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어떤 로스쿨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현직 변호사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제출한 논문이 표절임이 밝혀지자, 그가 속한 변호사회에서는 그를 징계하였다. 변호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였다. 논문 표절로 인하여 변호사 자격 정지를 받았고 자퇴까지 하겠다고 하였으니, 충분한 대가는 치룬 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로스쿨은 변호사의 자퇴서를 받지 않고 퇴학처분을 하였다. 얼마 전 대학원생 논문심사의 부심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논문지도를 위해 학생으로부터 논문을 이메일 첨부파일로 받아 검토하는 중에 논문 중간에 글자체가 다른 부분이 있음을 발견하고,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몇 개의 논문을 가지고 짜깁기 한 것이 쉽게 발각되었다. 논문심사에 같이 참여한 다른 교수와 상의하였더니,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므로, 너무 속상해 하지 말고 그냥 통과시켜주라는 조언을 들었다. 해마다 대학은 표절로 인하여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학위논문 표절뿐만 아니라, 대학원생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버젓이 발표하는 교수도 있다고 한다. 문제는 표절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대학과 사회의 인식에 있다. 표절은 인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용은 왜 해야 하는가?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로 널리 알려진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에서, 논문을 쓰면서 어떤 저자의 정보를 사용했을 때 그 저자의 이름을 드는 것은 빚을 갚는 일이라고 하였다.1) 그러니, 인용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도둑질하는 것이요, 빚을 떼먹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본래 인용은 타인의 저작물을 복제하는 것과 다름없어서 저작재산권에 대한 침해가 되는 것이지만, 저작권법은 새로운 문화발전을 위하여 공익과의 조화라는 관점에서 일정한 경우에 자유로운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2) 저작권법 제25조에서,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문제는 인용의 방법이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느냐에 있다. 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은 이와 같이 추상적이고 다소 모호하다. 따라서, 학교마다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하버드대학 로스쿨 편집위원회가 만든 Blue Book 이라는 책은 법학논문인용에 관한 책인데, 1920년대 만들어진 이래 이미 18판까지 나왔으며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상세한 내용이 들어있다. 이 책은 미국 전역의 각 대학이 차용하고 있어 사실상 인용법에 관한 전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필자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대학에서 이와 같은 규정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근대화와 함께 우리 사회는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가치관이 지배해 왔다. 성공을 상징하는 서울에 도달하기만 하면, 과정상의 어떠한 실수나 편법도 용서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은 학계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다. 표절에 대하여 관대한 것이 그 예다. 흔히 논문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질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인용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논문은 그 주장의 논거에 대한 검증의 길을 스스로 막은 것이므로, 내용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논문으로 대우해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서울을 못 가더라도 바로 가야한다. (연세대 법대교수, hdn@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