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교수 일본 도쿄대학의 문화인류학자인 이토 아비토(伊藤亞人) 교수는 한국을 ‘옹기의 나라’라고 칭한 적이 있다. 30년이 넘게 전라남도 진도를 연구해온 그는 시골집 어디를 가도 수십 개의 옹기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미국인 인류학자 로버트 새이어스(Robert Sayers) 역시 한국 옹기의 매력에 푹 빠져서 옹기의 역사에 대해 장문의 글을 남겼다. 왜 이들은 한국의 옹기에 주목했을까? 예로부터 옹기는 한국의 살림집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생활 용구였다. 간장·된장·술·젓갈·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을 담는 데는 물론이고 세척을 할 때 사용했던 자배기·버치·푼주도 모두 옹기로 만들어졌다. 또 부엌에서 쓰이는 각종 양념을 넣는 ‘단지’나 소금이나 쌀을 담는 데도 옹기가 쓰였다. 심지어 집안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 준다는 성주·터주와 같은 신령도 옹기로 만든 단지에 모셨다. 이러니 ‘한국은 옹기의 나라’라는 말은 요사이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 옛 살림집에서 무척 잘 어울린다. 이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장독과 장독대이다. 집안에서 햇볕이 잘 드는 마당 한 가운데나 부엌 옆에 자리를 잡는 장독대는 장(醬)을 담는 독이 놓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장독대에 오르는 옹기에는 간장·된장·고추장·젓갈과 같은 발효음식과 마른 고추와 소금이 보통 담긴다. 발효음식과 함께 마른 고추와 소금이 장독대에 놓이는 이유는 이것들이 모두 햇볕을 받아 건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콩의 수용성 단백질과 소금이 만나서 만들어지는 간장은 햇볕을 가까이 해야 좋다. 소금만 가지고는 발효과정에서 수없이 생겨나는 박테리아를 없애는 데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햇볕이 소금에 더해져서 부패를 지연시킨다. 결국 간장처럼 염분이 풍부하면서 단백질 효소가 많이 녹아있는 음식들은 햇볕과 계속 만나야 더욱 찐한 짠맛을 내게 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도 장(醬)에 끼는 벌레가 장맛을 버리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햇볕이 좋은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두어야 하고, 밤에는 반드시 장독 뚜껑을 덮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장맛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햇볕을 피해야 하는 술과 김치 같은 발효음식은 주로 대청마루 밑이나 부엌 뒤쪽 김치광에 놓인다. 김장김치는 땅에 묻힌 옹기에 담겨야 오랫동안 저장되면서 동시에 제 맛이 난다. 특히 소금에 알맞게 절여진 배추와 갖은 양념은 옹기 속에 집을 마련하고 서로 사랑을 나눈다. 그러면 어느새 맛있는 김장김치로 변한다. 청주 역시 햇볕에 쬐지 않고 수분을 가득 품고 있으면서 발효과정을 거쳐야 잘 익는다. 여기에 용수를 박아 위에 뜬 맑은 술을 걸러내면 어른들에게 약(藥)으로 올리는 약주가 되고, 제사 때 조상에게 바치는 청주가 된다. 이 모두가 옹기 속에서 만들어지는 신비한 탄생이다. 그래서 우리는 발효음식이 담기는 옹기를 두고 ‘숨 쉬는 그릇’이라는 별명을 붙인다. 발효음식들이 모두 발효과정에서 미생물들을 수없이 먹고 뱉고 하기 때문에 자연히 공기의 양이 팽창하게 된다. 이것들을 만약에 외부와 완전히 밀폐된 비닐봉지에 담아 두면 아마 며칠만 지나도 폭탄처럼 터져 버릴 것이다. 이런 성질을 지닌 음식은 가능한 안팎이 묘하게 통하는 옹기에 담아 두어야 제대로 발효도 되고 그 맛도 좋다. 옹기가 숨을 쉰다는 것은 옹기의 기벽에 자기(瓷器)나 플라스틱 그릇과 다른 비밀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 있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실험한 결과, 옹기의 기벽은 마치 스펀지의 구조처럼 기포가 불규칙으로 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는 안에서 계속 팽창되는 공기를 밖으로 빼내는 동시에 바깥 공기 속에 있는 미생물을 안으로 밀어 넣는 기능을 하도록 설계된 요사이 나온 ‘김치냉장고’의 공기 조절기와 똑같다. 곧 오늘날의 ‘김치냉장고’는 옹기의 구조에서 배워와 생겨난 것이다. 사실 옹기는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과 그렇지 않은 질그릇으로 나뉜다.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여겨지는 간장 담그기에는 질그릇의 조상인 ‘경질토기’가 쓰였다. 경질토기가 나오기 전에 사용했던 토기는 물이 있는 음식을 저장하는 데는 알맞지 않았다. 그런데 경질토기는 1000℃ 이상의 고열로 오늘날과 같은 폐쇄형 가마에서 구워 만들었기 때문에 단단하면서 수분이 금세 새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고열로 가열을 했기 때문에 별도로 유약을 바르지 않고도 항아리의 표면에는 진흙 속의 광물질이 녹아 유리질의 막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경질토기는 한반도에서 간장·된장·김치·술·젓국과 같은 수분이 있는 발효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이것이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옹기로 변모했다. 그런데 조선후기 사람들은 이 옹기를 모든 일상에서 생활용품으로 사용했을까? 반드시 그렇지 않다. 특히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은 구하기조차 어려웠다. 대부분의 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질그릇이었다. 더욱이 음식을 먹는 데 사용한 식기는 대부분 사기(沙器)와 유기로 만든 그릇이 주로 쓰였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각 도별로 관찰사 직영의 사기 제조공장을 운영하였다. 그러니 당시 옹기는 주로 장독·시루·김칫독이나 곡물을 담는 데 사용했다. 당연히 이들 옹기는 잘 깨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사이 텔레비전 사극 드라마에서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역사학적으로 보면 이런 모습은 결코 옳지 않다. 사실 유약을 바른 오지그릇의 번성은 1910년대에 일제가 시행한 주세법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면 소재지마다 들어선 양조장에는 세금을 매기기 위해 특별히 만든 옹기 술독이 가득했다. 간장독에 비해 입구의 전이 두껍고 옹기 가슴에 세무서 이름과 허가번호까지 아예 박아 두었다. 자연히 전업을 하는 ‘옹기점’이 읍면 소재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난생 처음 보는 대형의 옹기점을 두고 ‘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식기와 생활용품이 만들어져 오일장에 나와 팔렸다. 이런 과정에서 처음에 말했듯이 한국의 살림집에 옹기들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러나 전래의 살림집이 거의 사라지고, 인구의 60% 이상이 서양식 주택에 살고 있는 이즈음, 옹기는 더 이상 우리의 생활용품이 아니다. 그래도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 창가에 간이 장독대를 설치하여 작은 단지에 간장과 고추장을 담아둔 집들도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그 모습도 이제 보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옹기는 민중의 생활용품에서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대식 식기로 변하여 김치나 나물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하고, 장식품으로 꽃을 품기도 한다. 더욱이 화학물질로 가득 찬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옹기는 흙에서 나온 빛깔로 우리를 자연으로 부른다. 이제 우리도 앞에서 소개한 외국학자들처럼 옹기의 진면목에 관심을 가져보자. 도자기 감상하듯이 옹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조상들이 남긴 지혜도 느끼지 않겠는가. --------------------------------------------------------------------------------------------- 주영하 | 음식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민속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주요 저서로는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김치의 문화인류학』(1994년), 『한국의 시장-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1996년), 『음식전쟁 문화전쟁』(2000년),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2000년),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