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행구 완주군 문화원 부원장 우선 봉동하면 봉실산(鳳實山)과 우리고장의 특산품인 생강 그리고 씨름을 얘기할 수 있다. 생강은 새봉(鳳) 자의 지명을 쓰는 곳이라야 재배할 수 있다는 설이 있다. 봉동은 뒤에는 봉실산이 주산(主山)으로 의젓이 자리잡고 있는데 산자락 아래에 은하리의 터가 좋아 양쪽으로 평야가 펴쳐진다. 예언지 정감록에 의하면 육백 년 도읍지의 터로 기록되어 있다. 서울은 백학, 봉실산은 단봉(붉은 봉황새)의 형국이란다. 호남평야의 시발지로서 부의 상징이며 전주들과 봉실산(해발 373m)의 높이와 크기가 조화롭다. 봉실산은 작으면서도 웅장하며 형상이 뚜렷하고 남북으로 혈맥이 공정하게 뻗어 있다 하여 정의가 정착할 세라고도 얘기한다. 서쪽으로는 옥녀봉이 수려하고, 옥녀봉 다음은 장군날이 생기는 법이란다. 장군날 앞산은 금소반(금반리)인데, 전주3공단이 조성됨에 따라 그야말로 금소반 값으로 지가가 상승하였다. 뒤로는 옥동, 만동의 옥토는 그야말로 쌀 맛이 경기미보다도 월등하다. 동쪽으로는 샛뱅이에서 주춤하여 밤수(율소리)마을은 봉동에서도 제일 큰 마을이다. 그 앞에 앞대산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만년 소풍자리이면서 고산천의 유속을 머무르게 한다. 앞대산에서 천을 따라 200m 쯤 내려오면 멍애방천이 휘어져 있는데 여기서부터가 봉동읍 소재지인 장기리(場基里) 구역이다. 전설에 의하면 장기리는 고산현 죄인들의 사형터였다고 한다. 폭우가 있을 때마다 멍애방천이 유실되어 수해를 입었으며, 고산천은 물이 얕고도 맑아 여름철 천렵하기에 적합하여 많은 인파는 만가리(萬家里, 현 마그네)를 거쳐 신성(新成), 고천(高川) 삼례읍 신천보까지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매년 익사사고 또한 많았다고 한다. 봉동씨름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진 넋을 위로하고 익사사고의 넋을 달래며 멍애방천의 제방을 다지는 행사로써, 음력 칠월 스무날(7월 20일)이 난장과 더불어 “씨름의 날”로 계속 전해 내려온 것이다. 시상품을 준비하는 어른들은 며칠 전부터 풍장치며, 포목점에서는 광목을, 미곡상에서는 쌀과 보리쌀을, 양조장에서는 막걸리를 후원물품으로 시사해 주었고, 봉상 장날이면(지금은 봉동장) 바작이며, 숫돌이며, 조선낫을 모아 시상품으로 준비하였다. 멍애방천 유실시에 수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상장기에서 임거 마을(임내리)을 거쳐 사거리 마음 뒤에는 진고삿이 있는데 약 500m의 길이에 심어진 수백그루의 아름드리 귀목나무는 장관을 이루었다 한다. 현재 임내리에 있는 귀목나무를 짐작하건데 약 오백년은 된 것으로 보아 봉동씨름의 역사를 예측할 수 있겠다. 칠월 스무날은 장터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풍장치며 씨름판이 벌어지는데, ‘애기 씨름’부터 시작하여 ‘중 씨름’ 다음은 ‘상 씨름’으로 올려 붙였다. 주심은 낙평리 이겸석씨가 주로 하였다. 삿바 줄로 선수의 목을 걸어 모래판을 끌고 돌면서 큰소리로 선수를 소개하는데, “호남 조선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면 허고도 ○○리 아무개”라고 소개할 때는 전 씨름판이 웃음바다가 되었었다. 주심 후임으로는 강릉오토바이 사장님의 아버님이신 김우경(예명: 성경)씨가 해 왔다. 봉동씨름은 전국에서도 손꼽혔으며, 봉동에 가서는 힘자랑 하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장사로는 정동 노복기 씨는 외궁딩이(돌림배지기)로 반짝하며 끝낸단다. 봉동씨름의 5봉애가 있었다는데, 강·도·임·최·한씨(이름은 모두 奉來)였단다. 이분들은 전국 난장 씨름판을 누비고 다녔다는데, 몇 백마리의 황소를 따 왔다고 한다. 한 단계 내려와서는 정창성 장사가 유명하였고 김재철, 이성구, 이응칠, 노은기, 강대영, 이병원, 장사가 씨름판에서 많은 기술을 선보였으며, 그 후배로는 성덕리 간리에 사는 임병용 장사다. 자그마한 체구이나 힘을 모아쓰는 지혜가 있고, 승부욕이 강하여 기술 씨름을 연속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봉동 정기 씨름판에서 연속 6승의 기록이 있으며 황소를 6마리나 탔다. 지금도 노년부 전국대회에서 입상하여 봉동씨름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다. 봉동 장사들은 항상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였기에 1970년대에는 전민기, 이영복, 이문화, 이대천, 이종국, 남궁택 등 훌륭한 장사가 있다. 그 후 조창기(현 체육회이사)는 전국 청소년 대표로 출전하여 우승하였으며, 현재도 봉동 읍민의 날로 지정된 칠월 스무날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라도(봉동) 씨름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다리 삿바를 잡고 왼손으로 허리 삿바를 잡는데, 경상도 씨름은 그 반대로 삿바를 잡기 때문에 봉동 씨름이 현재는 전국에서 큰 빛을 못 보는 것 같다. 현재 봉동 번영회장이며 완주 사랑모임 회장인 서정일씨는 순수하고도 값어치 있는 우리의 문화인 봉동 씨름과 역사에 대하여 많은 애정을 가지고 봉동읍지 발간을 준비중이다. -------------------------------------------------------------------------------------------- 이행구 | 봉동농협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