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이가 듣는 音樂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男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音樂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雜草 돋아나는데, 그 男子는 누구일까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牧丹이 시드는 가운데 地下의 잠, 韓半島가 소심한 물살에 시달리다가 흘러들었다 伐木 당한 女子의 반복되는 臨終, 病을 돌보던 靑春이 그때마다 나를 흔들어 깨워도 가난한 몸은 고결하였고 그래서 죽은 체했다 잠자는 동안 내 祖國의 신체를 지키는 者는 누구인가 日本인가, 日蝕인가 나의 헤픈 입에서 욕이 나왔다 누이의 戀愛는 아름다워도 될까 파리가 잉잉거리는 하숙집의 아침에 ( 이하 2, 3 생략 ) [우리들을 좀 더 치열하게 했던] 글 | 김유석 시인 이 시는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실려 있다. 시집에 적힌 기록에 의하면 이 시를 문예지에 발표하면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하니 이 시가 그의 등단작인 셈이다. 시인으로서 그의 이름이 확고해진 것은 그 후에 던진 『남해금산』의 시편들일지도 모르겠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의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시들을 가름하여 그를 읽곤 한다. 물론 시인들의 첫 시집에 각별히 애착하는 사사로운 취향 탓도 있으려니와 딴엔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의 편린들을 거기 묻어두고 떠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 한 편 뿐 아니라 시집에 상재되어 이는 모든 활자들을 주워 먹으며 문학적 열정과 습작기의 허기를 달래던 기억들은 때로 생채기처럼 오래 나를 어루만져주었다. 다시 1980년 10월이 찍힌 초판을 펼치고 아직도 생고구마 같은 기억의 한 모서리를 갉아보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단색판화 같았다고 해둬야겠다. 세상이 그랬고 시절이 그랬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문학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으니까. 젊음이란 것은 거리에서 스크럼을 짜거나 의식과 뜬소문의 틈서리에서 금서를 읽거나 군대에 갔고 걸핏하면 휴강이 계속되던 그 몇 년 동안. 닥치는 대로 문학책들을 읽으며 하숙집에 남아 있던 나는 그야말로 주책없는 문학도였다. 비문과생이었으므로, 여타할 전문서적 한 권 접해보지 못한 채 소설이건 시였든 걸식하며 유랑했다. 그러면서 만나게 된 몇 몇 친구들과 이르길, <달하>동인이란 걸 만들었고 그들과 더불어 나름 나름의 수업을 쌓게 되었다. ‘김수영’ ‘황동규’의 이름을 외우고 한창 열열했던 ‘김명인’ ‘정호승’ ‘하종오’ 등 사회성 짙은 글들을 쓰던 젊은 시인들의 정신을 베끼기도 했지만 우리들을 좀 더 치열하게 했던 사람은 이성복이었다. “개인적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그리고 원초적으로 괴롭히는 병든 상태와 싸움을 벌인다”는 해설을 굳이 따르지 않더라도 그의 글들은 이미 그 즈음의 몇 가지 유형에 길들여지지 않아 있었다. 이미 고착화되었거나 안주하려는 자세를 취하던 이들과 자진해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뛰어들던 자들, 그 어느 편에도 낯이 설던 그를 추적하던 우리들의 사랑법은 몇 몇 낱말의 덫에 걸려 오독에 빠져들기도 하고 모호한 진술에 당황해하기도 하면서 어디론가 이끌려갔다. 내 책꽂이에는 같은 시집이 두 권 꽂혀 있다. 한 권은 나의 손때가 지저분히 묻어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무리 뒤척여도 어떻게 내 방까지 흘러들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것인데, 표지 이면에 “아스팔트 위의 염탐꾼이 부르는 노래”란 누군가의 필적이 남아 있다. 짐작컨대 그 시절 함께 뒤섞여 파먹던 하숙이나 자취방의 칙칙한 구석에서 묻어 온 것이리라. 두 권을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본다. 익히 읽었던 구절은 떠오르지 않고 현철승, 문상붕, 송요면, 김성식, 이용환, 박영님… 등의 올챙이들 얼굴이 서늘하게 꼬물거린다. 우리가 밑줄을 긋고 주석을 달며 넘기던 젊은 날들은 어디로 갔는가. -------------------------------------------------------------------------------------------- 김유석 | 김제에서 태어났다. 1989년 전북일보와 199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농사를 지어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 전 첫 시집 『상처에 대하여』를 펴냈다. <천칭>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