 재구성한다. 이때 작가의 태도는 정전적 권위에 의해 실추되거나 억눌린 모습이 아닌, 그것을 오히려 든든한 기반으로 삼아 작가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내는 전복적 또는 저항적 자유의 의지로 투영된다. 이 소설에서 수상한 식모들은 호랑 아낙으로부터 유래된 저항적이고 파괴적인 여성이다. 그들은 조선시대에 기존의 사회에 전복적으로 맞섰던 혁명적 여성들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대사에서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축적된 부를 사회적 권력으로 남용해 온 부르주아의 오만과 허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그것을 파괴하고 짓밟아 버리는 여성들이다. 이때 작가가 그들의 파괴적 행위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 보복이나 이교도적 폭력이 아니다. 다름 아닌, 보복과 폭력은 인류사회에서 되풀이 되는 악순환으로, 작가는 이와 같이 진부한 역사적 패턴을 그의 문제의식 속에 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대신 작가는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 서구의 역사를 광기와 이성의 가역적 관계로 복원시킨 것처럼, 현대사회에 저항하는 수상한 식모들의 파괴적 행위를 기존사회의 정전적 권위에 대한 배타적 저항이 아닌 각자 다른 척도로 서로 인정하지 않지만 존립의 근거로 서로 존재하는 상대적 관계로 보고 있음이 확실하다. 바꾸어 말하면, 작가는 그의 문제의식을 어느 한 극단으로 몰고 가기보다 부정과 긍정을 가역적으로 향유하는 상호 소통적 토대 위에서 발의하는 모습이다. 한편 박진규의 『수상한 식모들』은 부르주아 가정의 허영을 문제 삼고 그 곳의 평화를 파괴하기 위한 음모와 저항, 복수심과 복수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복수의 과정은 특수한 개인적 원한에 따른 처절한 파괴의 과정이라기보다 마법처럼 조작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차라리 희극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즉 수상한 식모들의 복수는 꿈을 갉아 먹는 쥐를 어린아이의 귀속에 집어넣거나 주인집 가장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지만, 그것은 혁명적이거나 악에 바친 전복적 행위가 아니다. 그들의 복수는 진지한 것 같으면서도 장난 끼가 느껴지는 정도의 행위이며, 반면 그 효과 역시 쥐 넣기의 경우 음모와 행위의 원인과 내용이 밝혀짐과 동시에 일정 기간동안 마법이나 체면상태를 유지하다 멈추고, 성적 복수의 경우는 주인집 여자의 강한 방어로 좌절된다. 따라서 이 소설의 복수는 섹스피어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과 달리 희극적이며, 이따금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이 소설에서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지 못하는 것은 사실 수상한 식모들의 복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르주아 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부조리한 자아에 더 무게를 실을 수 있다. 예컨대, 작중 주인공 신경호의 아버지는 사업이 부도나자 하녀게임에 빠져들어 재기불능의 잉여인간으로 전락하고, 식모의 신분으로 주인집 아들을 유혹한 어머니는 결혼 후 겪었던 시부모의 멸시에 대한 복수심과 남편의 부도 이전 누렸던 부르주아적 허영을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이 소설의 가정들이 복수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독자는 가정의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으로서 부르주아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부조리한 자아에 대하여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성(sex)은 규제되지 않는 주체적 행위이다. 예컨대, 비만으로 성적 자신감마저 잃은 신경호가 비만을 이유로 선재와 조작된 합성사진의 주인공들이 되어 급우들의 놀림감이 되자 실질적인 체험을 선택한 것과 선재가 하녀게임의 목소리 주인공에서 하녀의 실질적 체험 속으로 뛰어들어 나이트클럽사장과 성적 유희를 벌인 것은 이 소설에서 성과 성적 주체에 대한 작가의 부담감 없는 성적 의식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이과 관련 작가는 선재뿐만 아니라 신경호가 대학을 졸업하고 자판기 사업을 할 때까지 경험했던 여성들을 통하여 성을 윤리의 공간 속에서 지켜져야 할 보호대상이 아닌 주체간의 독립적인 합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소설은 앞서 밝힌 작가의 여러 독창적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내면을 꿰뚫는 언어가 빈곤하다는 것과 사건과 사건의 인과 관계가 지나치게 도식화되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러나 작가의 미완이지만 탁월한 개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문제들은 앞으로의 작품에서 완성도를 높이는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바라건대 필자의 조심스럽지 못한 이 지적이 작가의 독창성을 훼손하거나 독자의 소설읽기에 무거운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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