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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 |
놓는 곳이 ‘쓰임새’를 만드는 그릇
관리자(2006-02-01 16:20:32)

| 이영자 옹기민속박물관 관장 우리들은 보통 ‘옹기’라고 하면 장독대 위에 놓인 큰 독이나 항아리쯤으로 생각하게 되며, 항아리보다 작은 단지는 여인들의 머리 위에 또아리를 얹고 올려져 있는 그림으로 연상한다. 40 ~ 50년 전만 해도 우리들 곁에서 풍만한 몸집을 자랑했던 옹기는 이제 차츰 구석진 곳에서 애처로운 눈길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집을 지을 때 부엌과 곳간을 마련하였으며, 햇볕 다소곳한 뒤뜰에는 섬돌처럼 쌓아놓은 정갈한 장독대를 꼭 두었다. 바로 이곳이 옹기들이 숨쉬며 뽐내는 곳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안방·사랑방에도 옹기 식구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이처럼 옹기는 언제 어디서나 여인들의 손길을 닮은 변신을 꾀하며 그 용도가 다채로웠다. 그러면서 독이나 항아리·단지에 그치지 않고 차츰 그 수요가 늘어나고 그들의 주문에 맞는 용도로 맞춰 나가는 많은 생활용품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본래 옹기는 그 쓰임새를 정해놓고 만들었다기 보다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항아리 뚜껑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항아리의 뚜껑은 따로 구분해놓지 않고 써왔다. 만들 때부터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나눠 만들고 항아리 크기에 맞춰 씌웠으며, 소래기나 자배기 등으로 덮어두면 그만이었다. 빈 항아리 뚜껑을 열어 나물도 묻히고, 김치도 버무리며, 자배기는 쌀을 씻고 설거지 통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치를 때에는 온갖 장독대 항아리며 뚜껑들이 부엌살림 도구로 분주해졌던 것이다. 즉 그 쓰임새가 곧바로 그 공간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부엌에는 물항아리와 동이가 있고, 그들이 곳간에 놓이면 곡식항아리와 씨앗단지가 될 것이다. 깨지거나 금이 가면 테를 매고, 삐뚤어진 것은 뒤 곁에 놓고 오줌을 받으면 영락없는 소매통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여유를 부리는 편리함은 투박하고 담백한 옹기를 갖게 했다. 그냥 아무 곳에나 두고 봐도 정겹고, 그 그릇에 무엇을 채워도 넉넉하며, 누가 써도 차별하지 않는 정말 친밀한 그릇이다. 주거공간의 배치에 따라 놓인 곳을 구분해 보면 부엌·곳간·장독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쓰임새별로는 보관용·운반용·제조용 등으로 나누고 그 외 생활용품과 민간신앙용·악기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식생활 속에서 사용되던 옹기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용도에 따라 크게 저장용·제조용·기타 식기류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저장용기는 쌀이나 물, 간장·된장·고추장 등의 장류(醬類) 등을 저장하는 항아리 혹은 단지 등이 있으며, 담겨지는 내용물에 따라 쌀독·물독·간장독·된장독·고추장독·김치항아리·씨앗단지 등으로 불리운다.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제조용 옹기로는 소주를 내리는 소줏고리, 떡을 찔 때 사용하는 떡시루, 식초를 만들던 식초병, 마늘이나 고추를 갈던 확과 확독, 콩나물을 길러 먹었던 콩나물시루 등을 들 수 있다. 이밖에도 양념을 담던 양념단지, 밥이나 국을 끓이던 옹기 솥과 뚝배기, 간장을 담아 사용하던 간장병, 수저통, 술병, 주전자, 푼주 등 많은 부엌살림 용품들이 옹기로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또한 옹기는 식품용기로서의 기능이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운반용품·실내용품·신앙용품·의료용품 등 아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옛날 사랑방에서 사용하던 등잔이나 연적, 필세(筆洗) 등 뿐 아니라, 화로나 요강, 재떨이, 필통 등 우리 생활에서 필요한 많은 것들도 옹기로 만들어 쓰여져 왔다. 그리고 물이나 술, 분뇨 등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운반용 옹기로 동이나 장군 등이 있으며, 제주도에서는 허벅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동이는 옛날 우물가에서 여인들이 물을 길어 나를 때 머리에 이고 다니던 것으로, 7-8세의 어린아이부터 머리가 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인들의 애환이 담긴 용기이다. 장군은 물이나 술, 분뇨 등을 운반하는 것으로, 담기는 내용물에 따라 물장군·술장군·오줌장군·똥장군 등으로 불리운다. 한편 옹기는 신앙용이나 의료용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신앙용 옹기로는 집안신[家神]을 모셨던 업단지, 성주단지, 조왕단지, 용단지 등이 있다. 이 단지 안에는 그 해에 수확한 햅쌀이나 벼를 넣어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였으며,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안녕이나 집안의 화목을 빌기도 하였다. 의료용으로서의 옹기는 한약을 달이던 약탕기, 부황을 뜰 때 사용하던 부황단지, 몸이 붓거나 멍이 들었을 때 오줌을 약으로 만들어 먹던 약뇨병(藥尿甁) 등 민간의료에 사용되던 옹기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악기로 사용되었던 옹기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훈(塤)·부(缶)·장구·물박 등이 있다. 주거생활 속에서 보여지는 가장 대표적인 옹기는 굴뚝과 연가 등이 있다. 굴뚝은 연통과 연가로 구분되는데, 연통은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이며 연가는 비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굴뚝 위에 올려지는 것으로 새나 거북·화려한 꽃 모양의 장식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이밖에도 옹기로 만든 기와나 우물 등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다양하고 필수적으로 사용되던 옹기는 점점 그 모습이 변모하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 산재해 있던 옹기 장인들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으며, 솜씨하나만으로 지켜온 가업을 이어가는 장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소재의 용기가 개발되면서 투박하고 무거운 흙덩어리 옹기가 밀려나게 된 것은 당연한 이유이고, 따라서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 것도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주거문화와 식문화의 변화로 장독대를 없애고 부엌을 바꿔놓은 것도 옹기가 사라진 이유일 것이다. 이제 옹기는 현대 생활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그 쓰임새가 변모하고 있다. 새우젓독이 꽃병이나 우산꽂이로 바뀌고, 물두멍은 수련이나 연꽃을 키우며 금붕어를 기르면 될 것이고, 옹기 굴뚝은 장식용 전기스탠드로 방을 비춰주고, 큰 독은 넓은 마당 한 켠에서 잔디를 깔개 삼아 풍만한 자태를 뽐내며 멋진 정원을 연출시켜 줄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도 옹기는 숨을 쉬며 설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언제라도 어느 곳에서 부르면 “네”하고 달려올 것만 같은 막둥이처럼 말이다. --------------------------------------------------------------------------------------------- 이영자 | 현재 옹기민속박물관 관장과 불교문화센터, 도봉구 민화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와 발간도록으로 『옹기나들이』(2001), 『옹기문양』(2002), 『쭈글이옹기』(2004), 『오색빛을 찾아서』(2004), 『옛 옹기 그리고 지금은』(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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