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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 |
옹기는 숨을 쉰다
관리자(2006-02-01 16:45:03)

| 이동석 리스프로 대표 1988년 가을, 나는 특집다큐멘터리 <한국의 이미지-옹기>를 제작하였다. 서울올림픽에 오는 외국인들의 머릿속에 한국을 오래 기억하게 할 어떤 이미지를 넣어주자는 의도였다. 외국인들이 그저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 프로그램 속에서 나는 옹기가 한국의 민중적인 그릇이라는 것, 한국인의 심성을 닮았고 한국의 자연과 조화롭다는 것, 옹기가 있으므로 한국이 자랑하는 발효음식이 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옹기는 늘 한국여인의 생활의 중심에 있었으며 한국천주교의 박해사와 맥을 같이 해왔다는 것 등등을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뒤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서울 화곡동에 사시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 할머니는 간장독 표면에 묻어있는 끈적끈적한 점액질을 살피던 나에게 “속에서 배어나온거야. 도가지가 숨쉬기 때문에 그래. 숨쉬는 옹기가 좋은 옹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해버리고 프로그램 속에서 더 이상 개념화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자꾸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8년이 지난 어느 날 방송사의 연락을 받았다. 세상이 놀랄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고. 실험적 작품이면 더욱 좋겠다고… 나는 퍼뜩 8년 전의 할머니 말씀을 떠 올렸다. 옹기가 숨쉬는 그릇이라는데, 그걸 입증하면 전통문화속의 과학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 아니냐고, 그게 바로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 주장이 먹혀들어 나는 드디어 조심스레 과학적 그릇으로서의 옹기를 프로그램으로 착수했다. 저인망으로 훑듯이 자료를 뒤졌으나 옹기가 숨쉰다는 것을 테마로 접근한 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전적으로 제작진의 추론과 가설 그리고 실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옹기가 숨을 쉰다함은 안팎으로 공기가 왕래한다는 것이고 왕래한다는 것은 안팎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어 그 통로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는 어떤 에너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런 현상들을 하나하나 입증하는 것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지금부터는 지면을 아끼기 위해서 프로그램의 골자만을 설명하기로 한다.) <실험1> 똑같은 모양과 크기와 용적을 가진 두개의 그릇을 구했다. 유리그릇과 옹기였다. 두개의 그릇에 각각 3분의 2가량의 물을 붓고 부화시기가 같은 금붕어 두 마리씩을 넣은 뒤 랩으로 완전 밀폐했다. 두 그릇 중에 숨쉬는 그릇이 있어서 외부의 공기가 유입된다면 그 속의 금붕어는 더 오래 살게 될 것이라는 가설을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현장1> 광양의 청매실농장. 천팔백 개의 옹기항아리가 매실을 이용한 발효음식을 품고 도열해 있었다. 벌들이 항아리표면에, 특히 난초무늬가 있는 얇은 표면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 뭔가를 열심히 빨아들이고 있었다. 항아리 안팎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현장2> 구례의 만수동콩된장. 수십개의 된장 간장항아리들. 하나건너 하나쯤의 항아리표면에 농도 짙은 점액질들이 여드름처럼 돋아나 있었다. 간장색의 끈끈한 액체였다. 주인 안화자씨가 신념에 차서 말했다. “우리 피부와 같이 항아리가 숨쉬기 때문입니다. 지금 맛있게 익고 있는 것이지요.” 화곡동 할머니의 말씀 그대로였다. <현장3> 그 인근의 할머니들을 더 만나봤다. “항아리가 땀흘려!” “그게 좋은 거여. 숨쉬기 때문에!” “숨쉬는 항아리라야 맛있게 익어!” 말씀들이 모두 그랬다. 옹기가 숨쉰다는 주장은 무시할 수 없는 테마로 자리잡아갔다. <실험2> 코오롱 기술연구소. 전자현미경으로 옹기의 벽(단면)을 확대하였다. 1500배가 되면서 거뭇거뭇한 크고 작은 수많은 구멍(기공)들이 나타났다. 배율을 더 확대할수록 더 많은 기공들이 나타났다. 옹기의 벽속은 골다공증에 걸린 뼈와 같았다. 그러나 그 기공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었다. <실험3> 한국전력 전력연구원(98년현재). 뉴세라믹연구진과 함께 기공들의 연결성, 즉 공기가 유통되는 통로가 있는지를 탐색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옹기시편(실험용 조각)을 밀봉하고 그 양쪽에 호스를 연결한다. 호스 한쪽은 공기를 주입하는 입구이고 반대편 호스는 그 끝을 물에 담궈 공기가 빠져나가는가를 관찰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만약 옹기의 벽속에 통로가 나 있다면 이쪽 호스에서 주입한 공기가 옹기의 벽을 뚫고 나가 저쪽 호스의 물에 잠긴 끝에서 공기방울로 떠오를 것이다. 공기를 주입했다. 반응이 없었다. 공기의 압력을 차츰 높였다. 차츰 차츰 어느 순간 호스 저쪽 끝에 이상한 반응이 보였다. 압력을 더욱 높였다. 방울이 생겼다. 방울은 차차 커지고 이내 풍선처럼 물위로 떠올랐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미세한 기공들이 서로 연결통로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옹기 속에는 통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통로가 있다함은 그릇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뜻도 된다. 빗물이 침투되어 내용물을 손상시킬 수도 있고 품고 있는 내용물의 수분이 줄줄 새어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옹기가 기나긴 세월을 간장, 된장, 김치 등 수분 많은 음식을 담아온 그릇으로서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통로가 약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실험4> 투습방수실험- 인류가 발명한 마지막 섬유라는 방수섬유 Gore-Tex. 그와 원리가 똑같다는 한국의 하이포라텍스를 실험용기에 넣고 위에서 물을 부었다. 물은 그 섬유를 전혀 뚫고 나가지 못했다. 다시 섬유 아래에서 강력한 공기를 투사했더니 공기는 섬유를 뚫고 올라 끓는 냄비 속같이 수많은 물방울을 발생시켰다. 물은 통과시키지 않으나 공기는 통과시킨다는 방수투습의 원리다. 하이포라텍스의 연구진은 설명하였다. “하이포라텍스는 섬유에 코팅을 한 것인데 그 코팅부분에 있는 수많은 구멍들은 땀이나 공기의 크기보다는 크고 물의 크기보다는 작다. 때문에 살갗의 땀이나 열기는 밖으로 내보낼 수 있지만 밖의 빗물은 옷에 스며들지 않는 것이다.” 다시 한번 머리칼이 쭈뼛 섰다. 참으로 절묘한 일이었다. Gore-Tex, 하이포라텍스의 구조가 유약을 입힌 옹기와 같고 비밀통로로 공기가 유통된다는 원리도 옹기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입증을 시도했다. 자료들 뒤지고 자문을 얻어 빗물, 산소, 소금, 설탕의 크기를  알아두고, 한국전력 전력연구원에 옹기의 기공크기를 측정해주도록 요청했다. 며칠 뒤 기가 막힌 데이터가 입수됐다. 옹기의 기공 크기는 1~20 마이크로미터(1000분의 1미리=1마이크로미터) 빗물분자의  크기는  2000 마이크로미터 산소분자의  크기는  0.00022 마이크로미터 소금분자의  크기는  0.00056 마이크로미터 설탕분자의  크기는  0.00096 마이크로미터 였다. 옹기의 기공은 산소, 소금, 설탕 등을 통과시킬 만큼 크고 빗물을 가로막을 만큼 작았던 것이다. 폭우가 내리는 밤에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의젓하게 간장을 품고 있는 장독대의 옹기! 품고 있는 간장, 된장, 김치에 염분이나 당분이 분수이상으로 발효되면 땀흘리 듯이 밖으로 방출하는 도가지, 옹기! 아폴로우주선이 인류최초로 달에 착륙할 때 입었다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섬유라는 Gore Tex의 구조와 작용이 똑같은 옹기! 그 결론이 내려질 무렵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옹기를 발명한 수백 수천 년 전의 한인들, 그 천대받던 옹기장이들의 과학수준에 엄숙히 머리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지면관계로 옹기의 비밀통로를 통하여 산소가 유통되도록 하는 에너지와 장인들이 옹기를 빚으면서 기공을 만들어내는 원리, 실제로 유리그릇, 페트병, 옹기에 유지되는 산소용존량비교 등 소중한 결과들을 소개하지 못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실험1-1> 사흘쯤 지나자 유리그릇속의 물이 뿌옇게 변했다. 옹기 속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다시 하루가 지났다. 유리그릇속의 두 금붕어가 아가미를 물위로 내민 채 헐떡거렸다. 그때까지도 옹기속의 금붕어들은 밑바닥을 한가롭게 유영하고 다녔다. 다시 하루 반나절이 지났다. 유리속의 붕어한마리가 배를 하늘로 떠민 채로 숨을 멈췄다. 다른 한 마리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옹기속의 금붕어는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나는 두 그릇의 랩을 걷어내고 실험을 끝냈다. 똑같은 실험이 두 번 더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유리그릇속의 금붕어는 죽었다. 살아있는 금붕어가 예뻐 보였다.   --------------------------------------------------------------------------------------------- 이동석 |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일하고 있다. (주)리스프로 대표로 인간극장 총감독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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