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마시는 곳 글 | 최정학 기자 한옥마을이 개발되면서 태조로를 중심으로 특색있는 공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전통’을 지향하며 기품있는 한옥건물과 인테리어에, 다양한 전통차를 제공하는 이들 찻집은 한옥마을 방문객들에게 또 다른 즐길 거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진카페 EOS는 특이하게도 이런 전통찻집들이 즐비한 한옥마을 지척에 자리하고 있다. EOS의 테마는 ‘추억’이다. ‘전통’과 ‘추억’, 얼핏 엇비슷해 보이지만 이 두 지향점이 만들어내는 차이는 컸다. ‘사진카페 EOS’는 전동성당 앞으로 나 있는 작은 골목으로 약 10여 미터를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의 투박한 간판, 그리고 그 밑에 족히 10년은 훨씬 넘어 보이는 기념사진들이 EOS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EOS가 이곳에 문을 연지는 채 일 년이 되지 않았다. “외국에는 수염 덥수룩한 할아버지가 호프집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어요. 비슷한 연배의 노인네들이 오며가며 잠깐씩 들러서 맥주 한잔씩 마시고 가곤 하죠. 한 사람이 몇 십 년씩 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죠. 그동안 그 곳에는 얼마나 많은 추억이 쌓였겠어요. 손님들이 그곳에 마시는 것은 단순한 맥주 한잔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전주만 하더라도 그런 곳이 별로 없어요. 일례로 명절 때 전주에 내려온 친구들과 한번 만나려고 해도 약속 장소를 잡기가 쉽지 않아요. 1,20년 전 친구들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공간이 지금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EOS를 운영하고 있는 류윤식 씨는 ‘추억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투박한 간판과 오래되 보이는 인테리어 모두 옛 향수를 살리기 위해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난로마저도 예전 검은색의 석유난로다. 뜨거운 바람 훅훅 불어대는 최신식 난로보다 따뜻하지는 않겠지만, 석유난로의 빨간 불꽃은 은근하고 정겨운 따뜻함을 지니고 있었다. EOS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색의 턴테이블과 벽면 구석구석 붙어있는 사진들이다. 이곳에 있는 레코드판은 약 5백여 장. 류씨가 개인적으로 지난 30여 년간 한두 장씩 모아놓은 것들이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클래식 레코드판은 EOS의 중요한 재산 중 하나다. 이것들을 카페를 열면서 손님들과 같이 듣기 위해 내놓았다. 레코드판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이제는 아끼는 레코드판을 가져다 놓고, 가끔 와서 차를 마시면서 듣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사진은 손님들이 직접 찍어서 붙여 놓고 간 것들이다. “서울에 있는 사진카페들은 대부분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갤러리를 갖추고 있거나 손님들에게 직접 기념사진을 찍어주지만, 이곳은 손님들이 직접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물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손님들에게는 사진기를 빌려주기도 합니다. 나중에 전자메일로 보내주거나 아니면 현상해서 벽에 붙여 놓으면, 차 마시러 오셨다가 찾아가시곤 하죠.” 카페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으면서 놀 수 있지만, 한쪽 구석엔 의자와 가발 등 간단한 소품을 준비해 놓은 방도 따로 있다. “솔직히 이곳은 맛 집도 아니고, 아주 좋은 분위기의 인테리어를 한 것도 아닙니다. 대신 오래오래 이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의 추억과 함께 하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문을 열 당시부터 ‘오래된 분위기’를 연출한 류씨는 앞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EOS 자체가 추억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