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인물 : 공길, 장생, 왕, 육갑이 (개런티만 된다면 배우를 더 써도 좋지만… 방송국에서 안 쓰는 스탠드 카메라를 한 두어 대 빌려 놓으면 좋을 듯) 왕과 장생, 여장을 한 공길에게 부비부비 춤을 추다가 징소리에 “신나게 한판 놀다나 가세나” 하며 테이블 뒤 룸살롱식 소파에 앉는다. 육갑이 : (손석희 가면을 썼다) 요즘 <왕의 남자>가 인긴데, 오늘 세 분의 패널들 모시고 우리 사회를 진단해 보고자 합니다. 공길씨! 요즘 인기 짱인데 먼저 한 말씀 좀. 공길(각시 가면을 대감1 가면으로 갈아 쓰면서) : 그 이야기 들으셨소? 사림 쪽 형조판서가 패관들 술자리에서 ‘엑스도 모르는 것들이 상소라고 써대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오.’ 라고 씨부렁대니, 글쎄 이 나라가 어디로 가려는지 왕 : 엑스라지 이야기는 신문이 난자 박사 황대감의 애국질 논쟁 끝내려는 수작 아니겠소? 장생(취발이 가면을 대감2 가면으로) : 황대감의 아주 작은 실수를 가지고 아주 싸잡아 애국동지들을 멸시하누만. 병조가 끗발 날릴 때가 좋았는데, 짜식들 좌익이라고 차라리 커밍아웃을 하지. 허 참, 김대감, 내 수염을 손질하다가 들은 이야기가 있소. 기가 막혀서 원 공길 : 아니 또 무슨 전교조가 행패라도? 장생 : 우리 고을에서 이발사 하다가 ‘네 박자 뿡짝’ 해서 뜬 광대 안 있습니까? 아, 이노마가 노래비를 세워달라지 않습니까. 왕 : (나름대로 어색하게 야한 춤을 추며) ‘너는 위엣 입 나는 아랫 입’ 하던 그 광대 말이냐? 하긴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출연료 대신 까짓 것 비석 좀 세워 주지… 장생 : 어딜, 이런 놈들은 나중에 기념관 만들어 달라고 할 놈이지요. 사실 방울은 없지만 ‘어머나’ 하면서 골반을 기차게 흔드는 애들도 많은데 광대 놈이 오버하는 거죠. 공길 : 광대들도 코스닥 등록을 한다 어쩐다 해서 대박을 터뜨리는 분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요즘 대궐에서 ‘구라 콘서트’ 라든가 ‘웃음을 참는 사람들’ 이런 상것들 판이 벌어진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왕 : 천한 상것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대신이라면 대신답게 기초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이라 점잖게 말하시오. 마포나 송파 나루에서 대행수들이 벌이던 유희를 대궐에서 하지 말란 법이라도 있소? 장생 : 왕은 코드에 맞는 식구들만 쓰는 것이 문제죠. 고관 자리에 서출이 하나 둘이 아니고 선왕 때 오랑캐와 내통하던 놈들이 저렇게 왕의 남자가 되어 있으니 … 왕 : 아니 대감들조차 왕을 가지고 노는 겁니까? 개나 소나 입만 열면 왕 얘긴데. 육갑이 : 예술은 현실의 거울 아닙니까? 요즘은 왕까를 해야 말빨이 선다는 말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장생 : 허 참, 성균관 교수도 나오는 열린 음악회라면 모를까. 우리 훈구파가 득세를 했을 때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소. 공길 : (드자이너 복남씨 목소리로) 아니 나도 보안법으로 선왕 때 징역을 산 적이 있는데 거 무슨 스피치신가요. 존재적 가치를 좀 더 판타스틱하게 다룰 수 있는 놀이가 못되면 좀 메트로 섹슈얼하게 쉘 우이 댄스나 재즈, 하다못해 삼바라도 되어야지 사당패가 뭡니까? 엔터테인먼트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너무 건들지는 말고 그저 긁어주는 척해야지. 하여튼 아랫참사든 웃참사든 한 번 보기나 합시다. 왕 : (공길을 향해) 놀자! 그런데 요즘 뮤지컬이 인기라던데 캐츠나 아이다는 아니라도 우미인과 항우의 경극을 한 번 보고 싶구나. ‘거시기’로 웃겼던 황산벌 광대 두목에게 연출을 맡기도록 하라. 장생 얼른 항우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민족과 국가 어쩌고' 지껄인다. 이 때, 육갑이가 와서 권총을 들고 장생을 향해 총을 겨눈다. 공길 우미인 가면으로 갈아 쓰고서 기타를 치면서 ‘그 때 그 사람’을 부른다. 권총 소리. 장생 : (얼른 공주 가면으로 갈아 쓰고) 아니 이것들이, 연산과 녹수를 다룬 「금삼의 피」를 하는 줄 알았는데, 저것은 선왕의 스캔들 아니오? 공길 : (빨간 안경을 쓰고서 계속 복남씨 목소리로) 이거 뭐 캐릭터가 있어 플롯이 있어? 리얼리티가 약해도 한참 약하구만. 그저 이건 극좌적 모험주의적 안티적 좌익 선동 프로젝트 같아요. 좀 럭셔리한 파티를 벌여야지, 아트 퀄리티도 낮은 데다 리어왕 플러스 햄릿의 아류 아니오? 왕 : 아니 광대가 뭔 짓을 못하겠소? 그대들이 언제 나라 걱정 한 번 해보았다고, 참. 선왕 때 인혁당 선비들이 죽어갈 때 당신들이 불쌍하다고 혀를 한 번 차기라도 해보았소? 유서대필했다고 감옥에 간 강 아무개의 고통을 만분지일이라도 생각해 보았느냔 말이오? 공길 : (못들은 척 귀를 후벼 훅 불면서) 난 이래서 정치가 싫고 엽전이 싫다니까. 장생 : (다시 대감의 가면을 쓴 채) 저, 저놈들은 왕빠가 틀림없소. 저 탈 속에 얼굴을 감추는 놈들 때문에라도 탈놀이 실명제를 해야 한단 말이오. 시위대에게도 명찰을 붙여야지 암. 공길 : (군인 모자에 선글라스를 쓰면서) 황당한 시츄에이션 대략 난감하오. 그래도 우리 민족은 선왕 덕분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왕 : 저건 퍼포먼스일 뿐이오. 선왕 콤플렉스 레드콤플렉스 이제 지겹지도 않습니까? 장생 : 아니 이것은 종묘와 사직을 능멸하는 것입니다. 왕빠나 서프라이즈 애들 아니오? 이건 왕이 저 공공의 적인 사당패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닙니까? 공길 : 아이 오라버니. 왕의 치어 리더 아니면 액서서리라고 좀 교양 있게 말하시오. 장생 : 저놈들 눈알을 뽑으시오. 정권은 짧고 돈줄은 길다 몰라? 그나저나 저 천박한 경극이 혹시 전교조 손에 들어가면 우리 아이들 다 버립니다. 공길 : (이덕화 목소리로) 청계천 물길을 튼 이대감이든 선왕의 따님 중 누구라도 바뀌기만 하면 그 땐 그 놈들 솥에 넣고 삶아버릴 거야. 우리 서로 외줄 타고 있긴 마찬가지지만 음, 엘리트 성공신화를 다룬 존재적 가치나 우리 사회의 통합을 위해 편 가르기를 지향하고 미래로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육갑이 : (손석희 가면을 확 던지면서 ) 무슨 소리야. 지향이 아니라 지양이다 쓰바, 차라리 왕의 난자 이야기를 하는 게 낫겠다. 일구야, 나 형이야. 오해 말고 들어. 교양틱한 말 그만두고 우리 노래로 그냥 한 판 놀다 가면 안 되겠니? 배우들 땅위에 금을 그어놓고 봉사처럼 더듬거리며 줄 위를 걸으며 '나 여기, 너 거기 있어?'를 중얼거린다. 그러자 관객석에서 "째내지 말고 ‘너는 위엣 입 나는 아랫 입’노래로 바꿔라" 하는 소리가 들리며 막. butgo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