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 과학의 뒷골목』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지음, 이충형 옮김, 새물결 펴냄, 2005) 글 | 김진승 교수 이 책은 두 사회학 교수 해리 콜린스(영국 카디프 대학)와 트레버 핀치(미국 코넬 대학)가 함께 쓴 것으로 원제목은 “Golem: What you should know about science (골렘: 과학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이다. “골렘”의 사전적 뜻은 유대인 전설에 나오는 엉성한 인조인간이다. 책의 서문에 있는 설명을 보면 “과학은 사람이 만든 강력한 피조물로서, 사람이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잘못 다루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이 주제는 핵무기 개발 이후로 과학의 윤리적 책임을 따질 때도 나온 것인데, 다시 다룬다면 새삼스러울 것이다. 이 제목으로부터 이미 과학에 대한 저자들의 부정적 견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과학과 기술의 정치적 역할에 대한 공적 이해를 바꾸는 것”(258쪽 마지막 문단)이며, “심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제 과학에서는 실험을 통해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내는 법이 거의 없다”(264쪽 둘째 문단 중간)라고 말함으로써 과학적 결론의 확실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사실 인문사회학은 뉴턴 역학이 정립된 때부터 과학과 기술의 확실성과 위력에 대해 선망과 질시를 하고 있었다. 선망은 자연과학에서는 옳고 그름이 확실히 가려지는 것 때문이고, 질시는 과학 및 기술의 성취와 진보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그 내용을 잘 몰라도 가치를 존중하는 것 때문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저자들이 골라 뽑은 7가지 과학적 논쟁의 사례를 통해 과학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엄밀하게 논리적인 구조 속에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과학자들끼리도 결론에 대해 합의를 못하는 불완전한 논쟁을 통해 이루어진 엉성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여 과학의 사회적 가치와 평가를 낮추려는 시도이다. 저자가 든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기억이란 뇌에서 합성된 화학물질이라는 생각을 입증하려던 실험, 2) 상대성 이론과 관련하여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하려던 마이켈슨-몰리 간섭실험과 개기일식 때 별의 겉보기 위치 변화를 재어 중력에 의해 광선이 휘는 현상을 확인하려던 실험, 3) 팔라듐 전극을 이용한 상온핵융합 연구, 4) 자연발생설을 실험적으로 부정한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5) 중력파 탐지를 시도한 실험, 6) 채찍꼬리도마뱀의 짝짓기에 관한 연구, 7) 태양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수에 관한 실험. 이 실험들은 모두 한때 치열한 논쟁거리가 되었었다. 저자들이 보기에는 그 논쟁에서 이론의 옳고 그름이 실험결과에 의해 곧바로 명백하게 가려지지 않고, 반박을 위한 후속실험과 그에 대한 비판이 되풀이 되었고, 어떤 경우는 논쟁이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이 바로 과학의 엉성함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탐구할 때, 처음부터 모든 것이 명확히 그리고 상세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열심히 탐구를 하겠는가? 눈 밝은 연구자가 처음으로 다소 흐릿하게 본 것을 보고하면, 다른 연구자도 그것을 살펴보고, 저마다 본 것을 이야기하고 비교하면서 차츰 모든 세부사항이 서로 아귀가 맞는 온전한 모습을 명확히 드러나고, 그 모습을 대다수의 연구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정립된 이론이 된다. 때로는 최근에 풀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당대의 학문적 수준을 벗어나기 때문에 수백 년을 잠자고 있다가 다시 깨어나 또 연구와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자들이 제시한 7가지 사례에서 치열한 논쟁이 오래 계속된 것은 과학이 엉성해서가 아니고 당대의 실험과 이론의 수준이 그랬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한 내용의 상세한 배경은 알지 못한 채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논쟁이 계속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과학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일 뿐이다. 사회과학자인 두 저자가 자연과학에 대해 이처럼 도발적인 책을 쓸 때는 스스로 자연과학에 대해 폭넓게 알고 있다고 자부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서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이 과학의 연구과정 및 방법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과학의 발전은 새 이론을 세우거나 현상을 예측하는 일에서 시작하여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고자 실험을 고안하는 일, 실험하여 자료를 얻어 핵심만 가려내는 일, 그것을 해석하여 대립하는 여러 이론들 가운데 타당한 이론을 판단하는 일 등이 차례대로 사슬처럼 엮어져 있다. 또한 과학연구에서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충분하지 않아 미진한 부분은 다음 단계의 수준 높은 연구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과학자들이 합의하여 얻은 결론이라고 해도 불변의 절대 진리로 보지 않으며,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논쟁이 계속된다고 하여 현재의 과학 지식 체계가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과학은 다양한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도구이며, 여러 영역이 겹치는 곳에서 각 영역의 고유 이론들이 서로 어긋나지 않게 이어져 하나의 일관된 체계를 이루도록 계속 보완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작업에는 높은 수준의 지적능력과 함께 전문적인 훈련을 체계적으로 받은 경험이 요구된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복잡한 과학연구의 특성을 사회과학자들이 자신의 경험 속에서 안다고 주장하며 과학의 속성을 엉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당연히 이 책은 과학자들의 거센 반발과 비판을 불러왔다. 저자가 과학을 내용은 엉성한데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견고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지만, 그것을 책으로 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자들이 실험 자료를 해석하고, 이에 따라 이론의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논쟁을 계속하는 것이 곧 과학이 엉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여러 가지 잡음 등이 섞여 있는 실험 자료에서 핵심요소만을 갈려 뽑는 것이 조작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은 사회과학의 주류이론이 계속 변해왔다고 하여 지금의 사회과학의 여러 이론이 엉터리라고 설명하는 것이 큰 잘못인 것과 같다. 이 책이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 까닭은 내용이 훌륭해서가 아니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매우 집요하게 우기고 있기 때문이며, 이것은 과학의 발전이나 사회과학의 개선에 별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하나 도움이 되는 면이 있다면 과학교재에서 역사적 사건을 끌어와 발전과정을 설명할 때, 순서나 인과관계 등을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게 끌어다 쓴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특수상대성 이론과 마이켈슨-몰리 간섭계측실험인데, 이 책에서도 빠지지 않고 지적되었다. 이 점에서는 앞으로 과학교재를 쓰는 사람들이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사회과학자가 과학을 어떤 식으로 볼 수도 있는가를 보여주는 장점이 있으므로 과학기술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한번쯤 훑어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 책을 읽기 보다는 우주의 시원과 구조에서부터 거시적 및 미시적 생태계, 물질과 원자의 구조에 이르는 여러 자연현상에 관해 설명한 책을 먼저 많이 읽어 과학적 지식을 넓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끝으로, 책의 부제가 원래는 “과학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인데 역서에서는 “과학의 뒷골목”으로 바꾸었다. 뒷골목이라면 왠지 음침하고 숨어서 무엇인가 못된 짓을 하는 후미진 곳을 떠올리게 될 뿐 아니라 책의 내용과도 잘 맞지 않는다.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떠올릴 수 있는 말을 세심하게 찾아내어 붙여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