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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 |
[자치단체의 문화와 전략 | 완주] 말(斗)로 주고 되(升)로 받는 완주 문화
관리자(2006-02-01 16:48:18)

말(斗)로 주고 되(升)로 받는 완주 문화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글 | 이승철 완주 문화 연구회 회장 ▒ 완주군 향토사의 진단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완주군은 ‘콩나물’을 닮은 지형이다. 머리 부분과 기타 지역의 문화권이 다르다. 윗쪽은 ‘고산군현’권이고, 그 외는 ‘전주부’권이다. 이는 향교 관할 영역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곧 동북 6개면은 ‘고산향교’권이고 이를 뺀 읍면은 ‘전주향교’권이다. 여기에 말티재 정상을 기준으로 영상(嶺上)·영하(嶺下)라 하는데 영상(운주면)과 영하(경천면)사람들은 생각이 다르다. 그 사례로 일부를 제외한 영상 사람들은 ‘충청도 편입’까지 희망하는 현실이다.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행정기관의 중심부에서 보면 섭섭하게도 완주를 벗어나려는 문화권이다. 여기에 ‘도농 시군통합’ 문제까지 겹치면서 결속력이 헐렁해지고 자유정신은 ‘문화의 동질성’마저 느슨하게 만든다. 기존문화는 그늘 속으로, 새로운 문화는 물신주의로 치달아 한 깃발 아래 하나의 군심(郡心)으로 묶어나가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 문화 주도 세력이 빠져나감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증등교육기관’이 없던 군이 바로 ‘완주군’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은  상급학교를 찾아 전주(이리)로 갔다. 그들은 이 때부터 ‘전주 사람’으로 바뀌었다. 결국 완주군민은 학비만 대었지 ‘외지 인재’만 양성한 격이었다.     이 사실을 고창군과 비교하면 알기 쉽다. ‘고창 사람’은 고창에서 타도 진학을 해도 언제나 ‘고창 사람’이고, 여기에 부통령을 비롯 국무총리 등 고급관리가 많이 나왔다. 고창 출신은 선이 닿아 교육, 문화, 금융, 언론, 재계,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지방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고자 둘러보면 인재가 풍부하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 아니되는 일이 적다. 완주는 어떤가? 이와 반대이다. ▒ 지역의 양분성(兩分性) 문화 봉동읍 율소리는 호남평야의 북동쪽 끝자락이다. 여기에서 완주문화는 ‘산간문화권’과 ‘평야문화권’으로 나뉜다. 산간문화권은 나무에 의존하는 ‘나무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논밭이 적으니 빈터 산자락 밭둑에 나무를 심어 소득을 올렸다. 열매를 맺어 딸 때까지 나무를 쳐다보고 살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사는 ‘우러러 보는 문화족’이다. 자연히 타존자비(他存自卑) 정신으로 몸을 낮추고 사는 경향이다. 반면에 평야문하권은 ‘밭 문화권’이다. 생강 등 밭에서 ‘황금’을 캐었다.  전국을 누비며 팔았으니 ‘북청 물장수’ 보다 더 끈기가 있었다. 밭농사(작물)는 늘 내려다보면서 가꿨다. 싹수가 없는 것은 솎아낸다. 이렇다 보니 시시비비(是是非非)·판단력이 빠르고 정의감이 강하다. ‘내려다 보는 문화’는 남을 대할 때 내심 강한 자세로 바라본다. ‘내려다 보는 문화족’이다. 이러한 잠재력은 혼례 혼수, 상례, 접대 문화를 동서로 완연히 다르게 한다. 그러므로 옛부터 효자·효부·열녀·의인이 많다. 정려 세우기도 마찬가지다. 사람 평가가 날카롭고, 지지 않으려는 문화 속성이 깔려 있다. ▒ 문화 주도세력으로 본 인물 만경강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이 강의 북쪽은 인재가 빈곤한 편이다. 조선 초부터 600년동안 장관이 겨우 한 분 나왔다. 이는 인재 빈곤으로 보아야 한다. 옛날 ‘고산현 입향조 100성’을 조사해 본 결과 10 대조 이상은 정승, 판서, 대제학 집안  아닌 사람이 없는데, 100년 이 안을 살펴보니 사무관 이사관도 극히 드물고 거의 ‘민초’들이었다. ▒ 위기에서 회생으로 해방후 얼마 동안은 문화재 시련 기간이다. 절간, 향교, 마을 앞 정려, 심지어 재실까지 기울어지고 6·25 동란 기간 불타버린 것이 많다. 정부의 문화정책이 바로 서면서 대폭적인 지원으로 제모습을 찾아 엄청나게 좋아졌다. 송광사: 오랜 역사가 부끄럽더니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대웅전·삼존불·미륵석불·요사·지장전이 일신되어 불자가 아니더라도 흐뭇하다. 위봉사: 도로 확장 개설과 음수교의 개통, 관광산업 진흥정책이 맞아 떨어져 아담한 사찰로 수도권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이다. 넓은 주차장, 범종각, 노송, 석축 등 하나 하나를 지나칠 수 없는 절이 되었다. 최용각이 자리를 잡은 이래 최대의 시설을 자랑하게 되었다. 화암사: 전설과 보물로 보아 역사 깊은 고찰이지만 길이 험하여 보호가 잘된 편이다. 버스가 오고 철재 오름다리를 놓아 접근성이 좋아졌다. 맛을 최고로 치던 물이 말라버려 못내 아쉽다. 봉서사: 진묵대사의 일화가 많이 전하는 절이다. 6·25 동란 중 불에 탔다. 그러나 불자와 스님의 지성으로 부도군과 건물, 비석을 세웠고 일붕 스님의 유묵이 시사하는 바가 커 절다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말사와 기타 암자: 학림사·단암사·안수암 등 50개도 넘는다. 불교의 건재함을 말해 준다. ▒ 유교 문화재 고산읍내에 향교가 있다. 옛날 교육하던 교실인 ‘명륜당’만 있을 뿐 교육이 없으니 ‘향교’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문묘’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써야 할 것이다. 고산 문묘: 500년 역사를 가졌다. 이 역사를 상징하는 은행나무가 있다. 그런데 노쇠하여 일부는 고사하고 겨우 뿌리에서 곁가지가 돋아났으나 무관심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흥망성쇠는 이래서 안타깝다. 동족 전쟁 중 여러 비품과 책이 없어지고 퇴폐하더니 정부 지원으로 대성전, 명륜당, 동재·서재, 화장실, 관리실, 충효관이 산뜻하게 보수되고 신설되었다. 가까운 곳에 세심정(洗心亭)을 지어 외형은 훌륭한 데 유림의 감소로 장래가 걱정이다. 후진 양성 부진과 위기 의식의 결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서원: 배향된 인물의 종재가 아니면 제사와 유지가 어렵다. 명색은 유림들이 받들어야 하지만 옛날과 다르다. 정부의 도움으로 건물 보존이 가능하다. 문화재는 사람이 만들어 간다. 사람 없는 문화재는 안타깝다. 정부지원 이외의 재원으로 이끌어나갈 자주적인 주체가 나와야 한다.      ▒ 주목받는 기독교 문화(재) 기독교는 독특한 신앙심으로 교세를 펼쳐 마을 마다 교회당이다. 운영, 전도, 교육, 활동이 무두 자력사업이다. 신학대학에서 매년 5000명의 교역자를 길러낸다고 한다. 위력이 대단하다. 승치(되재) 성당: 한강 이남의 최초 성당이요, 전북의 처음 성당이다. 신지가 아니더라도 희한하게 여긴다. 천호성지와 가까워 천주교 문화의 꽃봉오리이다. 개신교: 100년 역사를 지닌 교회가 많다. 신교육을 열은 교회가 여럿이다. 소농교회, 율곡교회, 제내리교회, 삼례제일교회는 완주문화의 차원에서 새로운 재평가와 가치부여가 있어야겠다. ▒ 종중문화 도시개발로 보상금을 많이 받은 종중일수록 재실, 묘역 미화, 석물이 화려해졌다. 최용각 묘: 대아저수지 안의 전주 최씨 묘역은 풍수설과 절묘하게 맞은 묘로 자손들의 자존심이 손상되지 않은 대표적인 묘소이다. 유성보 묘: 기계유씨 경천 우아형 묘역은 개발과 관계가 깊은 대표적인 묘역이다. 마찰도 있었지만 종중이나 수자원공사가 상생의 선에서 타협한 종중문화 소산이다. ▒ 당국의 정책이 이끌어낸 전반적인 현황 삼례읍: 경기장, 역참박물관,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역사광장, 문화회관, 도서관, 보건소가 대단하다. 여기에 우석대학교가 수준 높은 문화를 선도하여 사회와 문화를 조화롭게 성장시켜나간다. 봉동읍: ‘죽은 자의 마을’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산 사람의 집’ 완주종합복지센터를 세웠다.   완주산업단지(80여개 기업체)는 봉동읍을 완주 제일의 수부(首府)로 올려놓아 돈과 연관된 문화권을 탄생시켰다. 첫째 자랑은 유흥업소가 없는 봉동, 아가씨가 없는 산업단지란다. 백제예술대학이 전국문화의 생성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서면: ‘이서는 독도다.’ 완주군이로되 전주·김제 속의 섬이다. 다행히 ‘콩쥐 팥쥐전’의 배경마을 조성 계획이 진행중이고 ‘혁신도시’ 후보지로 지정되어 생기가 솟아 새로운 문화창출에 대한 기대가 크다. 당국의 노력: 대둔산 축제, 면민의 날 행사, 수박·딸기 축제, 농악경연대회, 시조경창대회, 정월대보름 민속행사, 문화원 건축을 주관하여 완주의 정신과 맥을 유지하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끝으로 삼기초등학교 폐교지는 어떤 형태로던지 완주 북동권 문화센터로 회생되어야 한다. --------------------------------------------------------------------------------------------- 이승철 |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으로 활동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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